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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주 80시간 근무

청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주 80시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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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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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 장면 1.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평화를 즐기고 있는데 당직폰이 울린다.
"네, 마취과입니다."
"분만실에 경막외무통주사(Epidural PCA)를 할 환자 있습니다."
아직 경막외 마취를 혼자 할 수 없는 1년차이기에 윗년차 선생님께 노티를 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분만실로 갔다.
분만실에 들어갔다. 고요했다. 과연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마취과에서 왔는데요."
구석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아, 산모 저쪽에 계십니다."
커튼이 쳐져 있는 구석 자리에 산모가 있었다. 커튼을 열었다. 산모는 홀로 누워 있었다. 무통주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시술을 했다. 분만실을 나오며 궁금하게 생겼다.
'보통 분만실에 산모가 혼자 있나? 가족은 다 어디 갔지?'

# 장면 2.

언제나처럼 정신없이 수술이
진행되는 수술방.
교수: 자네 부인 출산이 언제라고 했지?
전공의: 네,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교수: 그래? 시간 진짜 빠르네. 자네, 가서 출산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전공의: 글쎄요, 당일은 보내주시지 않을까요?
교수: 음, 우리 병원에서 분만하면 회진돌다가 가서 보면 되겠네.
전공의: 여기 말고 다른 병원에서 낳을 계획인데…. 하루 정도는 갔다 오게 해주시지 않을까요?
교수: 글쎄, (시니어) 교수님이 보내주실까?
전공의: ….

▲ 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두 장면은 전혀 다른 사람의 얘기지만 묘하게 엮여 있다. 장면 1에서 분만실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남편은 어디 있지?'였다. 밤새 부인의 곁을 지키다가 잠깐 밖에 나간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바빠서 못 왔다'는 가설이 더 그럴 듯 했다. 일요일 아침에 바쁜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일요일 아침에도 무척 바쁘다.

만약 장면 2의 전공의의 부인이 일요일 아침에 출산을 한다 해도 남편이 그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에서 보내주지 않는 한).

인턴 일을 하면서 친구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로 '오프'의 개념이다. 내가 "그 날 오프니깐 8시쯤 보자"고 하면 친구들은 "오프라면서 왜이리 늦게 봐. 5~6시쯤 보자"고 답한다. '오프인 날=쉬는 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인들에게 '오프인 날=퇴근하는 날'을 의미한다(내가 근무하는 마취통증의학과는 좀 다르지만). 많은 과의 전공의들은 주말도 없이 매일 근무하며 하루 걸러 당직을 선다(우리는 이를 퐁당퐁당이라고 부른다). 대충 계산하면 주당 최소 120시간은 근무하는 것이다(몇몇 수술과들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곳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4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 이내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공의들은 과연 그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전공의들은 대부분 주당 최소 120시간에, 몇몇 과들은 150시간 이상 근무하는데 그들이 없어지면 누가 그들이 하던 일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최소한 그들이 정말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을 위한 법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7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산전과 산후를 통해 90일의 휴가를 줘야 한다. 또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의2에 따르면 배우자의 출산 시 최대 5일까지 휴가를 지급해야 한다. 임신을 하면 3개월은 마음놓고 쉴 수 있고 또 배우자의 출산 시 최소 하루이틀은 부담없이 휴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법의 혜택을 받는 전공의는 몇이나 될까?

아프면 병가를 쓰고,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연차를 쓰며, 임신하면 산전후 휴가를, 배우자의 출산에는 출산휴가를 쓸 수 있는 전공의의 수련 환경은, 과연 현실화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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