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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너 커서 무엇이 될래?
청진기 너 커서 무엇이 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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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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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부산알로시오기념병원 소아청소년과장)

▲ 이정희(부산알로시오기념병원 소아청소년과장)
늦가을 단풍이 화려한 맑고 싸한 아침이다.

영아원 아이들이 등교한다. 내 병원 출근과 영아원 아이들 등교시간이 비슷하여 가끔 마주친다. 이른 아침에 이야기하며 학교 가는 아이들 모습이 다정스럽다. 참새처럼 조잘대기도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해 깔깔대며 떠들고 지나간다. 뒤따라가며 그들의 대화를 슬쩍 엿듣는 것도 재미있다.

한 여자 아이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다"라며 말을 꺼낸다.
다른 아이가 "아니야, 하느님이 예수님 아들이야"하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아이가 거든다. "아니지, 하느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지."
또 다른 아이가 말한다. "아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이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언제나 이들의 공동 관심사인가 보다. 나도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나설까 하다 그만둔다. 저희들 끼리 계속 이야기하다 답을 찾겠지.

영아원 아이들이 진료실에 들어온다.
함께 먹고 자란 아이들이라 닮은 듯 다르다. 같은 환경이지만 유전인자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얼굴·몸통·팔다리를 쳐다본다. 내장의 거울이라는 피부살결도 살핀다. 우윳빛 같이 고운 살결을 가진 아이, 촉촉한 피부를 한 아이 그리고 까칠한 아토피 피부로 고생하는 아이도 있다. 얼굴을 바라본다.

하얀 얼굴에 방실대며 웃는 얼굴, 야윈 얼굴에 찡그리는 얼굴, 겁에 질려 잘 우는 아이, 제각각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3살 예진이가 의자에 앉아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눈은 마음을, 귀는 덕을, 코는 품위를 드러낸다는데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귀티 나는 얼굴이다. 사슴처럼 큰 눈에, 눈동자가 호수 같이 맑다. 우뚝 솟은 콧등, 부드러운 입술, 도톰한 귓불, 우유 빛 같은 뽀송뽀송한 피부를 한 이 복스러운 아이를 어떻게 남기고 갔을까. 아이를 놓고 간 부모가 야속하고 이해가 안 된다.

아이의 운세를 점쳐 보려고 면상을 살핀다. 코를 관찰한다. 얼굴의 중심에 있어 눈에 잘 띤다. 코가 시원찮으면 줏대가 없어 보인다. 자존심의 상징이다. 코는 위기상황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암시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해 보면 어느 방향으로 인생항로가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병아리 발목처럼 가는 발을 바라본다. 이 약한 발로 얼마나 힘들고 먼 길을 갈 것인지 불안하다. 얼마나 험하고 높은 곳을 오를 것인지 걱정스럽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은규의 손을 잡아본다.
작고 연한 손이다. 손등은 솜처럼 부드럽고 손바닥은 따뜻하다. 참 좋은 감촉이다. 아직 아무것도 쥐어본 적이 없는 빈손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이 작은 손으로 무엇을 쥐고 어떤 기회를 잡을 것인가.

어떤 행운을 건지고 이 손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 이 빈손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언젠가는 결국 빈손으로 떠날 것도 확실하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어떻게 자라 무엇이 될런지. 온실 속의 화초 같이 자랄 것인지, 들판의 야생화처럼 자랄 것인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세상모르는 아이 표정은 평화롭다. 앞으로 생명과학이 계속 발전하면 갓난애들의 절반 이상이 100살 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때 세상은 다시 어떻게 변할지. 최첨단과학 시대의 혜택을 누릴지, 문명이 파괴되어 원시의 삶으로 되돌아갈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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