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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4 19:44 (수)
리아의 나라

리아의 나라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1.01.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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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패디먼 지음/윌북 펴냄/1만 6800원

이야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메세드에 마련된 소수민족구역에 사는 몽족(라오스 출신 고산민족으로 1970~80년대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 리아 리(Lia Lee)로부터 출발한다.

리아는 갓난 아기 때부터 간질을 앓았다. 세 돌이 되기 전 리아는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리아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친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찌된 일인가? 부모가 아이에게 의사가 처방한 대로 약을 먹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가 아동학대 혐의로 양육권을 박탈한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찾기 위해 할 수 없이 국가와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먹이는 쪽을 택했다. 아이를 되찾을 수는 있었지만 리아의 건강은 오히려 더 나빠져 갔다. 목숨을 잃을 위기까지 다다른 리아는 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됐고, 결국엔 부모의 보살핌 속에 간신히 연명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에 난민으로 입국하게된 소수민족 아이가 간질을 치료하면서 아이 부모와 의사, 그리고 미국 사회가 함께 겪은 언어·문화적인 충돌을 둘러싼 9년간의 기록 <리아의 나라>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서구문화와 영어에 무지했던 리아의 부모에게 미국과 미국의사들은 그들이 지켜온 오래된 전통·영혼·무속·지혜의 세계에 대한 근대·이성·과학·합리의 세계의 충돌로 다가왔다.

농경민족으로 무속신앙의 전통이 강한 그들에게 과학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현대 의학과 그를 포위하고 있는 '문명인'들의 억압은 받아들이기 힘든 폭거일 수 밖에 없었다.

미신으로 배척받는 그들의 세계는 과학과 이성으로 무장한 채 법을 내세운 국가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결국 식물인간으로 연명하는 리아를 앞에두고, 그들보다 앞서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과연 무엇이 진짜 야만이고 진짜 미신인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탁월한 문화인류학 보고서' '최고 수준의 문예저널리즘'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저자 앤 패디먼의 9년간의 취재와 자료수집, 그리고 긴 과정을 그들의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책 머릿말에서 리아의 가족과 그를 치료한 의사들을 만나면서 문화의 이질성은 '몽족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료 역시 하나의 문화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과학을 앞세우지만 다른 문화 못지 않게 전통이나 추측이나 터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보스턴 북리뷰 문학상' '샬롱문학상' 'LA타임스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뉴욕타임스> 등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도서로 선정됐다.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현재 미국 의대 필수교양 추천도서이자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서 신입생 교양 필독서로 채택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마무리에 한 심리치료사는 의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병이 영혼 때문에 생긴 것이라 믿기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는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이가 수술을 받다 죽으면 영영 저주받을 게 확실하다고 믿는다면요? 게다가 죽음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면요? 어느게 중요하죠? 삶인가요? 혼인가요?"

'좋은 의사란 진정 무엇인가?' '좋은 의도와 노력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문화의 차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이 책은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031-935-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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