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가 현실화" 달라진 국회...왜?

"저수가 현실화" 달라진 국회...왜?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3.10.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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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여야 의원 '수가 현실화' 잇딴 지적
과잉진료·로봇수술...의협 '파격' 행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위원장은 지난 4월 정부 현안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낮은 수가로는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 위원장은 이어 6월 열린 4대 중증질환 관련 정부 현안보고에서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달 14일 부터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저수가 문제가 잇따라 지적됐다.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은 병의원간 비급여 진료비 격차 실태를 지적하며 "의료행위에 대한 적정수가를 보장해 병·의원들이 비급여 진료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비정상적 의료수가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엔 야당인 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지역·과목별 의사 편중현상이 왜곡된 수가체계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과거 국회에서 열린 각종 토론회·공청회 등에서 주로 의사출신 국회의원들이 저수가 문제를 언급한 적은 있어도, 국정감사 등 국회의 공식 활동 기간에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의료수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저수가 개선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기득권 계층의 편에 선다는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수가 문제는 금기시돼 온게 사실이다.

올해 들어 크게 달라진 국회의 모습은 의료계의 최근 행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의협은 지난해부터 저수가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일관된 정책을 이어왔다.

현 의협 집행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칼이 '포괄수가제 거부'였다. 지난해 5월 2일 출범한 제 37대 의협 집행부는 공식 업무 개시 불과 일주일 뒤인 9일 20개 과별 개원의사회 회장단과 긴급 연석회의를 열어 포괄수가제 강제시행에 대한 전면거부 결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노환규 의협 회장은 공중파, 케이블 TV ,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가리지 않고 토론회, 인터뷰에 나서 포괄수가제 도입 대신 진료수가의 현실화를 주창했다. 정부가 진정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포괄수가제 확대가 아닌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괄수가제에 대한 반발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한국 의료의 어두운 이면에는 '저수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건정심의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가 비현실적인 저수가를 잉태하므로 건정심 구조를 깨뜨려 합리적으로 재편하지 않고는 우리나라 의료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치러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등에게 보건의료정책을 제안하면서 제 1순위로 꼽은 것도 건정심 구조개선이었다.

특히 노환규 의협 회장은 저수가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과거 회장들과는 확연히 변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의사들의 과잉진료가 실제로 있어왔다' 라든가 '3시간 대기 3분진료는 의사들의 불성실 진료', '사망율이 80%에 이르는 로봇수술', '전공과목 대신 미용성형을 하는 의사들' 등 의료계 대표가 한 말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 파격적인 발언을 이어나갔다.

노 회장은 과잉진료의 원인이 살인적인 저수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2006년 기준 원가의 73.9%에 불과한 강제 저수가로 인해 의사들은 의료사고로부터 발생되는 경제적 피해를 덜기 위해 과도한 검사와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부 반발 불구 '파격 발언' 이어 나가

대형병원에서 주로 시행하는 로봇수술, CT·MRI 촬영 남발도 과잉진료이며, 이 역시 원가이하의 수가로 인한 수익보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역설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의료계 내부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갈등을 유발시켜 모순을 드러내고, 수면위로 떠오른 사안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노 회장의 문제해결 접근방식은 일반 국민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거 의협과 첨예하게 대립해온 건강세상네트워크의 박용덕 사무국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최근 의협의 모습이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의협은 포괄수가제 반대, 수술유보 결의, 건정심탈퇴, 대정부투쟁 선언, 의협 회장 단식, 토요 집단 휴진투쟁 등 숨가쁘게 전개된 정국 속에서도 '수가 현실화'라는 핵심 키워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수가 문제를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문제로 인식시키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모성사망률'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 회장은 2008∼2011년 4년 동안 간접모성사망률이 8.4명에서 17.2명으로 증가한 사실을 들며, 이는 진료수가가 지나치게 낮아 산부인과 의사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동안 연도별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숫자가 177명에서 56명으로 급격히 감소한 사실은 노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올해 초 의료계를 강타한 리베이트 사건,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도 저수가 사안과 연계시켰다. 특히 일부 회원들의 극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노환규 회장이 직접 의료원 현장을 방문해 보건의료노조 대표들과 면담을 갖는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보건의료노조가 저수가 문제를 정식 아젠다를 채택키로 한 것은 노 회장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노 회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야지만 국민들이 잘못된 의료제도를 고치는 데 의사들과 함께 인식을 하고 노력하게 될 것"이라며 "국민이 제대로 알기 전에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의 잇딴 '저수가' 지적이 실제 제도개선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1년 6개월여 동안 보여 온 의협의 일관된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길 바라는 의료계로선 최근 의원들의 발언이 '립서비스'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로 읽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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