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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꿈꾸어야 산이 움직인다

나무가 꿈꾸어야 산이 움직인다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1.01.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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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상 지음/도서출판 큐라인 펴냄/비매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이 사랑을 벅차게 느끼는 이가 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愛之, 欲基生-논어 12권 10장)'을 삶의 지표 삼고 사람을 살게 하는,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는 의사로 살아온 것을 축복이라고 말한다.

인석(仁石) 지훈상 전 연세대 의료원장.

올해 8월 말을 끝으로 학생으로, 교수로, 경영자로 40여 성상 세브란스와의 인연을 갈무리한 지 원장이 회고록 <나무가 꿈꾸어야 산이 움직인다>를 펴냈다.

한 사람의 지나온 삶을 한 권의 책 속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긴 시간을 품고 수많은 인과에 둘러쌓인 지나온 역정을 어찌 책 한 권으로 엮을 수 있을까? 시간 속에 묻혀진 편린이라도 의미가 될 수 있는데 기억에만 의존하다가는 건질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혹 남겨진 기록이 있더라도 뒷받침될 자료가 부족하다면 빛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꾸며진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한 사람의 기록에서 벗어나 그가 속했던 기관의 역사가 되고 사회를 바라보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덜컹거리는 버스 뒷켠 짐칸에 매달리다 떨어져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던 개구장이 인천소년은 호기심 가득한 모험천국인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인천 송림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를 거쳐 명문사학으로 떠오르던 제물포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풍요롭게 하는 힘과 상대방을 위한 배려에 대한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고 '배움으로 사회의 등불이 되고 양심으로 민족의 소금이 되라'는 가르침 아래 생각과 행동을 다듬는다.

연세의대에 입학한 이후에는 미술·연극·영화·음악 등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활동를 향유하면서 '세브란스 분극의 밤'을 이끌었던 세브란스 연극반장으로 활동한다. 졸업후 인턴생활을 마치고는 외과를 선택했다. 이후 간·담·췌를 전문분야로 삼고 외과전문의가 된다.

국군서울지구병원 외과부장(해군 소령)으로 군복무를 마친 지 원장은 1978년 연세의대 외과학교실에 부임하면서 스탭으로서 세브란스와 인연을 맺는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부속 세인트폴램지 메디컬센터 연수중에는 전문분야인 간담관 분야가 아니라 응급외과분야 연수를 받고 후에 국내 불모지나 다름 없던 응급·외상의학의 체계화와 학회 창립에 밑거름을 마련했다.

1987년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파견된 지 원장은 응급진료센터 소장(1992)에 이어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원장을 맡게 된다. 영동세브란스병원장을 마치고 1년 반의 공백기간에 지 원장은 보건대학원 고위정책자 과정에서 경영책임자로서의 소양과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2004년 6월 교수들의 추천으로 제13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후보로 나서 당선된 지 원장은 2004년 8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지 원장은 취임 초 'the First & the Best'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병원이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05년 5월 세브란스 새병원을 개원하면서 지속적인 전문화와 연구개발을 밑거름으로 의료의 질적 향상과 환자의 편의를 극대함으로써, 단순히 규모가 가장 큰 병원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내 병원의 표준을 제시하는 병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책무임을 공표했다.

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다빈치 로봇수술시스템을 도입해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의 메카로 자리잡는다. 2007년 7월에는 JCI인증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의료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기도 했다.

이와함께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또 하나는 연세의료원의 정체성 확립이다. 연세의료원의 유구한 역사를 드러내고 정체성을 확립해 의료원의 미션을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비전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시련도 있었다. 2007년 발생한 노사분규다. 하루 6000명의 외래환자와 1500여명의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서 벌어진 28일간의 파업은 병원 뿐만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큰 경제적 손실과 구성원간 상처를 남긴채 마무리되긴 했지만, 지 원장은 '불법에는 법과 소신으로 맞선다'는 원칙 아래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노사관계의 새 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모진 가슴앓이 탓이었을까. 지 원장은 해외 협력기관 방문을 준비하던 중 대장암 진단을 받게 된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병원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나쳤던 복도의 긴 천장과 조명등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역지사지'.

지 원장은 연세의료원장 임기를 마친후 전국 2400여 병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 수장에 취임한다. 병협을 이끄는 동안 지 원장은 의료인력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병원협회의 정체성 확립과 병원 표준화 및 선진화에 주력한다.

회원병원의 권익을 찾기 위한 각종 규제·법률 재정비와 의료수가 조정시스템 개선에도 열정을 쏟았다.

<나무가 꿈꾸어야…>는 한사람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40여년간 의료 현장을 올곧이 지키면서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주변인으로, 또 조력자로 몸소 겪으면서 바라본 세상이 들어있다. 옛 기억을 되살리는 색바랜 자료사진들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지만, 그대로 흔적이 되어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된다.

지 원장은 후학들에게 당부한다.

"두려워하는 이에게 산은 영원한 장애물이다. 도전하는 이에게는 가슴뛰는 비전이다. 그대, 부디 꿈꾸며 도전하기를 멈추지 마라. 나무가 꿈꾸면 산이 움직인다"고…(02-2279-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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