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우 대의원회 의장, 총회 앞두고 소회·각오 밝혀
제37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출범한지 어느덧 1년이 다가왔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정부의 포괄수가제 강행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건정심 탈퇴와 대정부 투쟁을 선포한 의협은 잇따른 장외집회와 노환규 회장 단식투쟁, 전국 회원들의 집단 휴무투쟁 등 벼랑끝을 오가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한 해를 보냈다. 이후 대정부 협상에 들어가 의협 회장과 보건복지부장관의 전격 회동, 건정심 복귀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 현재 토요휴무 가산제 확대 등 대정부 협상 결과물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선거를 맞아 정치참여 가능성의 시험대 위에 올랐으며 의료계는 사상 초유의 의약품 리베이트 수수사건 수사의 후폭풍에도 시달렸다. 격랑 속의 의협을 지탱해 주는 힘은 전국 11만 회원들로부터 나온다. 민초 회원의 정서를 헤아리고 그들의 의지를 모아 집행부의 추진동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은 의협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회 몫이다. 오는 4월 28일 제65차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를 앞두고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을 만나 지난 1년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들어보았다. |
10여년 전 의약분업 사태로 촉발된 '의권쟁취투쟁' 원년의 의료계 지도자로서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변 의장은 2000년 경상북도의사회장을 시작으로 의쟁투 중앙위원, 의협 의료법비상대책위원장, 의협 대외사업추진본부 기획특별위원장 등 주로 투쟁과 관련된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편집자 주).
의료계가 투쟁을 시작한지 10여년 동안 의사에 대한 사회적 위상이 많이 약화됐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더이상 사회 지도층이라기 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투쟁을 통해서 의료계는 득 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정부와 '투쟁한다'고 할 때, 정부도 '의료계와 싸운다'고 합니까? 아니지요. 투쟁은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정부는 어떤 정책을 만들 때 의사들이 찬성할지, 반대할지 전부 예측하고 추진합니다. 의료계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과별·직역별로 분열시키고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이용해 회원들을 괴롭힙니다. 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을 형성해 의사를 국민으로 부터 분리시킵니다.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고, 부작용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상대와의 싸움은 결론이 이미 나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부터 얻은 결론은 '투쟁으로는 절대로 정부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매우 젊고 패기 넘치는 회장을 얻었습니다.
젊은 회원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회장이 나오다 보니 투쟁에 대한 강한 요구가 분출됐고, 마치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의협 집행부를 몰고간 것이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난해 의협의 대정부 투쟁은 실패했습니다. 투쟁의 전과물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 손에 얻어진 결과물은 아직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다른 측면의 성과는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의료제도와 정책은 의사 개인의 삶과 직결된 것이다, 따라서 의료환경의 변화 속에서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되겠다, 문제가 생기면 동료들과 함께 움직여야겠다는 인식을 회원들에게 심어 준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의사들의 억눌린 자존감을 분노라는 형태로 표출케 하고, 감춰져 있던 의료제도의 모순을 수면위로 끄집어낸 것은 집행부의 능력이고, 평가 받을만 합니다.
앞으로 의협의 대정부 전략은 어떤 노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투쟁을 다시 한다면 다른 것 없습니다. 집행부가 모든 것을 걸고, 끝장을 본다는 각오,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이 아니면 시작도 해서는 안됩니다. 투쟁을 무슨 스포츠하듯이 시작했다가 금새 그만두고, 몇 명이 모였네 안모였네하는 것은 (정부에게)참으로 우습게 비쳐집니다.
이제는 투쟁 보다는 대화와 타협입니다. 평소 정부와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으면서 정보를 교환해야 합니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정부도 함부로 강행하지 못합니다. 정부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사안이 불거진 뒤에 갑자기 반대하고 나서면 정부로서도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정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집행부가 임기 3년을 채우고 모두 떠나면, 정부와 아무런 연결고리 없는 새 집행부가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의협 임원 중에 보험·의무·기획이사 만큼은 각 1명씩 대의원총회에서 직접 선출해, 예를 들어 임기 10년을 보장하는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집행부가 바뀌어도 핵심 이사들은 계속 남아 정부 실무자들과 신뢰와 존중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윤창겸 상근부회장의 사퇴는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네요. 의료계로선 정말 큰 손실입니다. 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정부와 인간관계가 형성돼 있는 분인데, 지금 당장 그런 사람을 무슨 수로 만듭니까?
회원과 집행부, 의료계 지도자들과 집행부 사이의 '소통'은 집행부 출범 초기부터 주요 화두였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말한다면, 아직도 소통이 완벽하게 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소통이란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평소 잘 안 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현재의 소통은 '통하는 사람끼리만'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장점으로 볼 수 있으나, 한 집단의 리더로서는 여론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일단 한 발 빼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일선 시도의사회장들이 집행부-회원 간의 소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노환규 회장님은 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분입니다. 시도회장들은 마땅히 집행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너무 앞장서 나가다 보니 일선 시도회장들이 보조를 맞추기 어려웠던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리더십은 가장 높이 있는 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리더십으로 시도의사회장들을 이끌어야지, '왜 안따라 오나'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노 회장님은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경험과 소통의 부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사회에서는 후배인 회장님이 시도 의사회장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의협 회장 재신임 문제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의장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요.
지금까지 보여준 노 회장의 스타일로 봐서는 (재신임을)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에게 한 약속은 지켜야지요. 신임 여부를 묻고, 힘을 얻어서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약속을 못지켜서 미안하다. 신임 묻겠다' 당당하게 나가면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대차게 나가야지요.
이런 배짱이 있어야 11만 회원을 이끌 수 있습니다. 재신임은 너무 거창하게 할 필요없이 대의원총회에서 묻거나, 각 시도의사회 임원들에게 묻는 방법 등 혼란을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재신임 논란은 노 회장님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단초가 되었는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도자는 너무 말이 많거나 글을 자주 쓰면 안됩니다. 숨길 것은 숨기면서 카리스마를 유지해야 합니다. 회장님은 인터넷을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리더가 너무 대중에 자주 노출되면 소통의 효과는 반감되고 피로도만 쌓입니다.
6월말로 예정된 건정심에서 토요휴무 가산제 확대 방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투쟁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토요휴무 가산제는 투쟁할 거리도 안되고, (그 정도 사안으로는)투쟁해서도 안되고, 투쟁으로 얻을 것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건정심이 열리면 토요휴무 가산제는 통과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년 대선을 통해 의협이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참여를 시도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2010년 4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리베이트 쌍벌제' 법안(의료법개정안)이 191대 0으로 통과됐습니다. 191대 0이라는 것은 의협의 정치 영향력이 '제로'라는 것을 의미해요. 37대 집행부 들어서 한마음 의사가족대회에 대선 후보들을 초청하고, 민주당 모바일 경선투표 참여, 대선 후보자들에게 정책제안서 전달 등 여러가지 다양하게 움직인 것에 대해 일부 이견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무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투쟁보다) 잘 하는게 바로 그런 것 아닐까요? 선거를 도와주고, 정치인 후원회장을 맡아 준다든지…. 꼭 투쟁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다져놓은 정치력을 발휘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협 산하의 '의정회' 재건을 제안합니다.
과거처럼 폐쇄적인 형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합법적인 정치 참여 기구가 필요합니다. 의협이 직접 나서는 것 보다 의정회를 컨트롤타워로 삼아 지역별로 정치권과 유대를 쌓고 신뢰관계를 형성해 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앞으로 새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 개선도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의료계가 손실을 많이 보았습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의협 회장과 장관이 만나기도 하고 화해 무드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보면 의사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요.
진영 장관의 취임 첫 일성도 건보재정 안정화와 보장성 강화 아닙니까? 보험료를 올리던지, 수가를 올리거나 국고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결국 의사들을 졸라매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의협이 정부의 정책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와 등져서 손해보는 것은 결국 의사, 특히 개원의입니다.
이번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다룰 주요 안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가장 중요한 것이 의협 회장 직선제 정관개정이겠지요. 이미 직선제 전환은 이전 총회에서 결의된 만큼 정관 통과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의협 회장의 대표성 확보를 위해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선거방식에 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투표나 모바일투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최소한 60% 이상의 회원이 참여해야 의협 집행부가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회계감사특별위원회의 감사 보고서 채택도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작년 4월 대의원총회에서 2011년 회계 결산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재감사를 결의함에 따라 회계감사특위가 구성돼 최근까지 활동했습니다. 보고서 상에서 2011년도 회계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도 높게 처리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어서 열띤 토론이 예상됩니다. 공제회 법인화 관련 사항도 심도 깊게 다룰 전망입니다. 공제사업의 존속 여부, 법인화에 따른 자산 처리 문제 등 대의원들 간에 이견이 많아 논란이 예상됩니다.
집행부가 제안한 '범 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 협회 임원 정수를 늘리는 정관 개정안 등 역시 장단점에 대한 토론을 거쳐 처리해야 할 사항입니다. 이밖에 회비 납부율 제고 대책, 대의원 수 배정 문제 등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합니다. 모든 것은 대의원들이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이번 총회 운영상 특이할만한 사항이 있습니까?
일반 회원의 참여를 합리적으로 보장할 방침입니다. 과거 불미스런 사태를 교훈 삼아 총회 참관을 원하는 회원을 미리 접수 받아 방청권을 배부하고, 질문이나 의견 내용도 미리 제출토록해 민초 회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회의 진행도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의장에 취임하면서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위원들을 전국 시도의사회 대의원회 의장들로 모두 모셨습니다. 회원들의 여론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1년간 의협과 의료계 발전을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헌신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의장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년 2월 포항의료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의료계 지도자이자 공공의료기관의 장으로서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착잡합니다. 현재 포항의료원장과 의료원 산하의 경북도립포항노인전문요양병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는데, 노인요양병원의 경우 전국 A급 수준입니다. 들어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줄 서 있지요. 그렇게 잘 되는 병원인데도 최근 1년간 1억 5000만원이나 적자를 보았습니다. 신포괄수가제 영향이 큽니다.
포괄수가제도에서는 병상 회전이 빠를 수록 이익이 되는데, 노인요양병원은 장기 만성질환자들이 대부분이니 당연한 것이지요. 포항의료원장을 맡으면서 공공의료기관의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공공의료를 통해서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모두가 건강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주의료원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기관을 경영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고쳐지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회원들과 집행부에 한 말씀.
지난 1년간 자랑할만한 성과 없이 다시 총회를 맞이하게 돼 송구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11만 의협 회원 모두가 회장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집행부 임기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결정적인 잘못을 했을 때는 가차없이 질책하더라도, 사소한 과오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감싸줘야 합니다. 회원들 끼리, 회원과 집행부 사이에 비난을 위한 비난은 반드시 지양해야 합니다.
노환규 회장님은 많은 능력을 가진 분이십니다. 3년 임기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의견을 주장하기 보다 남의 생각을 더 듣고, 선이 굵게 회무를 집행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지향하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회장님 주위에 계시는 분들은 직언과 충언을 게을리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의협 집행부의 어려운 점을 도와주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