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증명서 받아 5년간 병원·약국 진료기록 샅샅이 뒤져
금융소비자연맹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사생활 비밀 침탈 행위"
금융소비자연맹은 23일 "생명보험회사들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수집하고, 이를 보험사에 유통시켜 공유토록 하는 것은 인권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금융소비자연맹(상임대표 조연행)은 "보험 가입자들이 의료비를 비롯한 보험금을 청구할 때 보험사들은 '지급심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앞세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제출받아 주거지 인근 병·의원을 뒤져 개인의 진료정보를 수집·조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맹은 "보험사들은 진료정보를 수집한 후 전산으로 입력, 보험협회로 넘겨 전 보험사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이는 명백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자 헌법이 정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비밀, 자유의 원칙을 침탈하는 인권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일 보험사들의 이러한 불법행위를 승인한 금융위원회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112명이 생명보험협회를 상대로 개인의 질병정보 불법 수집·유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연맹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의 질병정보는 '민감정보'로 공공기관만이 보유할 수 있음에도 이익단체인 생명보험협회가 불법으로 수집 유통할 수 있도록 승인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응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연맹은 또 공공기관인 보험정보원으로 정보를 일원화 관리하는 것을 막고, 이익단체인 생명보험협회가 질병정보를 불법 수집해 유통시킨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 역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맹은 질병정보가 유출되면 카드사의 금융정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국가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해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금융감독원이 보험사기로 인한 민영보험금의 누수를 막고 건강보험 부당청구를 줄이겠다며 '건전한 보험질서 확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도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당시 건보공단과 금융감독원은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부당청구 적발을 위해 공동수사에 나서는 등 협동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시민·노동단체는 "건보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가 금감원은 물론 민영보험사에 넘어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환자 개인정보 공유로 이어지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익을 추구하는 건강보험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보험에 정보를 제공해야 할 당위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미흡한 상황에서 경쟁관계인 민간보험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윤확보 수단으로 활용토록 하는 것은 공공기능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질병정보를 보험가입의 판단자료로 사용하게 하면 기왕증이 있는 가입자들은 사회보험권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경증 정신질환자의 생명보험 가입 배제 등 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질병정보를 보험회사들이 이용하게 되면 차별을 더욱 구조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행정 목적으로 이용한 진료정보를 지속적으로 보관·축적하고 있는 것은 사생활 침해와 감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정보수집과 이용의 목적이 달성된 이후에는 폐기하거나 개인정보 침해가 이뤄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형태만을 남겨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