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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사가 도덕군자여야 하나?

청진기 의사가 도덕군자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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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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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문(가톨릭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과/인문사회의학과)

▲ 최보문(가톨릭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과/인문사회의학과)

"체중을 줄이셔야겠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하며 도표를 보여주는 의사의 손이 감자로 보인다면? 게다가 허리엔 스페어 타이어만한 살집까지 두르고 있다면?

수년전부터 보스턴 터프츠 대학 비만클리닉 댄싱어(Michael Dansinger) 교수는 비만한 의사는 비만클리닉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덧붙여, 의사는 날씬해야할 뿐만 아니라 좋은 생활습관과 건강함으로 대중의 역할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제기된 이 주제에 관해 인터넷에서는 아직까지도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그 주장에 반대하는 대표적 의견은 "의사도 환자도 사람이다!!"라는 '현실 파'에 속한다. 유능한 내분비 내과의사도 당뇨병에 시달리고, 유명 산부인과 의사들 중에는 남자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고결함과 막강한 파워를 신봉하는 '도덕군자 파'의 대표주자는 "파산한 사람에게 재정 상담하겠냐? 비만 의사는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라고까지 주장한다. 즉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환자에게 요구하려면 의사 자신부터 그 믿음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틈새에서 '남탓 파'는 "왜 의사에게만 도덕성을 요구하냐? 정치판부터 솔선수범하라"고 하고, '중재 파'는 "비행공포증 있다고 비행사에게 상담하냐?"고 묻는다.

의사의 전문성과 관련된 행동을 평가하려면 환자의 임상적 문제와 전문과목에 따라 달리 평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과의사의 경우 환자들은 정교한 수술기술과 옳고 재빠른 의학적 판단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이지, 날씬하고 달콤한 태도를 더 중요시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인간미를 강조하는 '인정 파'는 "뚱뚱한 의사가 비만의 애환과 살빼기 작전의 실패 후에 오는 좌절감을 더 잘 이해한다"라고 주장한다. '불평불만 파'도 있다. "의사에게 매일 한시간씩 운동에만 전념할 시간을 달라. 아니면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리던가."

이런 여러 의견 중, 깊은 철학적 사색과 경험으로부터 나온 '자기성찰 파'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때 비만이었다가 죽도록 노력해서 표준 체중으로 돌아온 한 의사의 말이다. 건강체중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머지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섭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 집단행동에의 참여와 권력, 가족과의 단란함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비만환자에게 운동과 특정식단을 권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도 알 수 있는 단순 정보를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환자로 하여금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하는 것은 그런 얄팍한 정보가 아니라 삶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극복해나갈 자신만의 삶의 전략과 방식으로 전환하게 할 단호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에서 새겨들을만한 보고도 있다.

호주 왕립 GP 협회가 GP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 의사의 30%는 수면제를, 6%는 마약성 진통제를, 3%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고, 26%는 다른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질병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처방을 하고 있고, 19%는 결혼생활 문제를, 18%는 정서적 문제를, 3%는 알코올 문제를, 1%는 약물남용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의사도 사람임을 입증하는 보고서라고나 할까.

문제는 뚱뚱한 사람도 장수하고, 전혀 운동을 하지 않고 우울한 사람도 날씬할 수 있다는데 있다. 핵심은 자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삶을 누리면서 환자도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 삶에 족쇄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다.

도덕군자인척 하지 말자. 히포크라테스도 "자신이 가진 최선의 역량으로 환자를 치료하라"고 했지 의사 자신이 성인이 되라고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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