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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21:53 (금)
청진기 구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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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0.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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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멋쟁이 엄마가 소견서를 내밀었다. 아이의 열이 잡히지 않아 보낸다는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대뜸 무슨 병이냐 물었다. 척 보고 알아맞혀 보라는 표정에 내호흡부터 조절했다.

일주일 넘게 고열에 시달린 아이는 입술이 갈라지고 눈알이 빨갰다. 발진이 있었다는 목엔 멍울도 만져졌다. 가와사키병이 의심된다니 '가와사키? 우리 애는 좀 다르던데요? 그 병이 확실한가요?' 한다.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설사 비전형적일지라도 합병증이 온 예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 엄마는 치료에 다른 방법은 없느냐, 만약에 치료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분야의 명의는 누구냐? 묻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찾기 시작했다.

몇 해 전 타임지에 났던 '당신의 환자가 구글러라면?'이란 기사가 떠오른다. 일부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올 때 인터넷 구글로 검색한 자료를 들고 오기 시작하면서 의사들이 겪게 되는 불편함을 소개한 내용이다.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의사에게 자기만의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들은 점점 다루기 힘든 고객이 된다. 희귀 질병은 환자가 의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인터넷 사용자의 80%는 자신의 건강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오고, 63%는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들이 자신의 병 관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단지 25%만이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이고 언제 올린 것인지 확인하고 나머지는 정보의 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는 심낭에 물이 찼고 관상동맥도 늘어나 있었다. 담낭 수종도 보였다. 아이 엄마도 인터넷에서 보니 평생 치료해야 한다던데요? 라면서 또 걱정했다. 치료 이틀이 지나자 아이는 열도 내리고 좀 편해 보였다. 그제야 독한 감기인 줄 알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다 애만 고생시켰다며 엄마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인터넷의 정보는 득과 실이 있을 것이다. 바르게 알면 이런저런 설명을 덜 해도 된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일 경우에는 바로잡기가 아주 힘들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 대 명예교수가 뇌에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고 했다.

'빠른 사고와 느린 사고'이다. 빠른 사고는 감성적이며 직관적으로 즉각 작용하지만, 느린 사고는 천천히 논리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빠른 사고를 하므로 '첫 경험' '첫 사랑' '첫 정'같이 처음에 의의를 두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미디어나 인터넷 검색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정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설혹 그 정보가 틀렸다 할지라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인터넷 덕분으로 환자들이 의학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보의 정확성을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환자들이 건강이나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첫 경험으로 접할 수 있도록 의사들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의사가 병을 설명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의사에게 신통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많이 아는 환자보다는 '당신을 무조건 믿고 내 몸을 맡깁니다.'는 눈빛, 바로 그 위대한 침묵이 아닐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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