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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0:33 (금)
청진기 천도제 단상
청진기 천도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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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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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단국의대 교수 기생충학)
▲ 서민(단국의대 교수 기생충학)

친구의 장모가 두 달 전부터 가슴이 뜨겁고 답답해 죽겠는 증상에 시달렸다. 별다른 지병도 없는데다, MRI를 비롯한 검사 장비를 총동원해 온몸을 훑었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딸은 꿈을 꾸었다. 꿈에 어머니가 나왔는데, 등 뒤에 애기 둘을 업고 있었다는 것.

어머니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만 어머니는, 사실은 옛날에 애 둘을 유산시킨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피임법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던 그 옛날, 이미 1남 2녀가 있었던 그 어머니는 더 이상 애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었고, 그 후에 생긴 애 둘을 유산시킨 거였다.

그 얘기를 들은 딸에게 주위에서는 천도제를 권유했다. 사람이 죽은 뒤 그 넋이 저승에 들지 못하여 가족이나 친지에게 병이나 해를 끼칠 때, 천도제를 통해 영을 저승으로 보내 드리면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을 준다는 믿음에서였다.

평소 품행으로 봐서 미신에 빠질 여자는 아니었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수소문을 해서 용하다는 절을 찾았고, 천도제를 부탁했다. 절에서는 500만원을 비용으로 청구했다. 어머니는 뭐 하러 그런 걸 하느냐고 말렸지만, 딸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놀라운 사실은 천도제 이후 어머니의 병세는 깨끗이 나았다는 거다.

그 애들이 태어나지 못한 한을 풀지 못해 어머니 곁을 떠돌며 증상을 일으켰다는 가설은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유산을 한 것에 대해 어머니가 죄책감을 가졌고, 그게 가슴 뜨거움증으로 나타났다는 게 비교적 합리적인 설명이리라.

그게 왜 지금이냐는 의문은 남지만, 애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게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니 뒤늦게 죄책감으로 찾아왔고, 천도제를 함으로써 증세가 완화된 것도 그런 견지에서 설명이 된다.

이 분은 다행히 천도제를 통해 효과를 봤지만, 문제는 의학적으로 고칠 수 있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천도제 등을 통해 치료를 하려는 경우다. 예컨대 어머님의 친구분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거부하고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려 했다.

간호사인 딸이 어머니 앞에 드러누워 단식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억지로 수술을 받게 하지 않았다면, 그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의학이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의학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선언한 환자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주술적인 방법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사례처럼 주술적인 치료가 전혀 효과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일부의 사례가 주술적 치료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말기암 판정을 받았는데 기도의 힘으로 깨끗이 나았다는 얘기는 수없이 떠돌지만, 그 중 몇 프로나 진실일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까지 의학은 이런 주술적 치료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그런 주술적 방법에 매달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고, 그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이런 일들을 계속 방치하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 있다.

시중에 나도는 "누구누구가 굿을 해서 나았다더라"는 소문들을 의학계에서 검증해 보면 어떨까? 매스컴과 협력해 이런 사례들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좋고, 위원회를 만들어 제보를 받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의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진짜로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도사를 발견한다면 그것 역시 국민건강에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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