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5 14:25 (목)
청진기 환자 보호자가 되어보니…

청진기 환자 보호자가 되어보니…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3.06.10 09:2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석재 공보의(경기도립파주병원 응급의학과)

▲ 최석재 공보의(경기도립파주병원 응급의학과)

2013년 5월, 이 한 달은 오래 기억에 남는 달이 될 것 같다.

5월 첫 금요일,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가족 식사모임을 위해 부모님이 진해에서 올라오시는 날이었다. 올라오시는 당일 아침, 아버지께서 옆구리 통증이 있으니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들르시겠다 하여 그러시라 했다.

그 날 저녁 늦게 도착하신 아버지를 맞아 안부를 묻고 진찰을 해보니 우측 옆구리 통증이 있어 요로결석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X-ray 를 확인하기로 하고 통증 조절을 해드렸다. 잠시 후 확인된 소변검사에서 예상했던 혈뇨 외에 염증이 포함된 소견이 확인되었고 신장수치도 약간 높게 나왔다.

복부 X-ray 를 보니 통증이 있던 우측이 아닌 좌측 신장 부위에 3cm 가량의 큼지막한 신장결석이 보이는 게 아닌가? 마침 비뇨기과 전공의로 근무중인 동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사진을 본 동기는 수술이 필요하다며 입원을 권했다. 해당 수술에 권위자이신 교수님이 병원에 계시다 하여 입원해 평소 잘 조절하지 못했던 당뇨와 혈압을 조절하면서 수술준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후 수술준비의 일환으로 심혈관 질환 확인을 위해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고 당은 잘 조절되고 있는데 트레드밀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심혈관 조영술을 해야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트레드밀 검사 결과지를 열어보니, 2단계에서 ST분절이 2mm 이상 떨어지는 저명하게 의미있는 소견을 보이는 게 아닌가? 결국 심혈관 조영술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과는 큰 분지는 심하게 막히지 않아 스텐트 삽입은 하지 않았지만 작은 분지 몇 개는 거의 막힌 부분도 있어 앞으로 수술 뒤에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다음날 신장을 직접 통과해 작은 결석 하나와 큰 결석을 레이저로 부숴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병실로 올라온 아버지는 식사도 거의 못하고 소변줄에 의한 통증과 수술부위의 통증으로 많이 괴로워하셨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3일 뒤 퇴원하셔서 일요일에 진해로 내려가시는 기차역에서 환송해 드렸으니, 이제 한 주간의 고생이 끝났구나 싶어 맘이 편해지는 상황이었다.

헌데 다시 상황이 시작되었다. 2일 뒤인 화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왼쪽 하복통이 발생해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복부 CT 결과는 결석이 내려오긴 했으나 완전히 막힌 건 아니어서 원인이 아닌 것 같다며 관장을 다시 해본다고 했다가 반응이 없으니 수술했던 병원으로 다시 가야한다 했다가 혼란을 겪고 있었고 옆에서 직접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으니 나로선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하루 종일 결석 통증에 혼잡한 응급실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검사를 받아서 그런지 아버지는 다음날 검은변을 봤다는 연락을 해오셨고 스트레스성 궤양 출혈 가능성을 설명드리고 다시 인천으로 올라오시도록 했다.

연휴 전날 저녁에 올라오신 터라 대학병원 응급실은 혼잡할 것 같아 2차병원 응급실에 들어가 위세척과 항문검사를 해보니 흑색변이 맞다 판단되어 입원해 금식 및 수액치료를 하면서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에 내시경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보호자로서 2주간의 긴 일정이 지나고 월요일을 맞아 내시경을 마친 아버지를 찾아뵙고 결과를 듣기 위해 해당 과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니 단순 궤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불규칙한 변연의 모습이 위암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라 조직검사를 해 두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멍한 느낌이었다.

어머니께 자세한 상황을 설명 드리고 아버지께는 안좋은 소견이 보여 조직검사를 나갔다고만 말씀드리니 알겠다는 눈치이시다. 그날 오후, 수술받은 비뇨기과 외래를 방문하신 아버지는 내려왔던 결석 때문에 왼쪽에 수신증이 발생하면서 수술부위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했던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입원하면서 또 다른 시술을 받게 되었고 이렇게 세번째 주간동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지금은 다시 진해로 내려가 지내고 계신다.

그동안 혈압 당뇨가 있긴 했지만 젊었을 때 운동도 하셨고 비교적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께 여러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결석성 신우신염이 있어 수술을 준비하던 중 협심증을 진단받고, 갑자기 내려온 남은 결석에 의한 통증에 스트레스성 궤양출혈을 겪고 이어서 위암 의증 얘기까지 나오고. 이제까지 산처럼 커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복통이나 다른 문제로 내원했다가 검사도중 우연히 암을 진단받고 보호자께 설명을 드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인이 되신 분들이 특별한 검사 없이 지내시다 다른 문제로 응급실에서 흉부 사진이나 복부 CT 를 확인하다 상당히 진행된 암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난 당황스러워 하는 보호자께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동안 암 있는 줄 모르고 지내셨으니 다행일 수도 있다. 고령인 경우는 적극적인 치료가 상책이 아닐 수 도 있다."

헌데 직접 보호자가 되어보니 그 느낌이 좀 달랐다.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할 무렵, 벌써 아버지가 암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아니 꼭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노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른이 된다는 것, 이런 것일까? 아침에 난 어떤 표정으로 조직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있을까? 이제까지 난 안좋은 소식을 처음 접한 보호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했던 것일까?

최근 EBS 에서 '황혼의 반란' 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다. 마음, 생각과 환경이 젊어지니 몸과 정신의 연령 또한 젊어지더라는 영국의 실험 결과를 한국에서 재현한 내용이었다. 한창 일터에서 일을 하다가 퇴직한 이후 갑자기 몸과 정신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제 늙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각인시키고는 몸과 정신이 이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병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의 마음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갑자기 중한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그 마음은 또 어떠한가?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 소견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소재 활용을 허락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