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를 찾아가는 의료봉사 순롓길
'참 나'를 찾아가는 의료봉사 순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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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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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옥(경남 진주·권현옥산부인과의원 원장)

10년 전, 30년 지기 친구의 죽음 앞에서 의료봉사를 다짐하게 된 권현옥 원장(경남 진주·권현옥산부인과의원)은 8년 전부터 바쁜 일정에도 지속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향후 7년 안에 인도·네팔 등의 의료오지에 여성전문 병원을 설립해 의료서비스는 물론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에 뜻을 둔 사람들과 오지주민들을 잇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권현옥 원장을 만났다.

▲ 천진난만한 네팔 어린이들과 함께 한 권현옥 원장.
권현옥 원장은 꿈 많은 시절 제2의 슈바이처를 꿈꾸며 의사가 됐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바쁜 일상생활로 꿈은 잠시 잊어버리고 병원일에만 매진해오던 어느 날 갑자기 30년 지기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접했다.

"저는 스스로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할까? 라는 질문을 해봤어요. 더 늦기 전에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봉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8년째가 됐다는 권 원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인도·네팔·아프리카까지 해외에서도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권 원장은 첫 사랑의 애잔한 추억처럼 가슴 찡했던 네팔의 첫 봉사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 환자였던 5살 농아 '마시다'와 한 살의 구순열 '아리' 가족과의 만남은 의료봉사의 긴 여정에 이정표를 만들어 주었다. 두 명의 선천성 장애아를 자신의 죄인 양, 모든 고통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두 아이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누군가가 아닌 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구나' 생각한 권 원장은 바로 국내에서 모금운동을 진행해 정성껏 모인 성금을 전달했다.

"많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 가족에게는 기적이었어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와 맑은 눈빛, 그리고 작은 도움에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고 고마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저를 매년 그곳으로 이끌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권 원장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항상 이 말을 되뇌인다. "성자가 '왜 신은 이런 힘든 세상을 만들었습니까?'라고 하소연을 하니 하늘에서 대답이 그래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너희들을 만들었느니라." 이후 봉사에 뜻이 있는 108명의 사람들을 모아 '108자비손'이라는 의료봉사단체를 설립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달 사이에 108명이라는 자비로운 손길이 만들어져 이슬람어린이를 불교성지에서 기독교인 이웃이 살린다는 것은 결국 신의 사랑은 하나라는 것 아닐까요?"

네팔 봉사활동 다니면서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환경을 보며 힘이 들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권 원장이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3년 전 30대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두 눈이 해맑은 '엑따'다. '엑따'는 난소에 난 물혹을 너무 늦게 발견해 수술도 못해보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엑따는 아픈 몸에도 항상 나의 손의 잡고 환한 미소로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 맑은 눈과 미소가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있어요. 지금도 네팔 룸비니로 봉사활동을 가는 비행기안에서 하늘을 보면 '엑따'가 저를 반기며 힘들고 어렵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네팔에서는 15세에서 35세의 가임 여성 대부분은 산모이거나 수유 중이다. 그래서 다섯 명을 낳고 네 명이 죽는 경우도 있고 8명 출산 후 아홉 번째 임신으로 유산이 된 채 복통과 하혈을 해도 자연적 치유만을 기다리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5개월 된 산모가 태아가 사산된 것을 한달 동안 모르고 배가 아프고 하혈을 해도 분만 날만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영양부족과 감염 속에서 자신의 몸이 삭아져 가는 것을 당연한 노화현상으로 여기는 관습을 알면 알수록 그 곳은 우리들의 손길이 꼭 필요한 곳이라 말한다. 권 원장은 "의료오지는 지구 반대편의 모르는 사회가 아닌 하루만 고생하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함께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여성병원을 설립해 이런 여성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과 체계적인 도움을 주는 시설을 갖추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권원장이 일하면서 가장 슬프고 미안할 때는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라고.
"100일도 안된 신생아가 심장병과 폐렴이 극도로 심해 하루 이틀 내로 숨이 끊어질 듯 했습니다. 치료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산소호흡기라도 꼽고 편하게 보내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산소호흡기라도 꼽았으면 했지만 그것마저 그곳에선 사치품인 것을….

"두번째 아이는 40도가 넘는 고열로 약을 쓰기에는 너무 위급해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라고 했더니 엄마가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저만 따라다니더군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100달러를 주며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어요."

어떤 형태든 도움을 주고 싶어했지만 어려운 현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움 마음이 느껴졌다.

의료봉사를 넘어 여성 인권이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전달하며…
사는 곳과 문화는 달라도 10대 여성은 생리통, 20대 여성은 임신문제, 30대 여성은 자궁의 질병, 40대 이상의 여성은 폐경으로 인한 시대적 병은 비슷하다. 단지 그 기간과 정도의 차이일 뿐.

인도 국경마을인 스라바스티는 룸비니보다 열악한 환경은 아니지만 빈부격차와 카스트 신분제도가 심해 천민은 병원근처도 가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35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매일 100명이 넘는 환자를 일주일 동안 보다가 긴장과 피곤함으로 뻗어버린 다음날 눈을 못 뜬 것이 의사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권현옥 원장에게 왜 해외의료 봉사를 가는지 물었다.
"봉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금의 작은 일시적인 일이 제 삶에 행복하고 보람된 귀한 일이라는 자부심으로 마취가 되어 하루의 피곤함과 무보수의 허망함을 잊어버리고 잠시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 되어버립니다.

한국에 돌아와도 그 효과는 몇 달간 남아있어 그리워하게 되고 중독이 돼 다시 한번 자기충전을 위해 떠날 희망을 품는 거죠. 제 손길은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수이지만 세상의 소외된 어떤 곳에서는 약수나 생명수로 변신할 수 있는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라바스티에서 진료를 할 때 어떤 아저씨를 치료하고 나서 아이가 몇 명인지 물어보고 기생충과 영양제를 챙겨주었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들 회충약 세 개에 눈물 흘리는 이에게 느끼는 감동을 이 동네가 아니면 한국 어디에서 제가 맛볼 수 있겠습니까?"

겉모습과 문화는 달라도 사랑과 아픔에 대한 몸짓은 '세계 공통어'
언어가 다르고 모습과 피부색이 달라도 얼굴 표정과 손짓을 통해 불편함과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고 청진기와 촉진만으로 벌써 치료가 시작되면서 서로의 눈빛으로 감사와 사랑의 진료비가 지불된다는 권 원장은 의료봉사를 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의료봉사가 왜 행복을 주는지 물었다.

"저는 저를 위해 돈을 쓸 때보다 행복하며, 의사로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보람을 얻으며,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신자로서 행복함을 느낍니다."

빈곤과 열악한 여성인권의 관습이 여자의 생사를 결정하기에 작은 손길이 당장 무엇을 바꾸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천명 중 10명을 구하다 보면 여자도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관습이 깨질 그날까지 긴 여정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글=박지선(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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