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의협회장, 충남 등 5개 지역 의료원장 간담회 가져
"홍준표 지사, 잘못 알고 있어" 폐쇄 강행 입 모아 '유감'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15일 천안의료원에서 충청남도와 인천광역시 소재 5개 지방공사의료원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일선 공공의료원이 처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참석한 의료원장들은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 대해 "올 것이 왔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공공의료의 목적 및 역할 재정립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현정 공주의료원장은 "진주의료원 사태로 인해 의료수가와 의료원가, 민간의료와 공공의료의 역할 등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며 "비단 공공의료 뿐만 아니라 의료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도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병원과 의원의 역할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갖추고 입원환자 위주로 운영하면서, 외래환자는 로컬에 의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한다"고 지적했다.
정홍자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사무총장 역시 공공-민간의료의 역할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총장은 "수명 백세 시대의 국민건강, 노후에 대한 케어는 민간의료가 담당하기 어렵다"며 "민간과 차별화된 공공의료원의 역할 재정립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의협의 중심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허종일 천안의료원장은 "지금까지 의협이 공공의료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며 "공공의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의협이 의료의 주축으로서 많은 관심을 갖고 역할을 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환규 의협회장은 "기본적으로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게 옳다"며 "공공의료의 성격을 시혜적 의료로 규정하지 않으면 공공과 민간 양쪽의 무한경쟁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그 피해는 모두 국민이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따라서 공공의료원은 시혜적 의료에 충실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해 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기 어렵지만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폐업이 능사 아냐...홍준표 지사 뭔가 착각"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하고 있는 경상남도에 대한 비판도 터져 나왔다. 도지사가 법 취지를 왜곡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지난해 2월 개정돼 지난 2월 2일부터 시행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 서비스 공급이 현저하게 부족한 지역을 의료취약지로 지정·고시하고, 시·도지사는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 중에 능력이 있는 기관을 ‘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해 시설·장비·운영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한 의료원장은 "개정된 공공의료법은 오히려 공공의료의 확대를 위한 것이지 홍 지사의 해석처럼 공공의료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의료원장은 "홍준표 도지사가 공공의료에 대한 법률을 왜곡해서,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의료기관으로 대체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악용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진주의료원에 투입하는 연간 50억 원의 재정을 민간의료기관으로 돌리면 훨씬 더 많은 지지 세력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연간 110억 원 의료시혜는 왜 평가 안 해주나?"
이날 참석한 5개 의료원은 현재 모두 적자 경영상태다. 서산의료원은 2011년까지 흑자였다가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이들 의료원의 2011년도 부채 및 당기순이익 현황을 살펴보면, 천안의료원은 29억4800만원, 공주의료원 14억9900만원, 홍성의료원 11억1200만원, 서산의료원 2억1900만원, 인천의료원 22억5800만원 등이다.
천안의료원의 경우 신축·확대 이전 후 적자 부담이 크게 늘어는 진주의료원과 닮은 꼴이다. 지난해 5월 약 450억원을 투입, 동남구 봉명동에서 삼룡동으로 이전한 천안의료원은 건축비와 부지비 등은 국가와 지자체가 50대 50으로 나눠 지원해 줬으나, 규모 확대로 인한 의료장비 확충, 인력 증가 등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의료원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의료원장들은 공공의료기관을 경영적 측면에서만 평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김진호 홍성의료원장은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이 기피하는 진료과목을 유지해야 하고, 의료급여환자나 노숙자 등 의료취약계층 진료를 책임지며, 전염병 등 의료재난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이렇게 많은 역할을 부여해놓고 실제 보건복지부의 공공의료기관 운영평가는 대개 경영 쪽으로 치중한다"고 밝혔다.
김 의료원장은 "충남지역 4개 지방의료원이 연간 공공의료사업으로 지출하는 비용을 합치면 총 110억 원에 달한다"면서 "이런 공익적 성과는 간과하고 회계상 적자 흑자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 의료원의 경우 작년 한 해 동안 응급실 운영에 7억 원, 정신병상에 10억 원이 소요됐다"면서 "공공의료원 설립 목적에 맞는 비용에 대해서는 국가든 지자체든 부담해야 하는 게 맞는데,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고 토로했다.
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원가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홍자 사무총장은 "공공의료 중 기본적인 것은 국가가 부담하고 지역 특성화된 부분은 지역이 담당하되 인건비, 공간 등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서 원가계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포괄수가제 "경영난 불난데 기름 부은 꼴"
의료원장들은 원가 이하의 저수가가 공공의료원 경영난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는데 공감하고, 특히 작년 7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및 지역거점 공공병원 총 40곳에서 확대 실시 중인 신포괄수가제가 경영수지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데 입을 모았다.
김진호 의료원장은 "의료원 내부적으로 신포괄수가제에 보이지 않는 영향이 있다고 보고 분석에 들어갔다"면서 "예를 들어 맹장수술의 경우 신포괄수가가 행위별수가 보다 10% 더 준다고 하지만, 비급여를 전혀 할 수 없으니 실제적으로는 마이너스인 셈"이라고 말했다.
허종일 의료원장도 "(병상회전이 빠른) 급성기 병상은 포지티브한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방의료원의 경우 만성기 질환자, 장기입원환자가 많아서 부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신포괄수가제 아래에서 수익을 내려면 병상을 빨리 회전시키고, 무조건 재원일수를 줄여서 환자를 퇴원시켜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검사나 타과 진료의뢰를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또 "일산병원을 통해서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는 결코 수익을 낼 수 없는 진료환경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의사 모시기 하늘의 별..."의협 도와 달라"
참석자들은 지방공사의료원의 의사 인력난에 대한 의협의 도움을 요청했다.
허종일 의료원장은 "의사들은 공공의료기관이라고 하면 무언가 낙후되고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지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의료취약지에 있는 의료원은 생활권에서 벗어나 근무해야 하는데 따른 부담감도 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홍자 사무총장은 "의사 채용의 어려움으로 모든 공공의료원들이 고통 받고 있다"며 "인건비와 인센티브 등을 국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의협이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노환규 회장은 "한 달 수입이 200~300만원, 심지어 적자를 보는 의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개원의들이 공공의료원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개원 투자비용, 즉 매몰비용으로 인해 돌이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며 "공공의료원에 대한 이해 부족도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의협이 공공의료원 인력 채용에 대한 홍보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노 회장은 끝으로 "사회적 취약계층 국가로 부터 시혜적 차원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다고 해서, 그 분들이 질 낮은 의료를 받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면서 공공의료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부분의 목소리를 많이 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이날 모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는 의료원장들의 요청에 대해 "소통의 채널을 만들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