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통계앓이 중입니다"

"지금, 통계앓이 중입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2.06.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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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배의 술술 보건의학통계> 펴낸 배 정 민 연세의대 임상강사

 
사랑에 빠졌을 때 만큼 겉으로 감추기 어려운 게 있을까. 세상살이에 지친 얼굴에는 그늘이 사라지고, 처진 어깨와 움추렸던 가슴은 요동치는 기운에 들썩이고, 새롭게 꾸며갈 삶에 대한 설렘에 숨결조차 예사롭지 않다.

평생 반려할 연인에게서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친구, 또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어서 일에서도, 학문에서도, 배움에서도 그렇다.

하고싶은 일을 하고, 탐구하고 싶은 학문에 천착하고, 한가지 씩 배움의 영역을 넓혀가는 기쁨도 그에 못지 않다. 조금은 낯선 '통계'와의 사랑을 시작한 의사가 있다.

'첫 술이 배부르게' 그의 외도는 작은 결실도 맺었다. '밝고 맑아' 보인, 그래서 행복해 보인 배정민 연세의대 임상강사(세브란스병원 피부과)가 시작한 통계와의 러브스토리. 그 첫 장을 연다.

▲ ⓒ의협신문 김선경
4월까지만해도 군인(국군일동병원 군의관)이었던 그는 전역과 함께 <그림으로 이해하는 닥터 배의 술술 보건의학통계>을 펴냈다. 군복무기간 동안 책을 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통계책이라니…. 통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대학에 있는 의사로서 임상연구를 수행하는 데에는 통계적인 처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간단히 적용할 수 있는 분석도 있고 조금 난이도가 높은 분석도 있습니다. 통계적인 분석 없이는 논문을 쓸 수 없습니다.

대부분 의대에 입학해 의학통계 과목을 이수하지만, 그 당시에는 의학 논문을 읽을 일도 없고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것도 아니어서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전공의 고년차부터 시작해서 임상강사가 되면 본격적으로 많은 연구에 관여하게 되고 의학통계라는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군의관으로 있는 3년 동안 막연하지만 영어와 통계를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는 하지만 관심만으로는 쉽게 가까이하기 어려웠을 듯 하다. 통계를 좇아다녔던 시간도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저는 통계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임상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책으로 공부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군의관 2년차 때 15주 코스인 서울의대 의학통계 심화과정을 이수하게 됐고, 여름·겨울 휴가를 통해 한국역학회 연수강좌를 2년 동안 수강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듣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이곳저곳 강의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교수님 마다 관점을 달리한 설명을 듣다 보면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따라가기 바빴지만 반복 학습을 통해 이해도를 높일수 있었고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수업 중에 질문을 통해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 ⓒ의협신문 김선경
그는 배운 것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지 않았고 자연스레 다른 이들과 나누는 자리가 이어졌다. 군의관시절로 돌아간다.

"2년차 군의관이 통계를 공부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다보니, 곧 임상강사로 들어갈 전역을 앞둔 선배 군의관 대여섯 명이 모여서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통계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3회정도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3회 기초과정이 끝나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부분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져 한 회씩 준비하다보니 결국 4개월 동안 총 12강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사실 강의준비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도 겨우 통계를 돌려볼 수준인데 남들 앞에서 설명하려니 제가 공부했던 교재, 이 책 저 책 다 뒤져가며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듣는 이는 겨우 대여섯 뿐이었지만, 그들의 열의만큼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혼자 진행했다면 아마 12강까지 가지 못했을텐데 외과 군의관 중에 통계에 관심 있던 동료가 큰 힘이 됐습니다.

그와 함께 준비하면서 1년이 지나자 좀더 많은 이들에게 준비한 것을 내보이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12주 일정을 8주로 조정하고 모든 군의관을 대상으로 공지했습니다. 분당의 국군수도병원에서부터 대전·양구·사천 등지에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왔습니다. 많을 때는 70~80명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군시절 강의 내용이 책의 뼈대가 됐다. 책은 '누구나'와 '쉽게'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풀어갔는지 들어봤다.

"통계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 내용들을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찾아봤는데 내용은 훌륭하지만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춘 책은 없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용어에 대한 이해입니다. 일례로 비모수적·회귀분석·생존분석·모비율 등의 단어가 나오면 시작부터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기본적인 용어부터 정리했습니다. 가급적 정의되지 않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최소한 알아야 할 용어를 이해시키려고 했고 한 장을 읽으면 다른 장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도록 했습니다. 두번째로는 그림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보통 어려운 수식이 아니더라도 수식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수식이 나오면 보지않고 그냥 넘기기 일쑤입니다.

100% 완벽하게 구현했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고안해 주제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강의 내용을 초고로 8개월여의 퇴고를 거쳐 책은 갈무리됐다. 퇴고에는 친구인 박경훈 울산의대 임상강사(서울아산병원 피부과)의 도움이 컸다. 오류를 줄이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게 모두 친구 덕이다. 그에게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후배나 동료 의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처음 접하는 학문은 원래 어렵습니다. 그러나 통계가 어렵다고 말하기 전에 얼만큼 시간을 투자했는지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요즘에는 대학이나 병원마다 훌륭한 강좌가 많습니다. 한 번 들어 이해되지 않더라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실습해본다면 곧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보통 군복무를 하는 3년 동안 군면제인 친구들이나 여선생님들이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할 것을 생각하면 불안감이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은 평생 의사로서 바쁘게 살면서 절대 이루지 못할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통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첫 걸음을 뗐다. 얼만큼 깊고 넓게 이어갈지, 그 끝은 어디일지 모른다. 그가 남긴 말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군의관으로서의 3년이라는 시간은 무척 의미있어 보인다. 그에게 다가올 어떤 시간도 의미있고 행복하게 일궈갈 듯하다. 임상강사로 또 다른 출발선에 선 그의 삶에서 '블랙 아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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