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대비 25% 환자 증가 '사상최대'…"전달체계 개편 서둘러야"
정부의 상급병원 본인부담금 인상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상급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신종플루 유행 등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으나, 상급병원 본인부담금 인상으로 인한 정책효과 또한 목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상급병원(전체 44곳)을 찾은 외래환자는 3047만명(내원일수 기준)으로 전년보다 무려 25.2%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상급병원 한 곳당 외래환자 내원일수도 69만2500일 가량으로 전년보다 12만일 이상 늘어났다. 기관 1곳당 월 평균 5만7700명 가까이 외래환자가 다녀간 셈이다.
상급병원으로 외래환자가 몰리는 현상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목격되어 왔던 일이지만, 전년도 대비 환자 증가율이 평년에 비해 5배 넘게 뛰어올랐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실제 통계에 의하면 상급병원 외래환자 증가율은 2007년 전년대비 5.9%, 2008년 5.2% 등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왔으나, 지난해에는 25.2%로 평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이상 현상'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같은 기간 의원급 의료기관의 외래환자는 2007년 전년대비 1.1%, 2008년 0.7%, 지난해 5.8% 성장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신종플루로 인한 특수가 의원급에서도 존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만으로 상급병원 외래환자 급증현상의 원인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상급병원 본인부담금 인상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들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앞서 복지부는 경증 외래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한 방법으로 지난해 7월1일을 기해 상급병원 외래환자 본인부담률을 현행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50%에서 60%로 인상한 바 있다.
복지부는 당시 "대형병원 외래 진료에서 경증·만성질환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의료자원 활용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 같은 정책효과를 체감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당초 본인부담금 인상이 환자들의 방문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신종플루 사태 당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신종플루 외 다른 외래환자들의 병원 방문이 줄어드는 현상이 목격되지도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서는 복지부도 어느 정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제도 시행이후 아직까지 눈에 띄는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다만 시행초기인 만큼 정책의 성공 혹은 실패 여부를 단언할 수는 없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사항들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와 별도로 의협 등 의료단체들이 참여하는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TF'를 가동, 정책대안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당초 복지부는 올 6월까지 TF를 운영해 핵심과제를 도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TF 운영시한을 두 달여도 남겨놓지 않은 최근까지 각 협회의 건의사항을 듣는 선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 제도개선을 위한 각론에 대해서는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나현 대한의사협회 의료전달체계 제도개선 TF 위원장(의협 부회장)은 "본인부담금 인상 이후에도 상급병원 외래환자가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되었던 결과"라면서 "경질환을 가지고는 도저히 상급병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나 위원장은 "국민 의료의 수문장 역할을 해야 할 1차 의료기관들이 환자가 없어 고사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라면서 "의료전달체계의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로, 시급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