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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합니다"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합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2.09.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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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이야기> 펴낸 박정수 연세의대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암센터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말한다. 물론 나이만으로 지나온 삶의 궤적을 판단할 수 없겠고, 사는 동안 수많은 갈림길에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인지라 나이의 많고 적음이 인생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세월을 마냥 흘려버릴 수 없는 것은 세상을, 삶을 온몸으로 버텨내온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심(從心)'. '귀가 순해져서 들리는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게'되는 이순에서 10년이 더해진다. 소통의 의미도 녹아있고 깨달음의 경지도 느껴진다.

지금 종심을 맞은 한 노의사는 아쉬움이 많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더 가까이 가지 못한 것에, 그들의 아픔에 더 많은 위로를 못해준 것에,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지 못한 것에 마음이 아리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의사로서의 삶에 반려자인 환자에게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서다. 더 많은 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국내 갑상선외과학 분야에 일가를 이룬 박정수 연세의대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암센터)가 상재한 <갑상선암이야기>에 담은 그의 소망이다.

▲ ⓒ의협신문 김선경
박 교수는 지금도 한 주에 25∼30례의 갑상선암 수술을 한다. 지금까지 수술건수는 2만례를 넘었다. 바쁜시간 속에 낸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을까.

"사실 오래전부터 생각은 있었지만 논문발표나 진료·수술 등으로 인해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외래에서 환자를 대하다보니 갑상선암과 관련된 왜곡된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환자는 외국 학회 저널이나 미국갑상선학회 권고안까지 읽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노변정담이라고 했던가요. 화롯가에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물론 학술적인 깊이와 최신 정보도 놓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미국 MD앤더슨 암병원과 뉴욕 슬론케터링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마치고 1980년대 초에 귀국한 이후 지금까지 수술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의 열정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습니다. 운동이나 취미에 빠져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학문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었습니다. 학술적인 큰 성과를 내거나 우리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려는 거창한 뜻도 없습니다. 그저 제 성향이 그런것 같습니다. 다만 한가지, 멈추면 쓰러진다는 신념입니다.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갑상선이라는 매력적인 분야에 한 시대를 바쳐온 것은 저에게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 갑상선암 발생이 위암을 앞질러 1위를 차지했다. 이제 갑상선암은 가장 흔한 암이다. 왜 이렇게 많아질까.

"갑상선암이 많아진 것은 국내외 모두 같은 현상입니다. 증가한 대부분의 갑상선 암은 1㎝ 미만의 작은 유두암인데 성능이 좋아진 초음파검사 검사 영향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 이상의 암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적 요소중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은 방사선 피폭입니다.

체르노빌 사건 이후 이 지역 주민에게 다른지역보다 100배나 많은 갑상선암이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컴퓨터단층촬영 때 사용하는 요오드조영제가 갑상선암에 방사선피폭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밖의 고도에서 자연방사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항공기승무원 등에게 피폭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년전 일본은 우리와 달리 1㎝ 미만 미세암은 수술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잘못 알려진 정보 때문에 의료계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 대학교수가 일본과 국내의 진단결과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보도된 일본병원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1㎝미만일 경우 조급하게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전했던게 와전된 모양입니다. 일본 쿠마병원은 1993년부터 1395명의 갑상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즉시수술 환자 1055명과 관찰대상환자 340명으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2010년 발표한 중간연구결과에 따르면 109명이 더 수술해 이제 231명이 남았습니다. 아마 그들도 곧 수술을 받게 되겠지요. 노구찌병원의 통계 결과에서도 1㎝미만 수술환자 2070명 가운데 6∼10㎜일땐 35년 재발률이 14%였지만 그 보다 작으면 3.3%에 그쳤습니다. 작을 때 빨리 수술하는게 좋다는 것입니다. 세계 학계 어느곳에도 1㎝미만은 수술 안해도 된다는 말을 없습니다. 처음 소식을 전한 그 대학교수도 결국 저에게 수술받았습니다."

▲ 30여년간 2만여명의 환자들이 박 교수의 손을 거쳐갔다. 오늘도 그의 손은 쉬지 않는다. ⓒ의협신문 김선경
얼마전 한 경제전문가가 포괄수가제 도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갑상선암은 의사들이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많이 진단하고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해 논란이 됐다. 박 교수는 의협신문 기고를 통해 그의 주장을 통박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 미만 뿐만아니라 이상되는 암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암은 암입니다. 모든 암은 될 수 있는대로 빨리, 더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합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처음에는 '착한'암이 대부분인 갑상선암은 치료만 잘하면 환자도 편하고 의사도 편합니다. 그러나 예후가 언제나 좋을수만은 없습니다. 미분화암 등 난치성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돈을 벌려고 암치료를 만들어낸다니…. 포괄수가제도는 분명히 환자에게 손해입니다. 진행된 암은 손을 안대게 될 것입니다. 진료재료·약·검사 등 모든 영역에서 저렴한 비용의 제품을 강요받게 될 것입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판단하는 범위는 무척 다양합니다. 그걸 몇개의 항목으로 묶을수는 없습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게 하는 간접살인행위입니다. 만약 갑상선암 같은 암수술분야를 포괄수가제 올무에 가두고자 한다면 주저없이 의사면허를 반납할 생각입니다."

책 말미에는 환자로부터 박 교수에게 전해진 감사글이 모아졌다. 환자 본인은 물론 환자의 남편과 시아버지의 글도 눈에 띈다. 글에는 이른 아침시간부터 해거름 지난 늦은 밤까지 환자 한사람 한사람에게까지 관심과 격려를 잊지 않고 사랑과 배려를 전했을 노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가 지나온 길을 걸어갈 후학들에게는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을까.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환자의 행복과 의사의 고생은 반비례한다고…. 꾀부리지 말고 조금 더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가까이 다가서라고 말합니다. 의사가 고생하면 할수록 환자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갑상선외과학은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환자 가운데 85%는 잘 치료하면 자연수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5%는 나쁜 암으로 변해서 난치성암으로 바뀝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빨리 치료하면 난치성암의 비율이 낮아질 것입니다. 제대로 잘 배워서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는데 큰 몫을 하기를 바랍니다."

"환자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박 교수는 오늘도 늦은 시간 초가을 밤기운을 등에 걸치고 병원 문을 나선다. 복도에서 마주친 한 여성 환자는 노교수의 늦은 귀가가 못내 안타깝다. 그러나 그가 있었기에 그 환자의 하루는 편안했다. 내일도 이전처럼 그의 하루는 길 것이다. 그리고 긴 하루내내 '행복한' 환자들이 그의 곁을 서성거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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