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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광고 홍수시대와 의료비용
청진기 광고 홍수시대와 의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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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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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문(가톨릭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과/인문사회의학과)
▲ 최보문(가톨릭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과/인문사회의학과)

운전하다 잠시 멈춰선 사이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한 적이 있다. 버스 옆구리 전체를 꽉 채우고 "유방확대"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주유기 입구가 묘한 곳과 겹쳐지면서 민망한 연상을 금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업의 직접광고는 의료계 변화에 따른 당연한 추세로 보인다. 과거 가부장적 의사-환자 관계에 대한 비판으로 환자권리운동이 출현한 이후로 환자의 대(對)의료 관계는 계속 변화해 왔다. '환자권리'에서 더 진전된 두 가지는 자유주의 발상의 '환자 중심'주의와 자본주의 발상인 '환자 고객'주의로서, 이 두 가지는 의사-환자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지적된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임상 현장에서 일상화되고 있음은 이를 반영한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BMI 28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성장할 여유을 벌기 위해 초경을 늦추어주길 요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시라. 이때 과연 의사는 내분비계 교란을 초래할 약을 '고객'의 요구에 따라 처방해줘야만 하는가? 아니면 과거에 의사가 했듯이 타고난 대로 살라고 충고를 해야 할까? 정신과는 더 심하다.

'자신감 생기는 약', '머리 좋아지는 약', '입맛 떨어지는 약' 처방 요구는 다반사요, 며칠 잠 좀 못 잤다고 수면제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불면증 청년에게 '한 달간 절에 가서 장작이나 패고 와라'는 말은 병원운영은 물론 환자의 직장 일을 생각하면 못할 말이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의 요구는 스스로 결정한 경우보다 광고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까지 포함하면 우리는 광고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홍보가 금지되어있었을 때 기업의 주된 목표는 의사들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결정권이 확대되고 광고법이 바뀌면서 직접광고의 비중은 점차 확대되어 왔다. 이제 의사 리베이트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성분명 처방까지 이루어진다면 대중을 향한 직접홍보는 더 강화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광고가 대중의 욕구를 창출해낸다는 데에 있고 이것이 의료비용 낭비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 욕구의 상당부분은 비현실적이나, 이를 현실성 있는 것으로 포장해 주는 것은 미디어이다. CPR을 예로 들어보자.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죽음의 문턱에서 소생하니 드라마틱하고, 의사의 영웅담을 보여주니 감동적이고, 가족과 연인들의 끈끈한 연대를 확인해주니 훈훈하고... 등등의 이유로 단골메뉴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 CPR을 조사한 한 보고에 따르면 75% 이상이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 임상에서 CPR의 성공률은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으되 대략 10~20% 정도로 보고 있다. 미디어에 익숙한 환자가족들은 CPR은 물론 온갖 연명치료까지도 기적의 소생술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비현실적 요구가 의료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속의 '기적'은 단속되지 않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부풀게 하는 광고규제도 뚜렷하지 않다.

의료비용절감은 단지 정부의 과제만은 아니다. 의료서비스의 공평한 분배와 건강평등은 의사의 과제이기도 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이기도 하다. 정부, 의료계, 기업이 동반자로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도 부족한 상황에 저마다 상대를 비난하고 있고, 그 사이 버스 옆구리는 비용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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