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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청진기 '이개'나 '히끼솅'이나…
청진기 '이개'나 '히끼솅'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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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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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한대병원 성형외과)
▲ 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한대병원 성형외과)

모든 낱말은 잘 만들고 널리 쓰여야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의 용어는 난해한 한자어가 많은데 이를 쉬운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로 고치려는 움직임이 광복 이후 계속되고 있다. 한자어 용어가 많은 이유는 일본어에서 한자를 매개로 들여와 음역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학문과 일상생활에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게 된 오늘날 음역된 용어의 어려움이 시대에 맞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리로 들어도 알 수 있는 친숙한 용어로 다듬어야 한다.

지금의 우리말 다듬기 과정이 그렇듯이 과거에 써오던 낱말이 고쳐야할 대상에 오를 때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일제시대에 살던 사람에게는 '벤또'나 '도리사라'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이해도 빠르다.

그러나 이 낱말들은 '도시락' '앞접시'로 고쳐져 세대를 넘어가면서 꾸준히 사용되며 군소리 없이 우리말로 굳어졌다. 이 용어들은 일반용어이지만 잘 만들어지고 널리 쓰인 예에 속한다.

전문용어는 전문인이 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일반인도 함께 쓴다. 예를 들면 사람 몸에 관한 의학용어는 의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쓰고 초중고생도 사용한다. 그 중에는 다른 분야의 용어로 연결되어 새로운 용어가 되기도 하고, 두세 개의 낱말이 합쳐져 또 다른 새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대부분 의사들이 전용으로 쓰는 부분이다.

의학용어도 일제 강점기의 흔적인 한자어가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소리로만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면서 반세기를 써 온 것도 많다. 이개·수장·무지·두부·흉쇄유돌근 등이 그렇다. 이것을 귓바퀴·손바닥·엄지손가락·머리·목빗근으로 고쳤다. 얼마나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들인가?

귓바퀴재건술, 엄지손가락접합술같은 경우는 해부학분야와 외과분야에 용어가 잘 어울어진 전문용어로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없지만, 괴사작은창자큰창자염(necrotizing enterocolitis), 거짓막잘록창자염(pseudomembraneous colitis)같은 경우는 거부감이 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쓰느니 차라리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잘 만들어지기는 하였으나 널리 쓰이는 데는 걸림돌이 되는 보기인데, 그것은 용어 자체가 길기 때문이다.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이러한 용어를 예로들어 쉬운 우리말 용어 전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해부학용어 잘록창자에 대해 옛 용어인 결장을, 이것이 들어간 진단용어로 괴사소장결장염, 거짓막대장염을 쓰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해부학용어에서도 비교적 보편화되었고 병명 등에 간략하게 쓸 수 있도록 소장·대장·결장을 작은창자·큰창자·잘록창자의 동의어로 올려놓았다.

우리나라의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히끼솅(引き線)은 벽 속에 묻어놓은 플라스틱 관을 통해 전선을 끌어당기는데 쓰이는 당김줄 같은 것이다. 아시바(足場) 역시 공사할 때 쓰는 발판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건축용어 바로잡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건설현장에 현수막이 걸릴 정도로 일본어 추방 운동이 있었으나 아직도 일본식 한자어는 공사판에서 쓰이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젊은 사람인 것으로 보아 올바로 만들어지고 나이든 사람부터 솔선수범해 사용한다면 새로 만들어지는 용어가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노동현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의사를 만들어내는 의과대학과 병원에서도 기성세대들이 이것을 못 알아듣는다고 학생들에게 핀잔을 주지 말고 귓바퀴·손바닥·엄지손가락·머리·목빗근을 근거로 한 귓바퀴재건술·손바닥쥐기반사(palm grasp reflex)·엄지손가락접합술·머리부상·목빗근판(sternocleidomastoid muscle flap)등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개나 히끼셍이나 아무리 특정한 일부 사람만이 고집부리며 쓴다고 해도 알아듣기 어려워 우리말이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특정 전문분야에서만 쓰는 용어라고 하더라도 교육과 열린사회에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속에서 어울려 거부감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의 용어가 너무 길어 쓰기에 불편한 용어는 쓰면서 다듬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의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처럼 우리말에서도 불고기백반을 불백, 쓰레기받기를 쓰레받기라고 하듯이 책상 앞에서 용어만 따지지 않고 많이 사용한다면 자연스레 쓰기 편리한 약자로 쓰이는 용어도 생길 것이다. 우리말 용어를 열심히 쓰며 생각할 때 불편했던 용어도 잘 다듬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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