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6 06:00 (금)
보라매병원 토론회2 이상돈

보라매병원 토론회2 이상돈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4.08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Ⅰ. 관점의 대립과 갈등
보라매병원사건에 대한 제1심 법원의 살인죄 판결은 다른 어떤 의료사고소송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관점의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었다. 최근 항소법원은 살인방조죄로 판결함으로써 치료중단에 대한 법적 비난의 수위를 낮춘 바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과 보험제도의 구조정책을 계기로 전개되어 온 의료계, 정부 간의 골깊은 갈등과 대립은 살인방조죄의 법적 비난에도 마치 축소판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치료중단의 범죄화와 합법화를 둘러싼 의료계와 국가권력(정부, 검찰, 사법부)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항소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잠재워지기는 어려울 것같다.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관행화되어 온 의료행위의 하나로서 치료중단을 살해행위로 묘사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 그들에게 '의료살인' 또는 '의료살인방조'란 그 자체로서 '형용의 모순'이다.

이에 반해 생명윤리에 충실한 종교인이나 생명윤리로부터 나오는 의사의 윤리적 의무를 아무런 여과없이 법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법률가의 입장에서는 임상현실이 어떠하건간에 의료인의 생명경시적인 직업활동방식을 살해행위나 살인방조행위로 서술하는 것이 규범적·상징적으로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입장에서 생명윤리는 곧 법윤리가 되며, 법윤리는 의료인에게 주어지는 거의 모든 윤리적 요청을 법적 의무로 전환시킨다. 그러면 의료사회의 하부문화와 법체계 사이의 이 첨예한 관점의 대립과 갈등은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 것일까?
 
Ⅱ. 정당화의 구조
환자보호자의 퇴원요구를 만류하지 못하고 치료를 중단한 의사에게 살인죄나 살인방조죄 등을 적용하는 판결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조건의 정당화 구조 위에서 이루어진다

-실체적인 이익형량:환자의(잠재적인) 자기결정권이나 의사의 생명유지의무(또는 환자의 생명권)를 가족의 결정권이나 병원의 수익권보다 '더 우월한 권리'로 인정한다.
-국가적 해결:구체적인 사안에서 그러한 우월한 권리가 존재하는지를 법원이 직접 판단한다.
 
이러한 이익형량적 구조에서는 적어도 환자의 생존확률을 기준으로 치료중단행위가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원적인 코드'에 따라 판단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생존확률이 전혀 없을 경우(0%) 치료중단행위는 소극적 안락사로서 합법화되고, 생존가능성이 있는 경우(1%~100%)의 치료중단행위는 불법으로 낙인찍힌다.

또한 만일 생존가능성(1~100%)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의학적으로 유용한 치료'(의학적 유용성)가 없는 경우를특히 이 의학적 유용성에 대한 판단을 가령 1% 이하의 생존확률이라는 식으로 계량화하여 일정률 미만의 미미한 생존확률만 인정되는 경우를합법화한다면, 합법은 또 한번 일정한 생존확률을 기준으로 '합법화되는 범죄행위'와 '위법한 범죄행위'로 갈라질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생존가능성의 유무는 법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우 불확실하고, 상황적으로 급변하는 확률 개념일 뿐이다. 법적 개념으로서 생존가능성은그것을 치료중단의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 한'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 또는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그런 식의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생존가능성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기도 한 것' 또는 '많다가도 적게 되고, 적다가도 많게 되는'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의학적 개념으로서 생존가능성이나 생존확률은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원적 코드에 담겨질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여기서 국가기관인 법원은 환자보호자의 퇴원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서, 바꿔 말해 의사의 법적인 생명유지의무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주체로서 적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법관은 생명유지의무의 유무를 결정하기 위한 이익형량적 판단의 한 중심요소인 환자의 생존확률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판단의 전문성). 이에 대해 법원은 의료전문가들을 감정인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인의 활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응급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확률은 '사실판단'의 문제라기 보다는 의료전문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다른 해석간에 객관적 우월성을 판정지울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어떤 해석의 객관적 우월성이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생존확률의 판단은 바로 그 환자의 응급수술을 담당한 의사에게 내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객관적으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다른 의료전문인이 그보다 객관적으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한치료내용의 결정과 시술을 행하고 그에 따른 환자의 임상적인 증세를 직접 주의깊게 관찰하였다는 점에서 적어도 다른 의료전문인들보다는 '더 나은 판단의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판단의 임상관련성).

다시 말해 담당의사는 다른 의료인들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더 '적절'하게 판단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은 환자의 치료계속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그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의사보다 더 나은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책임윤리의 관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윤리적 판단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서, 그 판단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러한 책임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법원은 생존의 확실성이 밝혀지지 않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계속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환자보호자보다 더 적합한 판단주체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환자의 생존이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보호자와 가족들이 생존마저 위협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극히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면 국가는 환자보호자나 그 가족들에게 불투명한 생존확률과의 그 지리한 싸움을 끊없이 펼칠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적어도 국가가 환자의 치료비를 재정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않는 한에서는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런 강요가 환자보호자와 가족들에게 가져다 줄 고통과 희생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법관은 환자보호자와 가족 자신들보다 더 잘 알 수 없으며, 또한 그 고통과 희생을 법관이 대신 짊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Ⅲ. 치료중단과 자연법의 한계
치료중단을 살인 또는 살인방조로 보는 것은 결국 '의사의 생명유지의무 또는 환자의 생명권이나 자기결정권'과 '가족의 결정권 및 병원의 수익권'을 비교형량한 후 전자가 후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함을 전제로 한다. 이 이익형량적 사고를 법원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실체적인 정의'(materielle Gerechtigkeit)의 규준을 만드는 논증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인간의 생명을 아예 다른 이익과 비교형량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사상, 따라서 인간생명의 보호를 법의 폐기할 수 없는 과제로 설정하는 자연법적 사고가 치료중단행위의 범죄화 정책 속에 배어있다. 그렇지만 처분해서는 안되는 것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오늘날 분명하지 않다.

이는 현대사회의 현실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 또는 특정한 원칙이나 이념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정의를 확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가치판단의 지평이 중층적이며, 문화적 양식도 탈중심화된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대개의 의사들은 전승된 직업윤리를 아무리 동원해봐도 보라매병원의 의사들이 행한 치료중단행위를 살인이나 살인방조죄로 단죄하는 것을 정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 의료계가 의료사회의 규범과 문화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들고 일어나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이는 법조인의 통상적인 정의관념과 이 사안에서 보여주는 의료인들의 정의관념이, 적어도 어느 한 쪽의 관념을 법적 정의의 내용으로 채울 수 없을 정도로 큰 간극이 있음을 말해준다. 이 간극은 사회보장적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기능적 결함과 그 결함 속에서 형성되어온 임상현장의 하부문화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형성된 의료인의 정의관념 및 불법의식 등에 의해 빚어진 결과이다.

이런 식의 구조결함, 하부문화 그리고 법의식 등은 현대사회에서 날이갈수록 복잡하게 갈래치고 심화되어만 간다. 그런 사회현실 속에서 올바른 법의 내용은 실체적으로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통일적으로 확정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현대사회는초역사적인 추상적 자연법이든, 역사적인 구체적 자연법이든'자연법적 확실성'(naturrechtliche Gewi heit)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시대에서 법패러다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즉, 법이 올바른 규범의 내용을 '실체적'으로또는 자연법적으로정하는 패러다임으로부터 규범의 올바름을 '절차적'으로, 그러니까 대화적 의사소통에 의한 합의되는 규범을 올바른 규범으로 제도화하는 패러다임으로 변화된다.

그에 따라 법적 인식관심은 '무엇이 정의이냐'에서 '어떻게 우리 모두가 어떤 규범을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로 그 중점이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생명의 처분불가능성이란 이념도 법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은 '내용적 원칙'이 아니라 '절차적 원칙'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법은 규범의 타당성에 대해 모든 사람들 사이에 상호이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대화적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테두리조건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정의의 실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나는 절차주의적 법모델(법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보라매병원의 환자가 퇴원해야만 했던 주된 이유인 치료비 부족을 이를 테면 국가가 직접 메워주거나, 메울 수 있게 하는 의료체계가 기능하지 못한 책임을 왜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근거를 국가가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런 상황에서 감행된 치료중단에 대한 불법성 판단은 정당성을 창출하기 어렵다.
 
Ⅳ. 치료중단의 절차적 정당화
치료중단을 살인행위로 처단함으로써 의사의 생명유지의무를 무조건적으로 강화하려는 정책은 마치 이성없는 감성처럼 맹목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맹목적인 법정책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형법은 단지 '상징적'인 기능만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방어진료'와 같은 유해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여기서 치료중단을 살인죄규정으로 통제하는 형법정책은 거두어 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법정책의 철수는 환자의 생명보호나 의사의 생명유지의무 또는 가족들간의 상호보호의무를 오직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에 내맡겨 두고 마는 허무주의적 '불간섭'의 이상에 빠진 '자유주의적' 법정책으로써 형법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의사나 환자보호자들이 각자의 (윤리적)의무를 스스로 최대한 실현하도록 유도하는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통로는 무엇보다도 의사나 환자보호자들이 치료중단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다양한 '관점의 교류'(Perspektivenwechsel)가 이루어지는 대화적 구조로 짬으로써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환자보호자는 담당의사와 관련종교인 또는 사회상담원과 치료중단에 대하여 서로가 갖는 관점을 교환하는 대화적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치료중단결정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환자와도 치료중단에 대한 잠재적이며 가상적인 '관점의 교환'을 현실화할 수도 있다.

이런 대화의 과정은 환자보호자가 궁핍한 상황에서 빠지기 쉬운 고립감정이나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경제적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쏟아 넣을 수 있도록 동기화할 수도 있다.

또한 담당의사도 환자보호자와는 물론이고 치료중단에 대하여 동료의사들과도 치료중단에 대한 의학적 해석관점과 윤리적 관점의 교환을 전개하는 대화의 터널을 지나도록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계속 치료중단을 요구하는 보호자를 최대한 설득하는 윤리적 의무의 이행을 북돋는 동기가 형성되고 강화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자율적으로 병원의 수익성이 다소 악화됨을 감수하면서까지 환자치료를 계속하는 희생적 태도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은 바로 이와 같은 대화의 통로를 제도화하는 데에서 자신의 임무를 끝마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 통로를 거친 후에도 보호자가 치료중단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의사가 치료를 중단한 경우에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부과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의무이행을 유도하는 '절차'를 모두 밟는 것은 그 후에 이루어지는 치료중단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치료중단의 '절차주의적 정당화'(prozedurale Rechtfertigung)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절차적으로 정당화된 공간 속에서 환자보호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는 개인의 실존적 문제로만 남게 된다. 물론 법이 정하는 대화적 절차에 따를 의무를 위반한 점에 대해서는 (형벌을 포함한) 법적 제재가 가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중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절차를 제도화한다는 것은 관점의 교환이 무제한적으로 펼쳐지게끔 하는 영원한 대화의 과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대화적 과정에 환자, 의사 그리고 환자보호자 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대화비용)이 각자가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대화를 통한 자율적인 성찰과 관점의 교환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화적 과정은 예를 들어 치료중단의 결정이 내려지는 환자의 상태가 허용할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의사가 다른 환자에 대한 진료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데 장애가 초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환자보호자가 경제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펼쳐져야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범위가 당사자들이 감수해야만 하는 대화비용인지는 여기서 단정지을 수 없다. 대화비용의 적정선에 대한 판단 역시 '시행과 착오'의 반성적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즉, 정책은 반성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치료중단의 정당화절차를 제도화하는 입법의 골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결정의 주체:의료보험과 보호제도에 의해 치료비를 조달할 수 없는 경제적 곤궁을 이유로 의식불명의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을 결정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보호자와 의사이다.

보호자의 상담절차:보호자가 의사에게 치료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환자상태에 대한 의학적 의견서를 바탕으로 관련 종교인과 사회상담원과의 상담을 필수적으로 거치게 한다.

의사의 협의절차:상담절차를 거친 후에도 보호자가 의사에게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을 요구하면 의사는 일정 수의 같은 전공분야의 동료의사와 의학적 협의를 하고 병원내의 생명윤리위원회를 통하여 윤리적 대화를 전개하며, 아울러 병원의 경영진과도 경제적 협의를 거치도록 한다.

의사의 자율결정:의사는 협의 후에 치료중단에 대하여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기록의무:보호자와 의사는 각자가 거친 상담과 협의 및 결정의 내용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형법의 엄호:치료중단의 절차를 준수할 의무를 의사에게 부여하고 그 위반에 대하여는 형법적 제재를 가한다.
 
이러한 절차적 조건은 대략 간접적 안락사에 요구되는 요청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환자의 생존가능성을 고려하여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마치 적극적 안락사에 요구되는 절차적 정당화의 조건에 상응하도록, 예를 들면 법원(가정법원)이 상담과 협의절차가 끝난 시점에서 의사에게 치료중단여부에 관한 '결정권'을 부여하는 절차를 더 둘 수도 있을 것이다(법원의 결정권 부여절차).

물론 이 경우 결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의사이고 법원은 결정권을 부여하는 권한만을 지닌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때 법원이 의사에게 치료중단여부의 결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결정을 할 때에는 국가로 하여금 환자보호자가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를 충분하게 재정적으로 보조하도록 함을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재정적 보조).

또한 위에서 말하는 형사처벌은 치료중단의 살인범죄화와 같이 치료중단에 관한 실체적 정의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준수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협의(상담)의무를 부과하고 그 이행을 보증하는 수단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 형사처벌은 치료중단결정의 실질적 내용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그 결정 절차의 독단성이나 비합리성에 대한 (절차적) 통제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사처벌은 살인죄이나 살인방조죄처럼 무거운 것일 수 없고, 약한 형사제재를 받는 행정범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