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만에 전격 공개 결정…이의신청 절차 도입 등 눈길
기출문제집 출판·공개지속 결정 등 불확실성 해소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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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6월 28일 2012년 1월 치러지는 제76회 의사국시 필기시험부터 기출문제와 답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개결정은 필기시험 문제유출 논란을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국시를 비롯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 기출문제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2003년 치과의사국시에서 낙방한 A씨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을 상대로 시험문제 공개를 청구했지만 법원은 국시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원은 1년 뒤인 2004년에는 의사국시에서 1.5점 차이로 불합격한 B씨가 국시원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는 기출문제를 공개하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시험문제 공개로 국시원이 향후 시험문제 개발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를 이유로 정답지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봐서는 안된다"며 "비공개로 얻게 되는 이익보다 공개해 출제·채점 오류에 대한 검증 기회를 보장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결했다.
국시원은 판결에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은 기출문제 비공개의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의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원고인 B씨가 길어지는 재판에 부담을 느껴 재판을 포기하는 바람에 국시원은 비공개 원칙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응시자들의 공개청구 소송은 잘막아냈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국시원이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몇몇 출판사들이 응시자들에게 문제를 복원시켜 문제집을 팔아 결과적으로 기출문제가 유출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문제은행 출제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국시원으로서는 지속적인 문제유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출판사들의 불법적인 행태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성이 커졌다.
의대생 입장에서도 출판사들의 행태는 문제였다. 출판사들은 기출문제를 낮은 댓가를 지불하고 응시생들에게서 구해 문제집을 출판한 후 이듬해 응시생이 될 예비 응시생들에게 비싸게 팔아치웠다.
선배 응시생들이 헐값으로 출판사에 문제를 넘기고 후배들은 선배들이 넘긴 문제를 비싸게 사서 쓰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국시원이 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기출문제집을 낸 출판사 3곳과 편저자 8명을 저작권 침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부터다.
현재 검찰은 사건을 조사 중이며 조만간 기소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고소조치와 함께 국시원은 응시생들에게도 "기출문제를 복원하려는 행동은 국가시험 관리업무를 방해할 뿐"이라며 기출문제 복원을 하지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응시생들이나 예비 수험생들이 문제를 복원해 합격여부를 미리 점검하려하거나 앞으로 볼 시험에 대비하려는 욕구를 억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을 것이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험관리의 대안을 찾아 응시생들의 자연스러운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기출문제 공개를 꺼려 발생하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시험문항의 오류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우려도 공감을 얻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008년 치러진 한의사국가시험이다.
2008년 한의사 국시에서 한점차이로 불합격한 D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D씨가 제기한 본초학 관련 문항의 답이 2개일 수 있다며 D씨의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직 의사국시에서는 같은 사례가 나온 적은 없다.
하지만 몇해째 몇몇 문제들의 오류가능성이나 2개 이상의 정답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기출문제가 오류가능성을 줄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기출문제 공개 2012년 의사국시에 어떤 영향미치나
국시원의 기출문제와 답안 공개선언은 기출문제 미공개로 빚어지는 이같은 지적들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시원은 기출문제 공개입장을 밝히면서 현행 의사국시 출제방식인 문제은행 출제를 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대신 기출문제 공개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제가 다시 출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문제은행 보유 문항수를 기출문항 대비 25배수에서 2012년 의사국시부터 30배수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기출문제가 450문항인 만큼 1만3500문항을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문제형식의 변화도 감지된다. 단순암기식 문제를 지양하고 의사면허에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역량을 종합적인 사고에 바탕을 둬 풀 수 있는 문항으로 차차 바꿔나갈 예정이다. 단순암기식의 'A형' 문항을 줄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R형' 문항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복지부는 "2012년 1월 의사국시에 바로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출제형식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의사국시 출제문제가 500문제에서 450문제로 줄어드는 만큼 R형 문항의 수를 지난해와 같이 유지한다면 R형 문제의 전체문항 대비 비중은 커진다. 기출문제 공개로 출제방식이나 문제유형의 큰 틀에 변화를 주되, 갑작스러운 수험생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2012년 의사국시에 당장 적용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2013년부터 R형 문항의 비중이 늘어가겠지만 국시원이 종합적인 사고력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출문제 공개와는 상관없이 몇해전부터 R형 비율을 늘려 나가겠다고 발표한터라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출제방식의 변화는 없지만 2012년 의사국시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게 있다. 바로 출제문항에 대한 다양한 이의제기를 받고 소화해내는 '이의심사위원회'의 설치다.
이의심의위원회의 설치는 지금까지 공식화하기 어려웠던 의사국시 문항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론화하겠다는 조치로 읽힌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 의사변호사)는 "의사국시를 본 후 시험문제에 의문이 들어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며 "국시원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의심의위원회의 설립으로 한국 의사국시 시스템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경권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 후 의대에 편입, 2008년 68회 의사국시를 치렀다.
국시원은 시험이 끝나면 시험문제와 정답가안을 공개하고 시험이 끝난 날부터 사흘 동안 응시생의 이의를 받는다. 제기된 이의신청들은 이의심의위원회가 취합해 '정답확정회의'를 열어 최종 정답을 확정한 후 공고한다.
이의신청시스템의 도입으로 종전 시험에 비해 합격자 발표일이 조금 늦어진다. 국시원은 시험 후 최소 9일 정도 걸리던 합격자 발표일이 이의신청기간 도입으로 시험 15일 뒤에나 합격자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출문제 공개에 따른 소송 증가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경권 변호사는 "기출문제와 답이 공개되면 문제공개 청구과정없이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등 소송이 쉬워져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현우 국시원 출제관리국 과장은 "초기에는 소송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지만 제도가 정착되면 부담스러운 소송보단 이의신청제도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2012년보다 2013년 응시생에 영향…커진 불확실성이 문제
국시원의 발표를 보면 기출문제 공개로 2012년 1월 의사국시를 볼 응시생들이 예년과 다르게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사국시 기출문제집 출판여부 등 몇몇 현안들이 남아 있어 수험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2012년 응시생보다 2013년 예비 수험생부터 기출문제 공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기출문제집 출판여부가 관심거리다. 국시원은 지난해 12월 기출문제집을 출판한 출판사들을 저작권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출판사들은 고소 이후에도 2011년 1월 의사국시 문제가 담긴 문제집을 출판했지만 기소가 결정될 경우, 문제집 출판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013년 예비 수험생들은 문제집없이 의사국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출문제집을 출판하고 있는 한 출판사는 "기출문제집을 출판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운게 사실"이라며 "검찰의 기소여부와 재판결과를 보고 출판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아 현재로서는 관망 중"이라고 밝혔다.
문제집 출판여부가 여전히 안개속을 걷고 있는 이유는 국시원이 문제집 출판여부에 이렇다할 입장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시원은 문제집 출판과 관련해 현재 3가지 가능성을 두고 고민 중이다.
3가지 방안은 기출문제와 답만 공개하고 문제집 출판은 하지 않는 방안, 일반 출판사들과 판권계약을 맺어 일반 출판사들이 합법적으로 출판을 하게 만드는 방안 그리고 국시원이 직접 기출문제집을 출판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국시원이 직접 문제집을 출판할 경우, 시험 출제기관이 기출문제집을 출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부담되고 출판을 안할 경우는 예비 응시생들의 수요가 있는 이상 현재와 같이 저작권을 무시한 출판사들의 과열된 경쟁을 불러 올 수 있다.
현재로서는 민간출판사나 공공성을 지닌 의료관련 단체와 정식계약을 맺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시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기세영 건국의전원생(3년)은 "이전에 출판된 문제집들로 어떡하든 준비를 하겠지만 기출문제집 출판에 관한 사안이 빨리 결정이 났으면 좋겠다"며 "국시원이 예비 수험생들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집 출간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현우 국시원 출제관리국 과장은 "예비 수험생들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출제집 출간여부를 의사국시 시행공고가 나는 올 9월까지 결론지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