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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서 맞는 의사들' 해법 찾기 골몰

'응급실서 맞는 의사들' 해법 찾기 골몰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1.08.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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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협, 6일 '응급의료현장 폭력발생 방지 위한 토론회'
폭행 방치→응급실근무 기피…전문 경비인력 활용 '이견'

#1.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40대 여성 김 모 씨. 119를 통해 인근 K병원에 내원한 김 씨는 열상 봉합을 위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는 인턴의 말에 "최근 스트레스로 머리가 많이 빠지는데 화가 난다"며 의료진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고, 다른 환자의 EKG(심전도) 검사지를 찢어버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2. 사망한 환아의 아버지 이 모 씨는 깨진 병을 들고 해당 병원 응급실에 내원, 의료진을 위협하는 과정에서 보안요원의 손이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동행한 보호자 십수 명이 소아병동에서 전공의들과 교수에게 폭행을 시도, 안면을 가격해 의료진의 입술이 찢어지고 멍이 드는 등 오후 진료를 마비시켰다.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응급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전문 경비업체 인력을 배치하고 있지만,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제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전문인력이 물리력을 행사할 경우 쌍방 폭행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인 안전이 위협받음으로써 생기는 응급의료의 공백은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료현장에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항영 주임(강북삼성병원 법무파트)은 6일 이화여자대학교 포스코관에서 열린 '응급의료현장의 폭력발생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응급실에서의 폭력 사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응급의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하게 된다"며 의료계 내부의 노력 만큼 입법·행정·사법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가 주최하고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 이 주임은 "응급실 현장에서 폭력이 발생한 직후 공권력에 의한 예방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 예방적 효과를 위해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응급실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법률조항을 신설하고 경찰과 병원의 유기적 협력에 따른 대응책을 강화하며, 전문 경비인력에 적극적 폭력 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을 고려할 것을 방안으로 내놨다.

사례 #1에서 김 씨의 폭행으로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환자의 상태를 걱정한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수십 분 간 설득한 끝에 뇌 CT를 촬영하고 응급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 1명은 충격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주임은 "사고 당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보안요원과 경찰을 비난하고 난동자를 경멸하지만 혹여 환자가 퇴원 후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는 것이 의료진"이라며 "사후적인 엄벌 보다는 응급상황 발생 징후가 나타나면 사전 예방적 강제조치를 적법절차에 따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유인술 응급의학회 기획이사(충남의대 교수·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오른쪽)는 6일 토론회에서 "환자 만족도를 위해서는 의료진 만족도부터 높여야 한다"며 응급실 폭행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전문 경비인력-경찰 공권력 사이 '갈팡질팡' 

토론자들은 의료진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하면서도 전문 경비인력의 권한 보장 등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이충현 팀장(에스텍)은 "의료진이나 병원 직원의 언행에 불만을 품은 환자나 보호자가 폭력을 행사할 때 보안팀에만 일임하고 당사자들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의 대응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이 팀장은 "응급실 취약시간이나 환자가 많을 때 인근 POST 근무자를 배치해 업무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럴 경우 다른 업무공백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응급실 근무자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대우 및 처우를 강화해줘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변호사(바로법률)는 "응급실은 심신이 고통스러운 환자들이 내원하는 만큼 무기를 휴대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상주해 분위기를 삼엄하게 조성하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의료진의 자세한 설명 및 시스템 보완을 통해서도 저지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서는 경찰과의 유기적 협력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구급대원 폭행 문제도 심각 "근본대책 수립해야"

22년 경력의 현직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에 근무하는 경비인력에 대해서는 폭력 행위에 대한 적극적 제압을 가능하도록 하는 특별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며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늑장 대응은 물론, 폭력 사건에 대한 의료진이나 병원측의 고소가 있어도 적당히 합의할 것을 종용함에 따라 응급실 의료진은 경찰에 신고해봐야 소용없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유인술 대한응급의학회 기획이사(충남의대 교수·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는 "그 동안의 경험상 사건이 생기면 경찰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환자나 보호자가 행사하는 폭행뿐 아니라 119 구급대원에 의한 의료진 폭행도 문제시 되고 있다"면서 지방 모 대학병원에서 구급대원이 의료진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행사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유 기획이사는 "폭력 문제를 방치하면 의료진이 응급실 근무를 기피하게 되고 근무의욕도 저하되는 만큼 환자들의 진료권을 보장하기 위해 병원 당국·의료인·경찰 등 유관기관과 국민 모두가 나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라며 "문제 해결을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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