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의 이유 있는 집착

산부인과 의사들의 이유 있는 집착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4.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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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는 산부인과 원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일년 중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눈으로 되물은 적이 있다. 그게 가능하냐고.

30병상 규모의 여성병원을 운영하는 그에겐 평일 외래환자를 보는 반나절씩 이틀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부인과 수술이 잡혀 있다. 저녁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회진을 돌고나면 8~9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주말은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머문다고 했다. 전공의가 없기 때문에 야간당직을 서면서 분만을 받는 것도 40대 중반을 넘긴 이 원장의 몫이다. 일정 설명을 마친 그의 얼굴에선 휴먼다큐 같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최근 잇따른 태아 비자극검사(NST) 소송 패소로 산부인과 의사들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의학교과서에 언급된 필수 검사항목임에도 제도권에서 방치돼 있다가 2009년 급여화가 결정되면서 때 아닌 환불 소동에 휘말린 탓이다. 그제껏 산전 진찰 시 NST를 시행하고 받은 비용은 건강보험 틀 밖, 이른바 '임의비급여'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판결문에 명시된 처분 목록표를 보면 건당 비용이 2만 원~7만 5000원선으로 환불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소송 18건에 연루된 수진자 1546명의 청구금액은 다 합쳐도 1억2천700만 원가량이다.

이 정도면 바쁜 산부인과 의사들이 NST 사태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의료계는 1999년부터 정부에 줄기차게 NST 급여화를 건의해왔다. 심평원에서도 2003년 "산전진찰상 태아 이상 등이 의심돼 진료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 실시했다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수가 신설의 당위성에 수긍했지만, 정부 내 여러 기관들을 표류하다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임신 28주 이후 한 번을 급여로 인정하고, 2회부터는 전액 환자 본인부담을 골자로 하는 정부 고시가 나왔을 때 의사들은 집단 환급이라는 '역풍'을 맞아야 했다. 산모들이 급여 결정 이전 5년까지 낸 검사비를 돌려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

그렇다면 고시 이전까지 의사가 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란 NST가 필요한 경우에도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해 버리거나, 일정비용을 받고 검사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산부인과 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의사들은 후자를 택했다.

11일 대법원에서 NST 임의비급여를 불법으로 최종 확정함에 따라, 줄줄이 걸린 나머지 10여개의 소송도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산부인과의사회는 수년 전 시행한 검사에 대해 사후 동의서를 받아내서라도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정당한 의료행위를 하고 받은 비용을 도로 물러줘야 하는 현실의 부당함에 화가 난 거다. 규율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는 보다 전향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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