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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근본적인 해결책은?

청진기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근본적인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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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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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욱(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R1)

▲ 조병욱(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R1)
얼마 전 전공의와 관련된 의료계 이슈 중 전공의 노조와 관련하여 '표준 근로 계약'이라는 것이 있었다. 인터넷 의협신문의 '가장 많이 본 기사'에도 오른 이 이슈는 출퇴근 카드를 도입해서라도 근무시간을 투명화하고 상한제를 이루겠다는 전공의 노조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4년차는 7시 출근 오후 5시 퇴근하는 주당 50시간의 근무를 하면서 1년차는 1주일에 2번정도 오프가 있는 주당 122시간의 근무를 한다면 이를 전공의 근무여건이 열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가 생각하는 답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몇 개월 전 칼럼을 통해 언급했던 주제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전공의들이 만들어 낸 문화와도 이어진다. 낮은 임금, 수련 병원들의 필수 교수진 이외 진료관련 전문의 또는 일반의 고용 포기, 일방적인 원내 당직근무 또는 입원환자 관리 의무 등등 겉으로 보기에는 병원 측으로부터 시작된 강요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이는 전공의 내의 도제사회 특유의 관습적 문화가 만들어낸 폐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전공의의 삶이 피폐한 것은 피교육자적 신분이라는 것과 당직(입원, 응급, 중환자 관리)이라는 것이 복합되기 때문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위해 입원환자 관리, 응급실 당직, 중환자실 당직 및 환자관리 등을 하지만 이러한 로딩이 전 연차에 걸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1, 2년차에 국한되어 있다.

즉, 주치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만 극악의 근무시간이 되는 것이다. 3,4년차가 되면 매일 출퇴근을 하고 어쩌다 한두번 당직을 서게 된다. 결국 144시간 중 122시간을 일하는 전공의가 있는 반면, 주당 근무시간이 50시간이 되지 않는 전공의가 있는 것이다.

전공의 내 문화적 관습으로 인해 1, 2년차때 고생하고 3, 4년차때는 좀 쉰다라는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근무시간의 불균형은 절대 교정될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도제문화를 버리지 못하면 근무로딩의 적정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난 1, 2년차때 고생했으니 나도 쉬는 것이 맞다"라는 이 생각은 결국 지속적인 전공의의 근무여건을 악화시킬 뿐이다. 특히 필자가 지적한 저년차 몰아주기식 근무로딩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근무여건을 개선시킬 수가 없다.

2월말부터 3월초는 전공의의 근무교대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신규인턴이 들어오고 신규 레지던트 1년차도 들어온다. 요즘은 점차 개선되는 의국들과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1주일 먼저 들어와", "구정 지나면 인계 받아야지?" 심지어는 Fix-tern이라는 용어로 불리우는 인턴도 아니고 레지던트도 아닌 일을 하고 있는 이상한 신분으로 2월 한달을 지내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병원에서 만들고 시켰을까? 그렇지 않다. 이는 선후배간에 이어져 내려오는 악습일 뿐이다. 신규인턴이 3월 1일보다 먼저 들어오면 인계하고 기존의 인턴들은 빠져나가고 그 인턴들은 며칠간의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각 의국의 부름으로 또 한 1주일정도 빨리 레지던트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문화의 문제점은 근무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없는 조삼모사격인 일정 조정을 왜 이렇게 해야하는가 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것이다. 2월 초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2월 초까지 인턴을 하고 1년차를 하는 것이나 3월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3월까지 일하는 것이 차이는 없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일을 빨리 후배에게 넘기려는 관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관습이 존재하는 한 전공의의 근무여건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

1년차의 주당 당직 개수가 2개이고 2년차의 주당 당직 개수가 1개이나 동일한 일을 한다면, 누군가는 2년차의 당직을 1년차로 몰아주고 1년차에게는 내년에 당직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라면서 넘겨버릴 것이니 말이다. 1년차의 동의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차피 도제사회이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다. 출퇴근카드 따위는 그냥 의국에서 관리해서 규칙적으로 찍어주면 그만이다. 왜? 다들 암묵적인 동의하에 결정되고 시행되는 것이니까.

전공의의 근무여건의 개선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부적인 관습이 해결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는 기형적인 문화를 가진 전공의 수련 및 의국 문화는 분명히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4년차는 왜 당직을 서지 않는 건가요?" "응급실은 왜 1,2년차만 봐야하죠?"라는 물음에 합리적인 답이 있을까?

전공의가 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임은 틀림없다. 일의 로딩을 조절할 수 있는 관리직 노동자(고년차)가 존재하는 한 말단 노동자(저년차)의 근무여건이 좋아지기는 어렵다. 이러한 수직적인 문화가 깨뜨려져야 좀더 합리적인 전공의 근무여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왜'라는 물음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당연히 그래왔듯이 병동과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전공의들이 있다는 현실이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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