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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수그리족
청진기 수그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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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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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죄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까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폴더를 여는 순간 일제히 시선이 쏠리는 듯했다. 이제껏 불편함이 없었는데 갑자기 초라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그날 저녁, 웃으며 하는 내 이야기를 들은 아들 녀석이 군대 월급 모은 것으로 샀다며 스마트 폰을 들고 나타났다. 최신 버전이라며 앱을 잔뜩 깔아 건네주었다. 처음엔 전화받는 법도 몰라 당황했다. 이젠 나도 편리함을 실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지하철 입구에서 나눠주는 무가지를 주로 봤었다. 그것을 거둬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볼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친구 어디 있니?" 물으면 옆에 있는 친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밀어서 캐릭터를 찾는다고 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와서도 그것을 신줏단지처럼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강의 때 맞장구 쳐주는 이들과 눈을 맞추면 신이 난다. 적어가며 열심히 듣는 이도 있지만,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열중하는 그룹도 있다. 스마트폰 세상 속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흥미로운 것들이 무궁무진하니 시간 가는 줄 몰라 고개 숙인 '수그리족'이 되기에 십상이다.

집 떠나 멀리 있는 아이와도 언제든 대화할 수 있을뿐더러 장시간 채팅도 가능하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동영상으로 찍어 주고받을 수 있으니 꼭 곁에 있는듯하다. 소식을 보내놓고 기다릴 때 답이 날아오면 참 반갑다. 사진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할 수 있어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전화연락이나 문자메시지·이메일 등이 곧 올 것 같은 환영을 느껴 자주 스마트폰을 열어본다고 한다. 하루에 평균 34번이나 확인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온라인 접속시간이 하루에 11.8시간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길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의존증이 심각하고 혹자는 불안을 넘어 강박증이란다.

터치하면 즉각 반응하는 스마트폰 특성상 가장 큰 문제는 참을성과 자제력이 없어진다는 것과 현란한 화면이 야기하는 중독성일 것이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온몸의 자극을 받아 해석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스마트폰은 자극 자체가 전두엽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을 반사적으로 하므로 집중하거나 참을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1세대 IT 벤처 창업가로 국내 포털 1위인 NHN을 창업하고, 카카오톡을 만든 CEO 김범수는 매일 아침 1시간씩 독서를 한다고 한다. 검색만으로는 깊고 폭넓게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없고, 독서에서 오는 깊은 울림의 기쁨을 모른다며 검색보다는 사색하자고 강조한다. 스마트폰이 MP3나 PC를 몰아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독서하는 습관까지 없애버려서야 하겠는가.

문명의 이기 덕분에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인간적인 만남은 소원해져 사람들이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따금 기기를 끄고 침묵하며 자신의 내면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일은 스마트하게 하고 싶다. 그러나 삶은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였으면 좋겠다.

오늘 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낼까, 이불을 다독여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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