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 앞두고 지방 의료계 초긴장
서울~부산 2시간이면 OK…'빨대효과' 심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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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빨대효과 2004년 개통된 한국형 고속철도 (Korea Train Express,KTX)가 지방경제에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용어로, 수도권의 흡인력이 강력해지면서 지방경제가 상대적으로 쪼그라드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의료와 교육·문화 부분에서 KTX의 빨대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을 앞두고 지방 의료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1월 경부고속철도가 추가 개통되면 서울∼부산간 이동시간이 2시간대 초반으로 단축될 예정이다. 2004년 KTX 도입 당시 속수무책으로 환자유출을 경험해야 했던 지방 의료계는 이 같은 '신형 엔진'의 등장이 수도권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부산 2시간대 초반으로 단축
국토해양부는 11월을 기해 '절반짜리'였던 경부고속철도를 추가로 개통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울에서 천안·대전·대구를 거쳐 부산까지…수도권에서 국토의 중간을 가로질러 동남권까지 이어지는 한국형 고속철도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기존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서울~동대구는 고속선, 대구~부산은 기존선을 연결한 것이었으나 이번 2단계 사업으로 대구~부산 구간도 고속선으로 변경되면서 보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경부고속철도가 완성되면 서울~부산 소요시간이 현행 2시간 46분에서 2시간 18분으로 20분 이상 빨라진다. 울산까지는 2시간 10분이면 갈 수 있다. KTX가 없던 시절, 가장 빠른 새마을호를 타고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속도의 혁명이라 할 만하다.
나아가 정부는 ▲2014년까지 대전과 대구 도심구간에도 고속철을 놓고 ▲같은 해 수서~평택을 잇는 수도권 고속철을 개통하며 ▲열차속도 향상 및 감속시간 단축 등 운영체계를 개선해 궁극적으로 서울~부산간의 운행시간을 1시간 43분까지 단축할 예정이다. 서울과 부산이 '반의 반나절' 생활권안에 드는 셈이다.
광주·목포 등 호남권도 2014년부터 대변혁
2014년부터는 호남권역에서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에 따르면 2014년까지 오송~광주 구간에 고속철이 들어서고, 2017년까지는 광주~목포간 고속선을 완공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될 경우 7년 뒤면 용산~목포까지의 이동시간이 현재 3시간17분에서 1시간 45분으로 무려 절반이 줄어든다.
목포·광주 등 호남권도 KTX라는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수서~평택간 고속철 개통, 열차속도 향상 등 시스템 개선까지 이뤄질 경우 추가로 24분이 더 단축돼 궁극적으로는 수도권에서 호남권 끝인 목포까지 1시간 20여분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 정부는 기존선과 고속선을 연결해 KTX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경부선의 포항·진주·마산·수원, 전라선의 전주·순천·여수를 KTX와 연결하는 안이 고려되고 있다.
또 KTX 연결효과의 주변지역 확산을 위해 거점도시권내 광역급행철도(Great Train Express, GTX)를 놓는 방안도 마련돼 서울 등 대도시가 인근지역의 경제수요를 흡수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이 같은 'KTX 고속철도망 구축전략'을 통해 10년내로 전국 주요거점을 일상 통근시간대인 1시간 30분대로 연결해 하나의 도시권으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에서 서울로…KTX 거꾸로 달렸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지방 의료계의 감정은 편치 않다. 지난 2004년 KTX 도입 이후 충격적인 환자유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방 의료계는 KTX 노선의 확장이 수도권으로의 '빨대효과'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정 근 부산광역시의사회장은 "KTX 완전개통으로 인해 빚어질 환자 역외유출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면서 "11월 KTX가 완전 개통되면 부산지역 환자들의 서울과 수도권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KTX가 지방 의료계에 몰고 온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지방거주자들의 수도권 의료기관 진료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 해동안 수도권에서 진료받은 지역 환자의 수는 225만 3960명, 원정진료비는 건강보험 급여비용을 기준으로 1조 683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KTX 개통 전인 2003년 170만 3334명, 8410억원에 비해 진료인원은 32.3%, 진료비는 규모는 2배 이상 커진 수치다.
지역별로는 울산에서 원정진료환자의 비율이 5년새 무려 79.5%나 늘었고 관외로 유출된 진료비 또한 226%나 급증했다.
또 경부선 개통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간인 경남과 대구·대전·부산 지역의 원정환자 증가율도 상위권을 차지해 KTX 개통에 따라 영남권 환자의 수도권 원정진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영남권 환자 수도권 원정진료 가속화
이같은 현상은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와 서울대학교가 펴낸 'KTX 건강영향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암질환과 관련해 지방 거주민의 서울 소재 의료기관 이용량을 조사한 결과 KTX가 개통된 2004년 이후 전국 대비 서울지역의 진료건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지역과 KTX 영향권내 지역 및 KTX 영향권외 지역을 구분해 암질환 진료건수 증가 추이를 비교해 보면 이 같은 현상을 더욱 확연히 목격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암질환진료건수를 100으로 봤을때 2007년 서울지역 의료기관의 암질환 진료건수는 173으로 높아진데 반해 KTX영향권내 지역 의료기관의 암질환 진료건수는 150의 증가추세를 보여 서울은 물론 KTX 영향권외 지역의 165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증가추세를 보였다(그림).
암 질환자의 서울 집중, KTX 영향권내 지역에서의 상대적 둔화, 다 같은 지방이면서도 KTX 영향권외 지역에서의 진료건수 증가에 비해 영향권내 지역의 진료건수가 더 낮게 증가했다는 점은 전반적으로 KTX의 영향을 시사하는 결과다.
특히 서울소재의 빅5 병원에서 KTX 영향권내 지역 환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 대형병원의 경우 전체 환자 가운데 서울시 거주 환자의 구성비가 2001년 49.5%에서 2007년에는 35.8%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부산 환자는 1.7%에서 3.2%로, 대구지역에서 온 환자는 0.8%에서 1.8%로, 대전 환자는 2.1%에서 2.9%로, 광주지역에서 온 환자는 1.2%에서 1.5%로 늘었다.
다른 병원 역시 대체적으로 부산과 대구·대전 거주 환자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으나, KTX 개통으로 인한 교통시간 감소효과가 비교적 미약한 광주지역 거주 환자의 경우 큰 변동이 없거나 완만한 증가 혹은 감소세를 보여 대조를 이뤘다.
KTX 빨대효과…지방 의료계 휘청
환자들의 원정진료가 가속화되면서 지방 의료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덕종 울산광역시의사회장은 "KTX 개통으로 지역내 환자가 수도권 또는 인근의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지역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최 회장에 따르면 2008년 한해 울산지역에서만 관외로 유출된 건강보험 진료비가 513억원에 이르며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와 교통비, 체류비 등을 감안한다면 환자들의 원정진료 지출비용은 어림잡아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는 특히 이 같은 지역의료의 위축이 결국 지방과 수도권과의 의료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회장은 "환자의 감소가 지역 의료경제 위축, 병원들의 투자위축으로 이어져 다시 환자들의 외면을 받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고 있다"면서 "환자와 좋은 장비, 우수한 의료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되면 결국 지역 의료기반이 무너지고, 의료전달체계가 망가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지역의 마음도 편하지 않다.
특히 호남권 고속철도 개통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교적 '안전지대'에 속했던 광주· 목포 지역에서도 불안감이 커져가는 모양새다.
이정남 광주광역시의사회장은 "호남권 KTX 개통시 서울~광주 이동시간이 1시간 10분 정도로 크게 단축된다"면서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인근 지역 의료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지역 내에서도 2014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했다.
환자들은 왜 서울로 가는가?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KTX 이용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방거주 응답자의 절반 이상(51.9%)이 서울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한 경험이 있으며 이가운데 70.4%는 KTX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KTX가 지방환자를 실어나르는 수송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정진료가 늘어난 원인을 전적으로 KTX에 돌릴 수만은 없다. KTX의 운행이 지방 환자들의 원정진료를 편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환자들의 대이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환자들은 왜 서울로 움직이는가, 환자들의 원정진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방 환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남편의 위암수술을 위해 서울의 대학병원을 방문했던 최 모씨(54·대전)는 "지역 병원에서 서울 만큼 질 좋은 처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병원비 외에 교통비와 체류비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부담했지만 원하던대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유능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서도 지역 환자들은 최신 의료시설과 장비, 서울지역 의사들의 우수한 실력을 서울지역 의료기관들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표>.
역으로 생각하자면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한 욕구와 '모로가도 서울이 좋다'는 환자들의 인식이 원정진료를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추는 일, 그리고 지방 의료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임종수 부산광역시의사회 공보이사는 "의료기관 평가나 진료량 평가 등에서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과 견주어 큰 차이가 없음에도, 환자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막대한 추가경비와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서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환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지역 의료계는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힘에 부친다. 일부 지역에서는 환자들에게 지역의료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지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환자의 원정진료를 온전히 막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신칸센에는 있고, KTX에는 없는 것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료서비의 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지역 의료계의 자구노력에 덧붙여, 정부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역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지역거점병원으로 육성하고 의료의 지역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책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덕종 울산시의사회장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환자의 수도권 집중은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라면서 "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역의료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중증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의 확충, 양질의 전문의료인력 양성 등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며 "이는 지역 의료계의 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로, 의료계와 민관이 합심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보건복지부가 '진료권역 재설정'을 위한 연구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의뢰했다는 소식이 지역 의료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교통의 발달로 국민의 의료이용 패턴과 의료자원 공급이 현행 행정구역과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어 진료권역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추진하게 됐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KTX와 의료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던 'KTX 건강영향평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신칸센이 있는 일본의 경우 신칸센이 우리나라의 KTX보다 노선망이 더욱 발달되어 있음에도 이에 의한 의료이용의 대도시 집중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정부의 강력한 지역 병상수 관리대책, 대형병원의 고른 지역적 분포, 지역에 기반해 원활하게 작동하는 의료전달체계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KTX 고속철도망 구축전략'을 통해 전국의 하나의 도시권으로 통합하겠다는 정부. 개발-경제라는 측면에 치우쳐 또 다른 측면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곱씹어봐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