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비 지원 환자 3만명 넘어선 한국심장재단 조범구 이사장
1983년 방한을 마치고 떠나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가 탑승한 에어포스원에는 한국 어린이 2명이 함께 탔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아이들이 레이건 부부와 국제자선기구 '기프트 오브 라이프 인터내셔널'의 주선으로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아픈 아이들을 굳이 외국까지 보내야 하느냐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1984년 심장병어린이 지원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새세대심장재단이 발족됐고, 1989년 한국심장재단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3월말로 한국심장재단에서 수술비를 지원한 환자가 3만명을 넘어섰다. 재단 출범이후 29년 동안 끊이지 않은 온정의 결과다. 지금 한국심장재단의 중심에는 조범구 이사장(연세대 명예교수)이 있다. 그는 재단의 역사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심장병어린이를 돌봐온 의사이기도 하다. 국내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 분야를 개척하고 1978년부터 25년동안 매달 부산메리놀병원을 오가며 봉사와 희생의 삶을 이어갔다. 그의 손길을 거쳐간 환아가 3만여명에 이르고 수술받은 아이는 2000명을 넘어선다. 의사로서는 직접 수술을 통해 여려진 어린 숨결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퇴임 후에는 심장재단을 맡아 또 다른 생명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40여년째 '심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
"재단 설립 때인 1984년에는 1년에 선천성심장병 환자가 7000~8000명이 태어났고 절반정도는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 대부분이 젊은 층이어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기 전이라 수술에 엄두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재단 설립이후 10년동안 9000명의 환아를 지원했습니다. 1년에 900명 꼴입니다. 이를 통해 젊은층 부모들이 사회적인 활동에서 소외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지난해까지 2만명의 심장병어린이를 살렸습니다. 그 아이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전한 것입니다."
지난해 까지 수술비로 총 700억원을 지원했다. 정부지원 없이 오로지 후원자들의 도움만으로 이뤄냈다. 재단을 30년 가까이 지켜온 이들은 누구일까.
"현재까지 우리 재단에 후원하신 분은 모두 12만명 정도됩니다. 그 가운데 정기후원자가 61%이며, 그 분들의 마음이 하나하나 모아져 재단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개인 후원자의 40%는 후원받은 분들입니다. 아름다운 기부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결연회원을 맺고 한 아이의 수술비 전액을 책임지는 분들도 있고, 기관이나 기업체 후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와 연계된 55개 계약병원에서는 선택진료비를 20%만 받고 있는데 그동안 병원에서 부담한 비용을 추산해보니 120억원이나 됐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콩팥이식·골수이식·얼굴기형 등 다른 질환도 지원하고 있고 제한 연령도 확대해 오고 있다. 지속적으로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듯 하다.
"재단 출범 때 지원 분야가 '선천성심장병'으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에 정관을 바꿔서 '심장병'으로 바꿨습니다. 그 후 급증하고 있는 후천성 심장병에 대한 지원도 이뤄졌고, 외부 기관의 요청으로 얼굴기형이나 콩팥이식 등도 지원하게 됐습니다. 아직도 재단 내부에서는 원래 목적대로 선천성 심장병에 집중해서 지원하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다른 질환에 대한 지원을 늘려갈 계획은 없지만 해당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확대 여부에 따라 재단 사업에도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계속 고민하겠습니다."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지금이야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교포나 외국인에 대한 지원도 이어오고 있다. 그 당시에는 부정적 여론도 있었을 텐데 어려운 결정이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지원 대상이 '한국인'으로 돼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을 도와 줄 수 없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각 의료기관들이 해외의료봉사에 나서면서 외국인을 국내에서 치료해주는 경우가 늘게 됐습니다. 수술비용에다 체재비·항공료 등을 포함하면 한 기관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결국 한국심장재단에도 지원요청이 들어오게 됐고 정관을 개정해 조선족·외국인노동자 등에도 전액은 아니지만 일부 수술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받았던 때가 있는 만큼 우리도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최근들어서는 매년 예산을 잡아놓습니다. 올해에는 1000만원씩 70명에게 지원키로 했습니다. 각 병원으로부터 1월에 신청을 받아 한 병원당 5~7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내 첫 미국 흉부외과학술원 정회원으로 국내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 분야를 개척했다. 학문적 업적만큼 인술을 펼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봉사와 희생의 삶은 조선일보 <청룡봉사상>(1996) 의협신문 <보령의료봉사대상>(2003) 수상을 통해 일편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1976~1977년 미국 흉부외과학회 E.A Graham 펠로우로 초청돼 텍사스 심장연구소·알라바마대학·메이요병원·하버드의대 등에서 심장외과 공부를 마치고 1978년경 미8군 군의관이던 페즐라 박사와의 인연으로 부산 메리놀병원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첫 발걸음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부모들의 가녀린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매달 한 번씩이었지만 20여년간 이어진 부산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매 순간이 그들에게나 저에게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후배들이 이어가고 있어서 더없이 고마울 뿐입니다."
한국심장재단은 수술비 지원 외에 다양한 사회참여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외연을 넓히면서 일거리는 많아지고 있다.
"외국의 심장재단은 심장병 예방이나 연구사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심장병 예방사업은 정부가 나서도 힘든 일이지만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방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전국을 순회하며 심장병 강좌·건강상담을 진행하고 '줄넘기 축제' '걷기대회' 등과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1m 1원 후원'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또 평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흉부외과학회 등에는 한국심장재단 학술상을 제정해 학술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지도 않은 기업이나 기관에서 후원의사를 밝혀온다. 그들의 선택 기준은 투명한 기금 운영이다.
"지난해 환자 수술비로 34억원을 지원했습니다. 한국심장재단은 후원금을 운영비로 쓰지 않습니다. 전액 환자 지원사업에만 사용합니다. 후원자들은 대부분 '후원금을 제대로 쓰는가'가 기준이 됐다고 합니다. 1000원의 후원금도 영수증을 자동으로 발급하고 있고, 일년에 네번 발행하는 소식지에는 후원내역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말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에 연임됐다. 별다른 제한이 없던 연임규정을 스스로 2회로 한정했다. 두번째 임기중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지 않을까.
"지난 10년간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국내 수술을 지원해 왔습니다. 문제는 한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해당 국가에서 직접 소아심장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흉부외과 의사와 소아심장·소아마취 전문의, 인공심폐기사·간호사 등을 한 팀으로 구성해 몽골과 연변대학병원 의료진 교육을 1년간 시행했습니다. 내년에는 베트남과 카자흐스탄 의료진이 들어오게 됩니다. 3년정도 사업을 진행한 후 현지를 방문해 성과를 점검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또 한가지는 북한지원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에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짓고 인력·기술·물자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고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겠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남북교류에 한국심장재단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장'이라는 단어에는 마음(心)이 있다. 평생 아픈 심장과 함께 하고 있는 그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후학들에게는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의사는 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희생도 따릅니다. 그저 그런 직업입니다."
노의사의 담백한 독백에서 이 시대의 의사상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