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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사후' 아닌 `응급' 개념 정립

피임,`사후' 아닌 `응급' 개념 정립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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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응급피임약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임신중절을 대체할 수 있는 피임약으로 잘못 이해되면서 사후 피임약으로 생각되고 있어 의사로서 놀랍다. 더욱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오히려 광고홍보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최일선에서 여성건강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의사회에서 이런 우려 때문에 뒤늦게나마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응급피임약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응급시'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약으로 단순한 수요-공급의 측면에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다. 낙태의 대안으로 환영하는 일부 시각도 있지만 여성건강의 측면에서 신중히 논의돼야 할 것으로 생각해 이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박금자=지름 5mm의 응급피임약이 지난 몇달간 우리 사회를 온통 낙태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만들면서 실제 응급피임약에 대한 논의 보다는 낙태 찬반 양론으로 핵심을 비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낙태율, 특히 원하지 않는 임신에 따른 낙태율이 많다. 이중 미혼여성들의 낙태율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2000년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임신중절의 약 50%가 피임실패에서 발생했다. 피임실패가 높은 이유는 생리주기법, 질외사정 등 부정확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혼여성들의 경우 적극적인 피임동기가 없어 피임효과나 부작용이 없는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비용이 들지 않고 약제나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불확실한 방법을 선택해온 것이 원치 않은 임신률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이 수입된다면 사용이 간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낙태 수가 줄어 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매체에서 응급피임약의 간편한 점만 홍보되어 일반 여성이나 남성들이 성관계후 단 두번의 약 복용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할 수 있다고 오인할 위험성이 너무 크다. 응급피임약을 쓰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정규 피임방법을 사용하고 응급피임약은 응급상태에서만 사용하는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후 피임약이란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사전 피임약과 대비돼 손쉽게 일회성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킬 위험성이 너무 크므로 이 용어를 사용해선 안된다. 정상피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응급피임약이 일반적 피임약으로 이용될 경우 여성들의 건강에 많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약을 어떻게 응급의 개념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할 것인가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일부에서는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수입이 거론되고 있는 응급피임약의 경우 약 한 알 속에 강력한 레보놀 게스트렐이 10알 정도 포함되어 있어 두알을 복용하는 것은 거의 20일치을 복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약의 오남용 가능성 많은 나라에서 다량의 항체호르몬이 들어 있는 이 약의 사용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들의 건강에 많은 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이 약은 당연히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돼야 한다.

◇김숙희=외국의 경우 10대때 부터 콘돔, 경구피임이 습관화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응급피임약으로만 피임하려는 추세가 많아지고 있다. 응급피임약을 판매허가한 영국에서도 여성들이 사전 피임을 하지 않고 응급피임약을 사후 피임약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돼 문제가 되고 있다. 응급피임약을 주된 피임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피임의 실패에 의한 유산이 증가하고 연간 임신확률이 19∼38%에 달하고, 생기주기 변화와 비정상 출혈, 콘돔 사용 저하에 의한 성병 증가, 응급시 1번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기에 여러번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약제비가 증가할 것이다. 또 응급피임약을 믿고 한 주기에 여러번 성관계를 하게 된다면 매번 복용한다 해도 오히려 임신가능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들의 몫이었는데 그나마 피임의 책임까지도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우게 될 우려가 크다. 남성들은 임신을 막기 위해 그나마 사용하는 콘돔도 기피하는 등 70∼80%의 피임율을 높이는 방법들이 사용되지 않게 될 것이다.

◇안명옥=우리 사회에 사전 피임약도 공론화된 적이 없는데 갑자기 응급피임약이 튀어나와 흑백의 단순논리로 가고 있다. 이미 사후 피임약은 30종류가 넘으며, 의료기관에서도 필요시 조제해 주고 있다. 이 약을 둘러싼 분위기는 `사후에 피임이 가능하다'로 너무 단순히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상에서 성문제를 상담하고 있는데 “관계 때 마다 여자친구에게 먹였다”, “남자친구가 임신걱정이 없다고 해 먹었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이런 상황 아래서 이 약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약이 전문의약품으로 갈 때에도 마지막 방법이라는 의무가 따라야 한다. 응급피임약은 성폭력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생에 한 번, 어쩌면 여성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써야 된다. 더욱이 응급피임약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4∼5년 정도로 아직 경험이 일천하여 여성건강에 미치는 위해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전 피임약의 경우 항체호르몬의 사용량을 적게 하는 추세이나 응급피임약은 양을 많게 한 것으로 피임약의 전반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더욱이 응급피임약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4∼5년 정도로 아직 경험이 일천하여 여성건강에 미치는 위해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전 피임약의 경우 항체호르몬의 사용량을 적게 하는 추세이나 응급피임약은 양을 많게 한 것으로 피임약의 전반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응급피임약의 부적응증으로는 정맥류가 있을 때, 심장병 특히 심근경색증, 유방암, 자궁내막암 환자, 이상자궁출혈, 간기능이상, 간의 종양이 있을 때 등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의 경우 0.1%가 간염보균자이지만 우리나라는 10%정도가 간염보균자로 추정되며, 이에 대한 관리가 방치돼 있다. 이처럼 간기능이 스크린되지 않는 상태에서 응급피임약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

또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으로 오심, 구토, 복통, 피로감, 두통, 어지럼증, 월경과다, 유방팽만감, 설사등이 알려져 있다. 피임 실패시 자궁외임신 확률이 5배 증가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후빈=응급피임약 도입을 보도한 방송매체에서 후유증이 간과됐다. 응급피임약은 물에 빠진 사람를 구하는 것으로 소개됐어야 하는데 피임에 관한 한 만병통치약과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 매스컴은 태아에 영향이 없다며, 사전피임법 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배아기 보다는 태아기 때 약 감수성이 높은데 식약청은 이부분에 대한 경고와 오남용 대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10월 12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응급피임약 도입을 반대해온 사람들을 참석시키지 않고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도입 형태에만 초점을 맞춰 짜 맞추기 식 아닌가 하는 불만이 있었다. 내용도 의학적 전문성이 이야기 되지 못했고 도입의 정당성만이 주로 논의됐다.

◇김철중=이 약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들의 낙태를 막아보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임신중절수술과 이 약의 위험성을 비교할 때 중절수술의 위험성이 더 크고 따라서 그 위험을 차단해주자는 취지라고 본다. 비공식집계로 한해 100만건의 낙태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이 약은 단기적으로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논란이 된 비아그라의 경우 현재는 안전한 약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위험한 약으로 인식되면서 정작 필요한 발기부전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응급피임약도 꼭 필요한 사람은 복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어느 정도 높여줘야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응급피임약이 `일반적인' 피임법으로 이해돼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응급피임약 복용시에도 피임 실패율이 있을 수 있고, 피임 실패시에는 다시 중절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박금자=수입회사의 주장에 의하면 24시간 이내에 복용할 경우 피임실패율이 5%, 48시간 이내 15%, 72시간 이내 때는 40%로 피임실패율이 현저히 늘어난다. 최근 수입이 거론되는 N정의 경우 98%까지 예방 할 수 있다고 선전되고 있어 여성들이 피임에 실패해 임신한 경우도 대부분 피임이 됐다고 지나칠 수 있다.

◇김숙희=접근성과 관련해 주말에 필요할 경우를 고려해서 이 약을 OTC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72시간내 복용하면 일정 정도의 예방효과가 있고 이럴 때 필요한 경우는 1∼2%정도에 불과하므로 여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72시간을 넘기더라도 의사에게 가서 적정하게 처방됐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옥영=솔직히 자유롭게 시판하는 것에 찬성이며, 이는 전교조의 공식입장이기도 하다. 성폭력 비율 가운데 청소년 성폭력이 21%정도에 달하며, 고교생의 11%가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중 임신경험이 1번인 경우가 45%, 2번이상되는 경우가 25%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중구보건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조교제하는 학생중 3명중 1명이 여중생이다. 학생들의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학생생활지도를 하는데 있어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면 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낙태 불법시술을 하고 있으며, N정 이전에 이미 기존의 응급피임약에 대해 알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N정은 비교적 부작용이 덜 한 것으로 알려졌고 프랑스에서는 양호교사가 나눠준다고 한다. 이 약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려져야 하지만 이것 때문에 성이 문란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정희=여성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72시간내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좌담회에 와서 들어보니 이 약의 부작용이나 여성건강에 끼칠 해악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건강을 대전제로 이 약이 올바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제대로 홍보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희성=약물의 안정성·유효성이 확립돼 있는 경우는 허가를 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회적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식약청은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서 정책토론회를 거쳤으며, 식약청 내에서는 도입시 고려사항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부서간 의견이 취합되면 사회지도층의 의견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될 것이다.

◇사회=응급피임약이 도입되는 경우를 고려해 관리대책이나 개선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박금자=응급피임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수입 허가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쉽게 구입하고 간단한 피임방법으로 비춰진 것이 사실이다. 이 약은 용어 그대로 응급시 피임방법으로, 피임방법을 하다가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란 점과 반복 사용시 위험할 수 있다는 점등을 복지부와 수입판매제약회사가 구체적으로 대국민홍보를 한 후 판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전 규제장치가 필요하다. 또 응급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이 약은 비아그라 처럼 처방전없이 그냥 시판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경구 피임약의 빈도는 약 2.2%정도인데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약이 판매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피임시장 구조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반증하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피임구조를 위해, 또 여성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약품이 제대로 판매되고 있는지, 여성 피해에 대한 추적등 복지부나 식약청내 특별 오남용 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 토론자들이 지적한대로 성교육을 통한 정상적인 피임방법의 실제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에서 아직도 정규시간이 아닌 일반시간에 10시간의 성교육이 진행되어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피임교육이 되지 않고 있으며, 낙태왕국이라는 오명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의 적극적 변화가 요구된다.

◇김숙희=약국에서 이 약을 사먹고 끝나는 것보다는 산부인과에 오는 것이 여성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어린 학생들은 산부인과에 오는 것을 꺼리고 건강보험카드를 사용하는 것 까지도 꺼린다. 최근 임질과 매독 발생률이 늘고 있다. 이런 성병으로 후에 불임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어렵더라도 산부인과의 진료과정을 거친다면 이런 질병으로부터도 보호될 수 있다.

◇사회=피임이란 `사전'에 해야 하는 것이지 `사후'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응급피임약은 엄밀히 말해 낙태약이다. 이를 미화해선 안된다. 늦었더라도 청소년 성교육을 우선해야 하며, 여자의사회도 여성건강을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이 약을 판매하는 제약회사에도 성교육의 책임을 줘야 한다. 오늘의 좌담회가 단순한 피임약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응급피임약의 올바른 사용과 사전 피임법의 홍보와 교육,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대한 얼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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