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수가협상...원칙 없는 게 문제다

뒤틀린 수가협상...원칙 없는 게 문제다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12.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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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연구-실제 협상 결과, 들어맞는 경우 거의 없어
높은데 더 주고 낮은데 더 깍고..."정치적 협상" 비난

내년 의원급 수가결정을 기폭제로, 수가결정구조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한번 높아지고 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협상 거부권을 가질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수가수준의 적절성까지 논란이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다.

▲수가협상 결렬 후 의원급 수가결정을 위해 열렸던 건정심 회의. 이날 건정심은 의협의 건정심 불참을 이유로 의원급 수가결정을 연말까지 유보하는 결정을 내렸다. ⓒ의협신문 김선경

'근거없는 정치적 타협' 올해도 반복

대한의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내년도 의원급 수가결정을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포괄수가제 도입 문제로 의정간 갈등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태였고, 인터넷 상에서 포괄수가제 댓글논란이 벌어지면서 의협과 공단과의 관계도 틀어질대로 틀어져 있었다. 의협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도 탈퇴,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올해 의원급 수가협상은 타결될리가 없다느니, '파이전쟁'에서 의원이 빠졌으니 약국이든 병원이든 먼저 도장을 찍는 사람이 그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예측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주변 상황과는 별개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각 유형별 수가를 정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정치적' 협상을 반복해 온 만큼 올해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결과는 이 예측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단과 의협의 협상을 결국 결렬됐고, 공단과의 협상에서 각종 부대조건 이행을 약속한 병원과 약국 등 일부 유형들은 전에 없이 높은 수가인상률로 수가협상에 성공했다.

의원급 수가결정의 공은 결국 건정심으로 넘어갔고, 수가결정을 한 차례 유보하는 진통 속에 지난 21일 당사자인 의협이 빠진채로 의결됐다. 새 수가적용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수천만원짜리 수가연구...협상장선 무용지물

수가협상이 정치적 협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근거와 원칙'에 있다.

공단은 매년 의약단체와의 수가협상에 앞서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각 유형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유형별로 수가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를 따지는 연구다.

매년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연구지만, 협상테이블에서 이 연구결과가 효력을 발휘한 경우는 한차례도 없었다. 조정률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 할만한 종별 우선순위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결과 우선순위와 실제 환산지수 인상순위.

*공단연구: 지수모형 기준, 해당 연도별 연구결과.
실제 공단이 내놓은 2013년 환산지수 연구결과에 따르면, 5개 주요 종별의 수가인상 우선 순위는 약국-치과-병원-의원-한방 순을 기록하고 있다. 약국을 1순위로 배려하고 그 다음이 치과와 병원, 의원, 한방 순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올해 수가인상률 순위는 약국-치과와 한방-의원-병원의 순서로 정해졌다. 한방은 가장 낮은 우선순위에 있었지만 5개 종별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인상폭을 받았다.

과거의 연구결과들도 다르지 않다.

의원급의 경우 2009년 공단 연구에서 3순위, 2011년 2순위를 받았지만 각각의 실제 인상률 순위는 4위에 그쳤다. 반대로 한방의료기관의 경우 2010년 5순위, 2012년 4순위로 평가받았지만 실제 수가협상결과 각각 3번째, 2번째로 연구결과에 비해 높은 순서를 배정받았다.

스스로의 연구를 뒤짚은 협상 결과들이 쏟아진 셈이다.

부대결의로 우선순위 결정...무엇을 따지는 협상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재 수가협상에서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것이 바로 가입자단체의 모임인 재정운영위원회의 수가가이드라인이다.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대략 5000억원 정도를 나눠주자고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공단은 그안에서 재량껏 종별로 파이를 나눠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수가조정이라는 취지를 감안하자면 종별 의료기관 경영실태와 각 종별 급여비 증감률 등이 배분의 기준이 되어야겠지만, 최근 몇 년간의 협상과정을 지켜보자면 '공단이 생각하는 재량권=부대조건'이라는 공식이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건보재정안정화를 위해 ㅇㅇㅇ을 하겠다는 식'으로 협조를 약속하면 파이를 좀 더 떼어주는 선심성 분배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번 수가협상에서 공단과 부대결의를 맺은 병협과 약사회는 평년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수가인상률을 얻어냈다. 부대결의를 거부한 의협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가 제시됐고, 협상결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무리한 재량권 행사로 인한 분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단은 대한병원협회와의 2013년 수가협상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을 수가인상을 위한 부대조건으로 걸었는데,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건강보험 재정절감책으로 내놓은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급히 내용을 수정했다.

공단과 공급자단체간 부속합의 문구가 재수정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 양측은 불필요한 오해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수가협상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의원급 수가조정률 ±1% 고정...유형별 협상도 흐지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선'도 존재한다.

실제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가인상률은 유형별 협상 도입 이래 죽 2% 중반 내외에서 정해져 왔다.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인상률과 가장 낮은 인상률의 차이는 ±1%. 2010년이 역대 최고인 3%, 2011년이 가장 낮은 2%를 기록했다. 6번의 유형별 협상 결과가 모두 1%도 안되는 파이를 둘러싼 숫자 싸움이었던 셈이다.

병원과 약국도 유사한 패턴이 있다. 병원의 경우 1% 중반 내외, 약국은 의원과 유사하게 2% 중반 내외에서 수가 수준이 정해져왔다. 각 유형별로 대략 가져가는 파이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가 수가협상을 '0.1~0.2%의 싸움'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시민사회단체들이 관행적인 수가배분이라고 공단을 비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형별 환산지수 인상률 및 연도별/종별 인상률 격차.
종별 수가인상률이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3년도 환산지수 평균 인상률은 2.36%로, 유형별 인상률은 △병원 2.2% △의원 2.4% △치과 2.7% △한방 2.7% △약국 2.9% 등으로 종별 차이가 0.7%p에 불과하다.

유형별 수가인상률 격차는 2011년 2.5%p까지 벌어지기도 했으나, 2012년 수가협상에서는 1.1%p, 그리고 2013년 협상에서는 0.7%p로 좁아지고 있다.

유형별 수가협상제도의 취지도 무색해지고 있는 셈이다.

당초 공단은 각 종별 특성을 반영해 형평을 맞추는 기전을 마련하자며 지난 2008년 유형별 협상제도를 도입했지만, 현행 수가협상이 종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데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막무가내 수가협상 그만...원칙 세워야

의료계는 수가협상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수가협상 구조개혁과 더불어 최소한의 수가협상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평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수가가 어떤 근거에 의해 얼마나 조정되는지 그 결정의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전체 조정률 수준의 적정수준을 결정하는 것 뿐 아니라 유형별 적정 배분을 위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수가협상 관련 당사자들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운영위원회의 역할을 적정 수가수준의 제시와 적정배분의 감시, 공단의 역할을 적정 수준을 위한 자료제시와 적정배분을 위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협상체, 건정심을 객관성에 의한 공정한 조정기구로 탈바꿈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수가 조정률에 대한 원칙과 기준 없이 상호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 해서는 갈등만 계속될 것"이라면서 "당사자 합의 하에 수가협상과 결정을 위한 기준을 제정·시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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