에드워드 쇼터 지음/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 펴냄/3만 2000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의학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병리를 관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발명"되었다고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판가름한다는 점에서 암묵적이고도 보편적인 사회 통제의 권력이 정신의학에 있다고 본 것이고, 더 나아가 그 배후에는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이 있어 일탈자를 격리하려는 목적으로 정신의학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대중은 열광했고 정신과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반감에서 출발해 정신질환의 실재까지 부정하는 지식인 운동으로 진전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지금까지 쓰인 정신의학 역사서는 대부분 양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의학 역사를 보는 시각과 마찬가지로 한 쪽에는 진보와 영광의 역사를 기록한 교과서적 역사가 있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쪽에는 정신분석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자의식 과잉의 죄책감으로 써내려간 사죄의 역사가 있다. 정신질환의 모호함 그 자체 만큼 변화무쌍했던 정신의학의 역사를 비판적이고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저술한 역사서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정신의학의 역사는 과연 인간 정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위대한 도전의 역사인가,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추악한 투쟁의 역사인가?
정신의학이 걸어온 300년 역사를 사회사적 시각으로 파헤친 <정신의학의 역사>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세계적 의사학자인 에드워드 쇼터 교수(캐나다 토론토대학 역사학과)가 쓴 이 책은 1997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정신의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또 단순히 정신의학 전공자를 위한 역사 교재가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에 있어서 인간 정신의 실존적 고통에 대한 의료화의 추이를 살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지닌 책으로도 평가받아 왔다.
정신의학의 역사는 일반적인 의학사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질병의 극복과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 같은 영웅담으로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면서도 가장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던 광인들에 대한 의학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정신의학이다.
18세기 말 치료적 수용소 풍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세기 말 정신과 개원의의 조용한 진료실에서 끝난다. 푸코의 '대감금' 주장에 대한 반박에서부터 광인들을 격리시킨 수용소의 끔찍한 상황이 전해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단절'을 초래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신과의사들을 수용소로부터 벗어나게 해 자신의 진료소에서 환자를 보는 전문의사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게 해주었다는 의미도 되새긴다. 또 프로작 같은 정신약물을 가정 상비약으로 만들어 버린 거대 제약사의 음모 등 우리가 전혀 몰랐거나 일편만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신의학이 겪어 온 세번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먼저 빈약한 토대 위에 세워졌던 1세대 생물정신의학이 퇴행이론 등으로 자가당착에 빠지던 19세기 말로써, 치료적 수용소로의 꿈이 좌절되고 치유의 도구를 갖지 못한채 타당한 근거가 없는 온갖 치료법의 온상이 되어 버렸을 때를 말한다. 두번째 위기는 일세를 풍미하던 정신분석이 몰락하던 20세기 중반 이후로써, 정신의학의 양극화가 가장 극심했다. 그러나 분열적 특성이 가장 극명했던 이 시기는 곧 약물혁명의 단초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위기는 1990년대이다. 이 때는 개혁된 진단분류법이 자리를 잡아가고 정신약물학의 발달은 약물사용을 보편화시키면서 정신질환에 드리워졌던 오명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다른 신체적 질병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정신과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가 되어 갔다는 것이다."누가 정신과의사를 필요로 할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 위기의 성격이 정신의학 설립 초기의 위기와 유사하다고 본다.
모두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정신의학의 탄생 ▲수용소의 시대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탄생 ▲신경성질환의 시대 ▲정신분석, 그리고 정신의학의 단절 ▲대안을 찾아 ▲생물정신의학의 부활 ▲프로이트에서 프로작으로 등으로 엮어졌다.
이 책을 옮긴 최보문 가톨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인문사회의학·정신과학)은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정신의학이 주장하는 과학적 패러다임은 양날의 칼"이라면서 "생물학적 패러다임을 고수한다면 지금과 같이 엄청난 수의 사람이 원하는 기능개선 정신약물학을 포기하고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반대로 유행병이라 불릴 정도의 환자 몫을 유지하려 한다면 정신의학은 대중의 욕구와 가치관에 영합함으로써 더욱 일용품화되고 결국은 탈의료화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지금이 정신의학 내부로의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는 위기의식을 전하며 두가지 질문은 던진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돌봄의 방식을 정신과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지금, 다시 정신의학의 길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묻는다(☎02-322-3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