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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실험견 '챔프'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청진기 실험견 '챔프'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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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3.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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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현대중앙의원)

▲ 이현석(현대중앙의원)
지금이야 장기이식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필자가 레지던트 시절이던 1990년대 초 국내 최초로 성공한 심장 이식과 다장기(多臟器) 이식은 전국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 빅 뉴스였다.

당시 나는 두 마리의 실험견의 한쪽 폐를 서로 맞바꾸는 폐이식 실험을 30여 차례 시행하였는데, 대부분의 실험견들은 공포와 좌절 속에서 3, 4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런데 단 한 마리의 개만이 수술을 끝내고 매일 채혈을 하려 가면 한쪽 다리를 들어 채혈을 쉽게 하도록 도와준 후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으면서 따르곤 하였다.

건강했던 자기를 수술하여 아프게 한 내가 무척이나 미웠을 텐데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애교를 부리곤 하였는데, 오직 그 실험견만이 아무 합병증이나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생존하여 장기이식에 관한 KBS 다큐멘터리에 나오기도 하였다.

한 달 후에 부득이 하게 인위적으로 사망시켜 부검을 했을 때 이식 받은 폐는 완전히 정상 상태였다. 즉, 두 마리의 개의 폐를 맞바꾸는 30여 차례의 실험에 사용된 60여 마리의 실험견 중 유일하게 이식 받은 폐가 원래의 자기 폐처럼 건강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이 실험견을 챔프라고 부르곤 하였다.

나는 지금도 병원에 비해 열악한 사육시설과 불충분한 약물 투여에도 불구하고, 챔프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면역기능과 호르몬의 균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정신과 신체의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식받은 폐가 완벽하게 정상기능을 유지했다고 믿는다.

실험견의 입장에서는 분노와 공포 속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을 상황에서 매일 하는 채혈을 도와주고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으며 따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ACTH, 갑상선 호르몬, 글루카곤, 에피네프린 등의 분비를 증가시켜 호르몬 체계의 불균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야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다른 동물견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다른 예후는 의사인 나로서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무척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해 주듯 근대사에서 가장 극적이지만 혼란과 빈곤 그리고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프랑스 혁명 직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민중들, 이 기회를 교활하게 이용하려 하는 기회주의자들,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으로 성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리엘 주교, 워터루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소지품을 뒤져서 한 몫 잡았던 여인숙 주인, 엘리트 대학생으로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여공 팡틴을 유혹하여 코제트를 임신시킨 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버리는 똘로미에스, 융통성 없이 오로지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한 쟈베르, 이상주의자 마리우스 등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여러가지 갈등과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이 감동적인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살았던 민초들의 삶의 고단함, 권력에의 두려움, 억울하게 느껴지는 각종 상황을 사랑의 힘으로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사랑은 가장 나약해 보이지만 미리엘 주교, 장발쟝, 쟈베르,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통해 펴져나가면서 그 위대하고 강인한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일 분노에 찬 장발쟝이 미리엘 주교를 해치고 쟈벨을 죽이며 피를 흘리면서 투쟁하는 내용이었다면 우리에게 그토록 큰 감명을 주지는 못 했을 것이다.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실험견 챔프의 긍정적이고 사랑에 찬 모습이 오버랩 되고는 한다.

또한, 학교 폭력, 각종 사회 범죄들이 연일 보도되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한 마리 실험견에 불과한 챔프가 사람보다 더 숭고하고 존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교황께서 즉위 미사를 통해 "가족이 서로 보살피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돌보며, 우리가 신뢰와 존중, 그리고 선으로 참된 우정을 쌓는 것이 보호자의 소명"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우리 현실이 그만큼 각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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