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G 수가 뜯어보니...'더 아픈' 환자 갈 곳 없다

DRG 수가 뜯어보니...'더 아픈' 환자 갈 곳 없다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06.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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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중증도 반영 못해...병의원 수술포기 가능성 높아
내년부턴 상급병원도 포괄수가만 가능...중환자 어디로?

* 질병명: 제왕절개수술
* 의료기관 종류: 병원
* 진료비 지불방법: 포괄수가제(진료비 정액제)
* 중증도에 따른 환자 구분-정액 진료비(공단부담 80%+환자 부담20%)
-합병증·동반상병 없는 일반 환자 진료비 : 140만 5800원
-약간의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있는 환자 : 149만 8710원
(추가보상 9만2910원)
-중증의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있는 환자 : 192만 2340원(추가보상 51만 6540원)
-심각한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있는 환자 : 224만 5140원(추가보상 83만 9340원)

 
포괄수가제 강제시행이 중증환자 진료기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 과연 괴담에 불과할까?

의협신문 취재결과, 다수의 의료계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충분한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환자 분류와 진료 비분류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금전적인 이유로 중증환자 수술을 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같이 판단한 이유는 뭘까?

일례로 A라는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제왕절개분만은 통상적으로 혈액검사→흉부 X선검사→심전도 검사→예방적 항생제 투여→정맥수액주사→마취(척추·경막외 마취/ 응급시 전신마취)→복부 및 자궁절개→분만→수술부 봉합 등의 과정을 거친다. 수술에 걸리는 시간은 마취시간을 제외하고 대략 1시간 정도. 환자의 입원기간은 평균 일주일 정도다.

하지만 합병증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왕절개 수술에 따른 대표적인 합병증은 폐색전증과 자궁무력증·과다출혈 등으로 이 경우에는 적지 않은 추가 처치가 더해진다.

예를 들어 수술 후 자궁무력증이 발생했다고 치자.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분만 후 자궁이 정상적으로 수축해 출혈이 멎게 되는데 간혹 자궁이 수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자궁무력증이라 하는데 이는 과다출혈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 때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지속적으로 수혈을 하면서 자궁마사지를 하거나 자궁수축제 등을 추가로 투여하게 된다. 자궁수축제 투여 후에도 출혈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추가로 △자궁으로 풍선형태의 기구를 넣어 그 압력으로 출혈을 막는 자궁내풍선확장술 △자궁동맥 속에 가느다란 관을 넣어 자궁속으로 들어오는 혈액을 일시적으로 막는 자궁동맥색전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 같은 합병증이 발생한다면 의료진의 처치시간은 물론 환자의 입원기간도 당연히 길어진다.

일반 환자-최고 난이도 환자, 진료비 차이 단돈 83만원 9340원

문제는 7월 강제적용 될 포괄수가제 안에서 이 같은 추가처치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왕절개분만은 포괄수가제 강제적용 대상으로 7월부터는 수술건당 정해진 진료비가 지급되며, 진료비는 중증도에 따라 모두 4단계로 분류됐다.

정부가 내놓은 단가표에 따르면 ▲수술중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없는 일반환자의 진료비는 140만 5800원 ▲중등도의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는 149만 8710원 ▲중증의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있는 환자는 192만 2340원 ▲심각한 합병증이나 동반상병이 있는 환자의 진료비는 224만 5140원으로 정해졌다.

아무런 합병증이 없는 일반 환자와 최고 난이도 환자의 진료비 차이는 83만 9340원이다.

이 비용으로 중증환자에게 충분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앞에 언급했던 자궁무력증 환자의 사례를 '추가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리뷰해보자.

이 환자에게는 일반 환자보다 많은 양의 혈액이 수혈되었고 자궁수축제도 추가로 투여됐다. 혈액 400ml 1unit 당 가격은 대략 4만원, 자궁수축제도 큰 돈은 아니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어찌됐던 추가비용이 소요되는 셈이다.

자궁내풍선확장술이나 자궁동맥색전술을 받은 환자라면 의료기관의 비용부담은 더 늘어난다.

자궁내풍선확장술의 경우 풍선값만 30~40만원, 시술비까지 포함하면 50~6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술 후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때문에 입원비 부담도 늘어난다. 자궁동맥색전술은 재료대와 시술비만 합해도 150만원 정도의 추가비용이 소요된다.

현재까지는 의료기관이 별도의 처리를 할 경우 각각의 행위별로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구조였지만, 7월 시행되는 포괄수가제 하에서는 수술과정에서 특정 검사나 투약·처치과정을 추가되더라도 ▲입원일수가 한달을 넘기거나 ▲정부가 정한 단가와 총 진료비의 차액이 100만원을 넘어서지 않는 한 의료기관에 추가 비용을 주지 않는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적절한 비용 보상을 담보할 수 없으니 추가적인 처치가 필요한 중환자들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병원급 고위험 환자 1차로 상급병원 흡수...내년엔?

이 같은 상황에서 병원급이 할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선택은 위험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상급병원으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고령산모나 과체중아 임신·양수과다증·전치태반·유착태반·응고장애 질환을 보유한 경우 등 수술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산모들은 병원급에서 수술이 가능하더라도 직접 집도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 비용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7월 포괄수가제 강제시행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1차적으로는 고위험 환자 상당수를 대형병원들이 흡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응기 동국대 일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비용보상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병의원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처치를 필요로 하는 고위험 환자의 수술을 꺼릴 수 밖에 없다"면서 "그동안은 병원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민 교수는 "정부는 입원일수가 30일을 넘기거나, 총 비용의 차이가 100만원이 넘으면 추가로 비용을 보상하기로 했으니 중증환자 기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제왕절개나 맹장으로 한달 입원하는 사례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병원들의 현실을 모르는 얄팍한 대책으로,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까지 포괄수가제 강제적용 대상이 되는 내년 7월이다. 상급병원조차 진료비 정찰제에 묶여 추가비용 문제에 민감해 진다면 중증환자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진다.

이에 의료계는 정부에 환자분류 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현실적인 비용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논의가 쉽지 않다

민 교수는 "산모의 상태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고 각각의 상태에 맞게 처치를 해야만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제왕절개가 필요한 산모를 무 자르 듯 4개 그룹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병원계에서 이 같은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현재의 틀 안에서 고칠 수 있는 부분만 고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환자분류를 뿌리부터 개선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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