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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설명 잘하는 의사가 되는 길

청진기 설명 잘하는 의사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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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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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 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언젠가부터 병원에서 '동의서'라는 것을 열심히 받는다. CT를 찍을 때에도 동의서를 받고 내시경을 할 때에도 동의서를 받는다. 심지어 비급여 항목에 대한 동의서도 받는다.

이런 동의서는 환자의 알 권리를 위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의료인 스스로 보호받기 위한, 안전장치로의 역할이 더 크다.

마취과 역시 마취를 할 때마다 '마취동의서'를 받는다. 마취동의서에는 여타 동의서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마취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마취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 쓰여 있다. 합병증에는 인후통·치아 손상·두통·구토·구역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부터 폐렴·심근경색·뇌졸중 등 중대한 것까지 있다.

구토·구역 등의 합병증은 꽤 흔히 발생하지만(약 10% 정도) 중대한 합병증은 그렇게 흔히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들은 0.01%의 가능성이 있는 합병증까지 환자들에게 설명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환자가 그런 합병증에 관한 내용을 인지하고 마취를 받겠다고 동의했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취 동의서를 받으면서 각종 합병증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합병증에 대해 미리 들어 놓으면 마취 후 불편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환자가 덜 불쾌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느 날이었다. 만 18살 남자아이가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내려왔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 나이이기에 보호자는 병원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로 보호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기로 했다.

보호자에게 전화했다. 환자의 어머니가 받았다. 상황을 설명하고 마취에 대한 간단한 설명 후 합병증에 대해 설명했다. 보통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폐렴·심근경색·뇌졸중 등 심한 합병증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모두 설명했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내가 환자에게도 같은 설명을 또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보호자가 한마디 했다.

"아이에게 합병증은 설명하지 말아 주세요."

순간 머리를 무언가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인턴 때부터 환자에게 각종 동의서를 받으면서 합병증에 대해 아는 대로 모두 설명했다. 환자가 모든 것을 알고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CT 동의서를 받으면서도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조영제 알레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꼭 했다. 과연 나의 설명들이 환자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자세히 설명을 해줘서 좋아했을까, 아니면 가뜩이나 병원에 와서 긴장해있는데 나의 설명을 듣고 더욱 불안해졌을까?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몇 년 전부터 '설명 잘하는 OO'가 되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의사·간호사 할 것 없이 가슴에 그 문구가 쓰여있는 배지를 달고 다녔다. 환자에게 친절히 설명해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설명해주고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나도 이 캠페인을 보며 설명 잘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잘' 설명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적었다. 환자가 궁금해할 만한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면서 환자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그런 '설명 잘하는 의사'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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