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4 13:12 (수)
청진기 얘, 왜 이래요?

청진기 얘, 왜 이래요?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2.08.24 09:4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북새통이던 외래가 어느덧 끝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기다린 환자는 무척 지겨웠으리라는 생각에 일어나서 그들을 맞았다.

그러나 들어온 아이 엄마는 오래 기다렸을 텐데도 그리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한 표정이었다. 아이를 업은 채 메고 온 가방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 뒤로 사내아이가 따라 들어오더니 말없이 벽에 붙여 놓은 긴 의자에 간신히 올라가 신발을 벗고 앉는 것이었다.

어린애 둘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싶어 등에 업은 아이 내리는 것을 도와줄 때였다. 목덜미에 이상한 느낌이 확 들었다. 슬쩍 돌아보니 의자에 앉은 아이가 무엇인가 입에 넣는 것이 언뜻 보였다. 순간 위험한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애가 그만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쓰러졌다.

눈을 위로 허옇게 치켜뜨고 사지를 버둥거리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갔다. 나는 엄마를 밀쳐놓고 뒤에 있는 꼬마를 끌어안아 등을 구부려 세게 두들겼다. 반응이 없었다. 내 무릎을 구부려 다리 위에 그를 엎어놓고 등을 더 세차게 쳤다. 대여섯 차례나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손이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기도에 이물이 걸렸을 때 하는 응급처치가 하임리히법이라고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해 볼 일은 없었다.

이비인후과에 연락하라고 소리치며 아이의 가슴을 의자 끝에 걸쳐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어깻죽지 사이를 더 세차게 쳐댔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무엇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그때야 아이가 "와 아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돌려보니 눈물과 콧물이 섞여 범벅되어 나오고 입에서도 불그레한 침이 흐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살았다 싶어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은 온통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아이 얼굴은 멍든 사과처럼 시퍼렇게 부은 듯하고 눈에 선명한 핏빛 선이 보였다.

결막 아래에 출혈이 생긴 듯했다. 그동안 영문을 모른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기만 하던 아이 엄마가 한마디 던진다. "얘 왜 이래요?"

아이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는 듯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어디에든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찰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물건들이 보물인양 들어앉아 있는 것을 더러 발견한다.

수련의 시절, 이비인후과 앞을 지날 때면 귀, 코, 목, 다섯 개의 구멍에서 빼낸 것을 넣어둔 유리 상자들에 눈길이 가곤 했다.

노 교수님께서 평생 빼낸 갖가지 이물들을 드나드는 환자와 전공의들이 보고 늘 조심하라는 뜻으로 가지런히 전시해 두신 것이었다. 사탕, 동전, 단추 등 동그란 것뿐 아니라 별의별 위험한 것도 많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 얼굴을 쳐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은 벌써 물고기가 노니는 어항에 꽂혀 이리저리 고기떼를 따라다니고 있다. 집에 가더라도 아이를 너무 혼내지는 말라고 그 엄마에게 당부해두고 아이와 약속을 했다. 아무것이나 입에 넣으면 절대 안 된다며 손가락까지 걸었다.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마 옷자락을 잡고 나서며 뒤돌아보는 아이 모습이 대견하다. 내 진료실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소동이 큰 사단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어느덧, 창밖 노을은 여느 때처럼 붉게 물들어 그래도 평화로운 저녁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