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 장면 1.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평화를 즐기고 있는데 당직폰이 울린다. # 장면 2. 언제나처럼 정신없이 수술이 |
두 장면은 전혀 다른 사람의 얘기지만 묘하게 엮여 있다. 장면 1에서 분만실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남편은 어디 있지?'였다. 밤새 부인의 곁을 지키다가 잠깐 밖에 나간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바빠서 못 왔다'는 가설이 더 그럴 듯 했다. 일요일 아침에 바쁜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일요일 아침에도 무척 바쁘다.
만약 장면 2의 전공의의 부인이 일요일 아침에 출산을 한다 해도 남편이 그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에서 보내주지 않는 한).
인턴 일을 하면서 친구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로 '오프'의 개념이다. 내가 "그 날 오프니깐 8시쯤 보자"고 하면 친구들은 "오프라면서 왜이리 늦게 봐. 5~6시쯤 보자"고 답한다. '오프인 날=쉬는 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인들에게 '오프인 날=퇴근하는 날'을 의미한다(내가 근무하는 마취통증의학과는 좀 다르지만). 많은 과의 전공의들은 주말도 없이 매일 근무하며 하루 걸러 당직을 선다(우리는 이를 퐁당퐁당이라고 부른다). 대충 계산하면 주당 최소 120시간은 근무하는 것이다(몇몇 수술과들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곳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4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 이내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공의들은 과연 그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전공의들은 대부분 주당 최소 120시간에, 몇몇 과들은 150시간 이상 근무하는데 그들이 없어지면 누가 그들이 하던 일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최소한 그들이 정말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을 위한 법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7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산전과 산후를 통해 90일의 휴가를 줘야 한다. 또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의2에 따르면 배우자의 출산 시 최대 5일까지 휴가를 지급해야 한다. 임신을 하면 3개월은 마음놓고 쉴 수 있고 또 배우자의 출산 시 최소 하루이틀은 부담없이 휴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법의 혜택을 받는 전공의는 몇이나 될까?
아프면 병가를 쓰고,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연차를 쓰며, 임신하면 산전후 휴가를, 배우자의 출산에는 출산휴가를 쓸 수 있는 전공의의 수련 환경은, 과연 현실화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