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대상 환자'정보유출 '인권 사각지대'

'기피대상 환자'정보유출 '인권 사각지대'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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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대상 환자' 정보유출 `인권 사각지대'
의협 `환자 정보와 인권 보호' 공청회 

대한의사협회는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환자정보와 인권보호'를 주제로 공청회를 열어,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은 심도있게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정효성 의협 법제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는 시민단체 등 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2개의 주제발표(좌장·지제근 의학회장·의료정책연구소장)와 지정토론(좌장 한동관·의협 윤리위원장) 순으로 이어졌다.

첫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정은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국립서울병원)는 `정신과 환자의 정보유출 문제점'이란 주제를 통해 “금년 5월에 발생한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통지서 사건은 개인비밀의 누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진료기록의 외부 유출로 인해 환자와 의료인간의 신뢰가 붕괴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5월에 기존 `국립서울정신병원'을 `국립서울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도 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정 이사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 인구의 범죄율에 비해 높지 않은 점과 교통사고자 및 전체 범법자 중에서 정신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하며 정신과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의 수시 적성검사가 과연 효과적이었는지 반문했다.

만일 정신과 환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기피 대상 환자'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어떤 환자가 의사를 믿고 몸을 맡기겠냐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 수시로 재발될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관리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정은기 이사는 강한 우려를 표시하며, 진료기록 등 개인 정보가 누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일관되게 개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이사는 특히 이번 인권침해와 관련해 `부적절한 조치'를 취한 정부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국가기관의 환자정보 이용의 한계와 법적책임'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의사의 환자정보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는 `절대적 의무'라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며 “환자의 치료목적과 공공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환자 개인의 기록은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은 이를 모르는 제3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신 변호사는 정보접근에 관한 형행 법률 구조를 보면, 헌법상 프라이버시권이 보장돼 있는 반면에, 제21조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특정 사안에 정보공개청구권을 두고 있어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법익이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환자의 비밀을 보장하도록 엄격히 규정한 법률이 있는 반면에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제83조) ▲공무원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료법(제20조 제1항) ▲형사, 민사 소송법 등에는 환자의 진료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법조계·시민단체 등 각계를 대표해 참석한 지정토론자들은 이날 `환자정보와 인권보호'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대부분 “환자의 진료정보는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요양기관에 대해 진료비 지급을 목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경찰측과의 정보공유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따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병준 변호사는 “30∼40년 전에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이슈화되어 법제화되어 있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여기에 눈을 못 뜬 상태”라면서 “학설과 판례가 혼재돼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공론화를 거쳐 환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주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부회장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정신장애인도 국민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조 훈 경북의대 교수(의료정보학)는 “환자정보의 보호문제는 우선 소유권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의사 또는 환자 개인에게 맡기는 것 보다는 의료기관의 소유로 인정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를 대표한 신이영 생명보험협회 상무이사는 “보험회사에서 취득한 정보자체가 오류이거나 허위일 경우 계약 당사자 또는 다른 가입자들에게 형평성 차원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피보험자의 정보를 집적하고 있는 공공기관으로부터 효율적으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색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에 대해 정부측 대표로 참석한 최홍석 보건복지부 사무관(의료정책과)은 “환자의 정보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법에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사무관은 향후 대책마련에 대해 “각각 따로 따로 돼 있는 개별법을 개정해서라도 환자의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도록 정부가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한동관 의협 윤리위원회 위원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해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처지인데, 오히려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료유출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경찰청의 수시 적성검사에 대해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어느 정도의 환자 비밀유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현행 의료법에 의하면 환자의 비밀을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등 엄하게 다스리면서도 국민건강보험법은 `안된다'는 정도의 문구로 비교할 수 없는 `완화된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어 앞으로 관련 조항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정보 유출 문제를 더욱 부채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한 위원장은 “환자 정보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법령을 일관성 있게 통일시킨 다음, 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관련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줄 것을 정부측에 주문했다.

환자 정보가 외부에 흘러 나갔을 경우,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언론매체 등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간염을 앓았던 병력이 공개되면서 취업이 취소된 경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환자에 관한 정보는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며, 환자의 정보를 악의적인 의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치돼 있는 허술한 법망도 종합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외국 선진국에서는 엄격한 법률을 통해 보호받고 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우리나라에서도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자의 발빠른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보여진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A씨는 지난 5월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통지서를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강한 분노도 함께 끓어 올랐다.

경찰청이 임의로 대상자를 정해 의사의 진단서 또는 소견서를 갖고 해당 면허시험장에 출두하도록 통지서를 발급했던 것이다.
“어떻게 개인의 진료기록을 경찰이 알고, 아무런 꺼리낌 없이 자신들의 업무에 이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수시 적성검사 대상자들은 불안에 떨었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다는 점에서 분을 삭일 수 없었다”는 것이 당시 상황을 접한 환자들의 전언이다.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에 따른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정보유출 등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도사리고 있다. 소중히 보호받아야 하는 것 중 하나가 `환자의 진료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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