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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나비넥타이

청진기 나비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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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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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아침저녁으로는 차가와 몸을 움츠리게 하더니 어느새 하얀 목련이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어제는 나비도 보았으니 바야흐로 이젠 봄이다. 나도 나비처럼 가뿐하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연구실에서 진료실로 봄볕을 쬐면서 걷다가 보직을 맡고 있는 동기생과 마주쳤다. 키와 체구가 별로 크지 않으며, 약간 수그리고 다니는 그는 회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목례만하고 말도 없이 지나쳤는데, 며칠 지나서는 교수들에게 나비넥타이 착용에 대한 의견을 묻는 메일이 왔다. 향상된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이며 의사의 넥타이가 환자 감염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과연 긴 넥타이가 감염에 영향을 미치는 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그렇지는 않았다. 보통의 산부인과 처치에서 일반적인 넥타이와 나비넥타이 사이에 감염률에는 차이가 없다는 보고가 있었으며(Biljan MM. BMJ 1993;307: 1582-4),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환자의 신뢰에 부정적 효과가 있지 않다고 보고한 논문도 있었다(Nair BR. Med J Aus 2002:177: 681-2).

오히려 나비넥타이를 맨 이는 일반넥타이를 맨 사람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임 받지 못한다는 기사(존 몰로이, 1985, 12, 28 동아일보)도 있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나비넥타이를 매어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합주부로 텔레비전에 나갈 때였으니 약 45년 전 일이다. 그 후로 어른이 나비넥타이를 맨 것을 본 것은 매스컴을 통해 유명 인사들이 맨 모습을 보거나, 호텔·고급식당·술집 등의 유니폼에서였다.

여러해 전에 읽었던 이윤기씨의 소설 '나비넥타이'가 생각났다. 박노수의 아버지는 국문학과 교수였는데, 어울리지 않게 줄창 나비넥타이만 하고 다녔다. 언제, 어느 곳에나 매고 다니는 부친의 나비넥타이는 '치명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명백하게 사람을 불유쾌하게 만드는 어떤 것, 결정적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부정적인 어떤 측면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기술됐다.

소설 속의 국문학과 교수는 그런 대로 봐줄만 하겠지만, 별로 잘생기지도 못하고 수염도 없는 이 얼굴에, 무채색 와이셔츠만 입는 단벌신사 주제에 나비넥타이가 내게 어울릴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기회에 나도 한 번 나비넥타이를 매고 근무해 보고는 싶다. 소설 속의 박노수가 유학 가서 학위를 받고 콧수염과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을 때, 아버지의 나비넥타이가 주던 부정적인 상징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데 필수적인 성격이나 습관이나 행동으로서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그 어떤 것'으로 개념화됐다는 데에 약간의 자신을 얻었다.

나도 낯설어하는 노인환자들에게는 친근감을 주고 무서워하는 어린이환자들을 나비넥타이를 매고 달래보고도 싶다. 또 점심을 먹고 봄기운에 잠깐 졸 때 호접몽(胡蝶夢)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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