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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진정한 삶의 가치

청진기 진정한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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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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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경기 군포 현대중앙의원장)

▲ 이현석(경기 군포 현대중앙의원장)

당뇨로 병원을 다니던 60대 중반의 환자가 있었다. 설명을 하면 열심히 듣고 약도 잘 복용하던 환자인데 일년 반 정도 병원을 다니던 어느 날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다. 강남에서 학원 강사로 명성을 얻고 돈도 충분히 벌어 아예 학원을 차려서 운영하다가, 나이가 들자 학원은 후배에게 물려주고 은퇴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처남이 사업을 하다 실패해 구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아 놓은 돈을 주었는데, 결국 부도가 나면서 보증을 서준 것까지 문제가 돼 전 재산을 날리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자식은 친척집에, 부인은 음식점 종업원으로, 본인은 공장 경비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아마도 날벼락과 같은 충격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당뇨도 발병한 것으로 추정됐다.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를 듣고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올 때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를 나누고 스트레스가 당을 어떻게 올리는지 그리고 힘든 시기라도 건강만은 지켜야 미래가 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할 때도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는데 다행히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그 후 여동생 집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주유소에서 시간당 5천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 몇 년째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나이이고 추운 겨울과 무척이나 더운 여름에도 실외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억울함과 회한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가족을 감싸고 보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직장을 갖고 있어서 정부 지원금을 절반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를 일해도 실질 소득의 증가는 40에서 50만원 밖에는 증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령인지라 주유소에 직접 취직이 안되고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기 때문에 임금도 적고 해고의 위험도 높은 상황인데도 같은 주유소에서 수년간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힘들다고 피하는 직장인데도 말이다.

소위 잘 나가던 사람이 본인의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분노와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화려했던 경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나기가 쉽지 않게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집안이 어지러울 때 효자, 열녀가 나타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이 나타난다고 했듯이 사람은 어려울 때 그 진가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분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도 최고참으로 다른 직원들의 든든한 기둥의 역할도 하고 있으며, 육체적 노동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당뇨약도 줄일 수 있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너무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건이 이슈화되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분노가 확산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를 들어 2006년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명백한 오심으로 전국이 분노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도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박지성 선수의 말에서 그가 왜 국제적인 큰 선수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의사란 직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의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억울함이 한으로 맺히지 않고,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여 건강한 삶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나의 스승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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