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인증제로 진화하는 의료기관 평가 '호평'

coverstory 인증제로 진화하는 의료기관 평가 '호평'

  • 이현식·고신정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6.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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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리 문항을 예측해서 준비할 수 없어요. 있는 그대로 현장에서 노출됩니다."

새로운 의료기관 평가방식에 대한 일선 병원 QI 담당자들의 반응이다. 의료기관평가 인증추진위원회(위원장 이규식)는 올해 5월 11일부터 20일까지 전국 의료기관 12곳을 대상으로 시범조사를 벌였다.

부산대학교병원 QI 담당자는 "조사위원들이 중환자실에 와서 관련된 항목을 질문하면서 동시에 곁눈질로 '손씻기'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는 것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일정한 장소에 오면 어떤 것을 물어볼 것이라는 게 정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사위원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게 질문을 해와 사전에 지침을 철저히 숙지하고 완전히 체질화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순천향대병원 QI 담당자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의료기관 평가의 경우 문항의 기준이 명확해 조사위원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명확했는데, 시범조사 문항의 경우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을 물어보는 것이어서 한 문항을 제대로 대답하려면 30가지 정도를 준비해야 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산발적 평가 하나로 통합

의료기관 평가(한국보건산업진흥원)·신임평가(대한병원협회)·응급의료기관평가(보건복지부)·암검진평가(국립암센터)·요양급여 적정성평가(건강보험심사평가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의료기관 평가들이다. 시행기관과 목적이 제각각인데다 중복되는 부분도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평가를 받는 병원 입장에서도 그때그때 준비하느라 인력과 시간 낭비가 크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진흥원이 주관하는 의료기관 평가는 QI 팀에서, 급여 적정성 평가는 원무팀에서 하는 등 평가마다 담당 부서가 달라 혼선이 빚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국무총리실에서 각종 개별평가를 '통합'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현행 정부 주도 강제평가를 독립적인 평가전담기구를 설립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25일 의료기관평가 인증추진위원회가 설치됐고 현재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규식 추진위원장(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의료기관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인증제도를 시행하려고 한다"며 "여야 의원이 각각 발의한 두 개의 법안에 대한 내부조정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고 말했다.

최종희 복지부 서기관은 "시범조사를 해보니 병원들이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어서 고무적이었다"며 "자발적으로 의료 질을 향상하려는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환자분들이 의료기관 평가 또 언제하는지 물어와요. 그때 입원하겠다고요."

현행 의료기관 평가제도에 대해 보건의료노조가 내린 냉정한 평가다. 보건의료노조는 "10억원 비용을 들여 최우수병원으로 선정되면 홍보 플래카드 한번 내걸 뿐이지 그 후에는 모든 게 원위치"라고 혹평했다.

지난 5월 의료기관 인증제 시범조사에서 환자 추적을 하는 조사위원들이 중앙공급실에서 환기와 관련해 감염관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세브란스가 37등 '이럴수가…'

국내 최초로 JCI 인증을 받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주기 의료기관 평가 때 79개 대형병원 중 37등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사건은 의료기관 평가의 효용성에 의문을 던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규식 위원장은 "당시 세브란스가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의료기관 평가 기준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료기관 평가제도가 실질적인 질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병원들이 국제적인 신뢰도가 높은 JCI 인증을 선호하게 된 것도 현행 평가제도의 부작용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의료기관 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시적'이라는 데 있다. 평가 준비도 일시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효과도 그때뿐이다. 한 대학병원 QI 관계자는 "전에 의료기관 평가 조사위원으로 나간 적이 있는데 일시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항목에 따라 OX 표시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점수차가 나기 때문에 심지어 환자가 솔직히 말해서 X로 나왔는데도 병원 측에서 나중에 환자를 데리고 와서 인터뷰를 다시 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기존의 의료기관 평가가 병원의 시설이나 수술실 면적 등 '구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화장실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원을 쏟아부어 외형적으로 보완하거나 평가시기에 맞춰 바짝 관리만 잘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일회성 평가 문제점 보완

그러나 새로운 인증제 평가방식은 실제 의료질을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지침'의 경우 평가기관에서 지침을 정해서 주는 게 아니라 병원마다 실정에 맞게 스스로 정한 뒤 이에 따라 체크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조영일 건국대병원 QI실장은 "지침이 있는가 없는가만 따진다면 하루만에 만든 지침이나 일 년동안 병원 현실에 맞게 공들여 작성한 지침이나 평가 결과는 같게 된다"며 "인증제 방식은 준비하는 병원 입장에선 힘들지만 평가 이후에도 꾸준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순천향대병원 QI 관계자는 "이전에는 지침이 없어도 됐고 그냥 적절히 하고 있으면 됐는데, 이번 시범조사에서는 병원 자체적으로 만든 지침에 따라 실제 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에는 이틀간 조사위원들이 각자 담당한 분야를 한 번씩 보고 넘어갔기 때문에 평가가 끝난 부문은 신경쓰지 않아도 됐던 반면에 이번엔 나흘간 조사위원들이 모든 문항을 다 확인했고 조사위원들 간에 크로스체킹도 했다"고 덧붙였다.

평가주기는 3년에서 4년으로 바뀌는 대신 중간에 자체평가를 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도 큰 변화다. 일회성 평가에 그치지 않도록 본래의 인증평가를 받는 기간 사이에 병원 내부적으로 의료질 관리를 꾸준히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전 평가방식과 다른 점 가운데 또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평가 결과를 매기는 방식이다. 인증제는 인증을 받느냐 못 받느냐만 정하는 Pass/Fail 방식을 선택했다. 전에는 의료기관마다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했지만, 인증제 방식에서는 통과 여부만 결정한다.

이규식 추진위원장은 "가령 충주에 사는 환자가 이비인후과 병원을 가려고 할 때 1등 병원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을 받은 곳이 어디인지 안내하는 게 평가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에 시범조사를 받은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시범조사가 끝난 뒤 조사위원들이 병원 관계자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뒤 한 시간 이상 길게 토론을 했다"며 "평가 결과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 맞지만 필요했다"

원래 올해부터 3주기 의료기관 평가를 시행해야 하지만 인증제 방식의 의료기관 평가를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서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선 의료기관들은 새로운 인증제 방식의 평가가 시행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QI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평가를 인증제 문항으로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존의 평가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제도 시행 초창기에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며 "구조적인 부문이 완성돼야 다른 부분도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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