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의료법·응급의료법 개정안 등 의결...의료인 중복처벌 완화 등
내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버스·지하철에 게재하는 의료광고도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는 당직 전문의가 상주해야 하며, 일정 조건을 갖춘 병원은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되어 정부로부터 인력·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국회는 29일 본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의료법·응급의료법·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정당한 사유 있으면 '실사 거부'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건소 등 관련 공무원의 의료기관 현지조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조항이다.
현행법은 공무원이 의료기관에서 진료기록부 등 서류를 검사하거나 의사·간호사 등에게 진술을 요구할 경우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의료업 정지,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의료기관 폐쇄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환자의 진료 또는 개인 신상의 불가피한 사정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현지조사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또 공무원이 현지조사를 나갈 때, 조사기간·조사범위·조사담당자·관련법령 등이 명시된 '조사명령서'를 지참하고 의료기관에 제시토록 규정함으로써 현지실사의 절차를 강화했다.
이번 법률 개정으로 일부 공무원들의 무분별하고 강압적인 현지실사 행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사 중복처벌 규정 '단일화'
유독 의료인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됐던 중복처벌도 상당부분 완화됐다. 지금까지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이 무면허의료행위, 불법 의료광고 행위를 저지른 경우 시정명령·개설허가취소·업무정지 등 대물적 처분과 함께 면허취소·자격정지 등 대인적 처분이 동시에 내려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무면허의료행위의 경우 면허취소·자격정지 처분, 불법 의료광고의 경우엔 업무정지 처분만 받게 된다.
이번 법률 개정은 변호사·약사·공인회계사·변리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 관련 법에는 찾아볼 수 없는 영업정지·자격정지 중복처분을 단일화함으로써 의료인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규정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불법 의료광고 사전에 차단
이와함께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버스·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불법 의료광고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국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지하도·철도·공항·항만시설 등에 부착된 벽보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의료기관 홈페이지 등의 배너광고 등도 사전 심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지금까지 의료광고 사전 심의 대상은 신문·인터넷신문·정기간행물·옥외광고물(현수막·벽보·전단)로 한정돼 있어 정작 불법 광고가 성행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은 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연구역량 뛰어난 병원 '날개' 단다
임상 뿐만 아니라 기초 의학연구에 능력이 인정되는 병원은 앞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회를 통과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은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전문병원 가운데 연구역량이 뛰어난 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하고, 정부가 보건의료기술의 개발·촉진을 위해 필요한 인력·예산 등을 지원토록 명시하고 있다.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되려면 병원의 연구 조직·인력·시설·장비 등 연구 기반 인프라가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하며, 최근 3년간 연구실적도 일정 수준에 올라 있어야 한다. 연구중심병원은 3년마다 평가를 받아 재지정 또는 지정 취소될 수 있으며, 평가업무는 전문기관 또는 단체가 위탁 실시할 수 있다.
'연구중심병원'의 명칭을 무단 사용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애초 추진됐던 연구중심병원의 신의료기술에 대한 한시적 비급여 조항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돼 아쉬움을 남겼다.
응급실 '당직 전문의' 상주해야
응급의료기관은 응급실에 '당직전문의'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한다. 개정된 응급의료법은 응급실에 당직 전문의를 두도록 명시하고, 당직전문의나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의사가 아닌 사람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와함께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도 응급의료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자동제세동기 등 응급장비 구비 의무 주체에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을 추가했다.
또한 의료기관을 제외한 구급차 운용자는 지도의사를 두거나 위촉토록 의무화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중앙응급의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 5년마다 응급의료기본계획을 수립토록 했다.
의료계 반발 속 '한의약육성법' 통과
한의사의 의료기기 불법사용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이 결국 이날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한의약의 정의를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와 한약사(漢藥事)를 말한다'고 규정했다.
의료계는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신과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어
이밖에 이날 통과된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진료과목 '정신과'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병원급 의료기관은 병원감염 예방 등 감염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전담인력을 두어야 한다.
또 국가와 지자체가 치매의 예방·진료 및 조사·연구 등 사업을 시행하고, 종합병원 등이 '중앙치매센터'로 지정돼 정부 지원을 받아 치매연구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내용을 담은 치매예방관리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한편 개정 법률의 시행시기는 '정신건강의학과' 명칭 변경과 의료광고 사전 심의대상 확대는 공포 직후부터, 의료기관 현지조사 거부권과 의료인 중복처벌 단일화,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치매예방관리법은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응급실 당직전문의 의무화 등은 공포후 1년 뒤부터 각각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