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사용의 두 번째 규칙 ①
올해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건 테마는 '항생제 내성과의 전쟁'이다. 세계 곳곳에서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다제내성균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 OECD 가입국의 항생제 사용량 비교 결과 우리나라의 항생제 소비량은 벨기에와 함께 1위다. 항생제의 과다 사용은 다제내성균의 출현 및 제어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만큼 적절한 대책이 시급하다. 항생제 사용의 첫 번째 규칙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 규칙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ICU Book, Paul L. Marino)이라고 했다. 감염 및 내성관리, 그리고 환자의 예후와 생존을 위해, 이 규칙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본지는 '항생제 사용의 두 번째 규칙'이라는 제목 하에 국내 항생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4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
백경란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항균제적정사용 임상연구센터장)
항생제 내성 현황
작년 말,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NDM-1(뉴델리 메탈로 베타 락타메이즈-1) 생산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이하 CRE)이 국내 최초로 보고되었다.
NDM-1 생산 CRE는 2009년 인도에 다녀온 유럽인에서 처음 분리된 이후 인도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다수의 영국인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인도·파키스탄·유럽 국가·미국·호주·일본 등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세계 의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카바페넴(carbapenem)은 광범위 베타락탐 분해효소(extended spectrum beta-lactamase, 이하 ESBL) 생산 균주 등 다제내성균에 의한 감염증 치료에 사용하는 항생제인데 'NDM-1'이라는 카바페넴 분해효소를 생산하는 장내세균의 발생은 곧 진료 현장에서 효과적인 항생제의 치료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적의 약으로 불리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개발되고 약 70년의 짧은 기간 동안 항생제 내성의 만연과 함께 항생제는 그 위력을 잃고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우려다.
특히 우리나라는 항생제 내성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는 세균 종을 통틀어서 'ESKAPE'균종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Enterococcus(장알균)·Staphylococcus aureus(황색포도알균)·Klebsiella pneumoniae(폐렴막대균)·Acinetobacter(아시네토박터)·Pseudomonas aeruginosa(녹농균)·Enterobacter species(엔터로박터)의 첫 자를 딴 것으로 다제내성이 임상적으로 위협이 되고 있는 균종이다.
대표적인 병원균인 황색포도알균(S. aureus)의 메티실린(methicillin) 내성률은 약 70%, 중환자실은 약 90%로 중국·대만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발생하는 감염증의 주요 원인균인 녹농균(P. aeruginosa)이나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의 경우, 피페라실린(piperacillin)·세프타지딤(ceftazidime) 외에 카바페넴에 대한 내성이 증가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데 카바페넴 내성률이 전체적으로 약 20%, 중환자실에서는 40%에 이른다.
카바페넴 내성 균주는 대부분 다른 항생제에도 내성을 보이는 광범위 내성(extensive drug resistance)이어서 효과적인 항생제가 매우 제한적이다.
대장균이나 폐렴막대균(K. pneumoniae)을 포함하는 장내세균은 일차적 치료제로 사용되는 퀴놀론(fluoroquinolone)이나 3세대 세팔로스포린(cephalosporin)에 대한 내성률이 20∼30%이다.
3세대 세팔로스포린 내성인 ESBL 생산 균주는 주로 병원에서 문제가 되어왔으나 최근 지역사회에서도 항생제 치료력 등의 위험인자 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장균과 폐렴막대균의 경우 ESBL 생산율이 인도에서 79%, 62%, 중국에서 36%, 15.2%로 매우 높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고 있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ESBL 생산 균주의 증가는 카바페넴의 사용을 유도하고 카바페넴의 사용은 카바페넴 내성의 증가를 초래하므로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항생제 사용의 문제점
2010년 우리나라의 항생제 소비량은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단위인구당 가장 많은 항생제가 사용되었다는 의미이다. 항생제는 광범위하게는 세균·진균·바이러스에 작용하는 모든 제제를 포함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세균에 작용하는 항균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항생제는 세균 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제이며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증에는 효과가 없다.
그러나 설문 조사에 의하면 50% 이상의 응답자가 감기에 항생제가 효과가 있다고 답해 일반인의 항생제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의사들 또한 세균 감염증과 바이러스 감염증의 감별 진단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발열 등의 증상이 있으면 진단적으로 감별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항생제 처방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아직도 많은 급성상기도감염 환자에서 항생제가 처방되고 있다. 항생제 처방률이 2002년 74%에서 2009년 54%, 2010년 53%로 감소 추세인 것은 긍정적 결과지만, 아직도 항생제 처방률이 80%를 웃도는 의료기관이 많다.
국내외 연구에 의하면 항생제 사용 중, 약 30∼60%가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생제의 부적절한 사용은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사용하거나, 항생제의 선택이 잘못되거나, 항생제의 용법·용량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포함한다.
항생제 오남용이 항생제의 내성을 유발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퀴놀론(fluoroquinolone)의 사용이 증가하면 퀴놀론 내성이 증가하고 3세대 세팔로스포린(cephalosporin)의 사용이 증가하면 ESBL 생산 균주가 증가한다. 카바페넴 내성은 카바페넴 사용의 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역사회에서 분리되는 대장균의 79%가 ESBL 생산 균주인 인도에서 ESBL 생산 균주에 의한 감염증의 치료를 위하여 카바페넴의 사용이 많을 것이고 이런 인도에서 NDM-1 생산 CRE가 최초 분리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수순이다.
또한, 항생제 오남용은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으로 인한 의료비용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항생제 부작용 발생 위험이 증가하여 임상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의 부적절한 선택이나 부적절한 용법은 치료 실패의 원인이 되어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예후를 초래할 수 있다.
항생제 내성에 대한 대책
항생제 내성에 대한 대책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으로 내성균의 출현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인 감염관리를 통하여 내성균의 전파를 방지하는 것이다.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이란 항생제 투여가 필요한 세균 감염증에만 항생제를 사용하고, 항균력·내성유도성·약물동력학적 특성·부작용·약가 등에 근거하여 가장 적절한 항생제를 선택하고, 권장되는 용량과 치료기간을 지키는 것이다.
세균 감염증이 없는 '발열'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는 일은 없어야겠고,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중증 환자에게 경험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하기 시작하였더라도 세균 감염증의 증거가 없으면 바로 중단하여야 하고 초기에 광범위 항생제를 사용하더라도 미생물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는 좁은 항균범위를 갖는 항생제로 변경 투약하는 단계적 축소 치료(de-escalation therapy)를 적용한다.
하지만 항생제를 조기에 종료하면 일부 살아남은 세균이 내성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감염증 별로 권장되는 치료기간은 지켜야 한다.
최근 항생제의 권장 치료기간이 많이 짧아지고 있으므로 항상 최신자료를 참조하도록 한다. 또한, 항생제를 저용량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내성 발생을 유도하므로 반드시 권장되는 용량을 투여하여야 한다.
항생제를 선택할 때 최근 강조되는 것 중 하나는 내성유도성의 문제이다. 단순히 살균력을 갖는 용량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성유도를 방지하는 용량을 투여하는 방법과 항균력이 같다면 내성유도성이 낮은 항생제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카바페넴 내성이 문제가 된다면 카바페넴의 사용을 가능한 줄이기 위하여 ESBL 생산 균주에 의한 감염증 치료에 내성 기전이 다른 티제사이클린(tigecycline) 등의 항생제를 선택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항생제 사용량이 줄면 항생제 내성률이 감소한다는 자료도 찾을 수 있는데, 한 중환자실 연구에서는 카바페넴 사용이 줄면서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CRAB, Carbapenem-Resistant A. baumanii)에 의한 감염증이 감소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출현한 항생제 내성균은 환자들 사이에서 전파되면서 점차 지역적으로 확산된다. 감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내성균에 의한 감염증이 급증할 수 있다. 이러한 내성균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손 씻기, 소독 등의 철저한 감염관리가 필요하다.
인도에서 ESBL 생산 장내세균이나 CRE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항생제의 무분별한 오남용이 내성균의 출현을 조장하였고 보건 인프라가 열악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자발적 노력뿐 아니라 보건 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최근 보건 당국이 감염관리를 강화한 것은 긍정적인 시작이지만 내성균을 관리하기 위해서 규제보다 필요한 것은 실천적 정책과 의료기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다.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을 유도하기 위하여 국내 상황에 맞는 임상진료지침 개발을 위한 지원과 내성균을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대한 투자 역시 국가가 주도하여야 할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