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년이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얼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해방감도 느낍니다. 먼저 정년을 한 선배들이 정년 다음날 아침에야 실감이 난다고들 하던데 저도 그럴 모양입니다."
조 교수는 "해드린 것 보다 훨씬 많이 받고, 많은 분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다"며 "서울대병원 같은 자랑스런 일터에서 여러 좋은 분들과 함께 반평생을 지냈음은 개인의 영광"이라고 정년을 맞는 감회를 밝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의과대학에 진학해 정신과를 전공하리라 결심했습니다. 중앙대 철학과 교수로 총장까지 역임하셨던 이석희 선생님이 당시 심리학을 가르치셨는데, 그 때부터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매료됐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 인간과 인간의 정신세계에 탐닉해 있던 조 교수에게 심리학은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심리학에 심취하면서 아예 진로를 의과대학 신경정신과로 잡았다. 조 교수가 일찌감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 이면에는 좌익과 우익 그리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정면으로 충돌한 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도사리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전쟁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조 교수는 인간의 심리와 정신세계에 깊이 천착해가고 있었다.
조 교수는 1961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63년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65년 미국에서 인턴과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미국 하이 포인트병원에서 전임의로, 미국 뉴욕시립병원에서는 병동장으로 1974년까지 근무했다. 그해 모교의 부름을 받고 귀국한 조 교수는 1975년 '공자에 있어서의 孝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학위논문의 골자는 효(孝)는 자식이 가진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반항적 충동이 반동형성(反動形成)과 승화(昇華)라는 자아의 방어기재(防禦機才)를 거쳐 의식화 됐다는 것입니다. 오디프스 복합체와 그의 해소과정에서 아버지에게서 오는 지나친 거세공포(去勢恐怖) 때문에 공자의 자아는 특히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어머니 쪽보다 강조하여 이것이 효를 위시한 그의 가르침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논문 발표 이후 조 교수는 한동안 적지않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감히 공자를 모독했다'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문교부와 서울대 본교에서 전화가 오더니 결국은 조사위원회까지 만들어 논문을 조사하던 기억이 납니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 통치이념으로 충효사상을 강조했던 시대상황 속에서 충효의 상징인 '공자'와 '효'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괴씸죄로 낙인 찍히기에 충분했다.
국회와 조사위원회까지 팔을 걷고 나섰던 조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소동은 후에 "학문적으로 열심히 접근한 논문"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일단락 됐다.
"프로이트가 전설과 신화를 근거로 오디프스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E. jones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토대로 햄릿을 분석했듯이 공자의 전기를 근거로 효의 의미와 무의식을 분석하고자 했지요."
조 교수는 이후에도 명심보감·효경 등에 기술된 72례의 효자상을 분석한 연구논문을 통해 효자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색다른 이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공자외에도 이 상을 비롯한 작가를 대상으로 '문학과 정신분석의 연계'를 시도, 주목을 받았다. '프로이트와 한국 문학'에서는 이 상의 실제 경험이 그의 소설 '12월 12일'과 시 '오감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철저히 다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집착은 숱한 저서 집필로 열매를 맺게 된다. 조 교수는 '임상행동과학', '프로이트와 한국문학', '행동과학-환자와 의사' 등 3권의 단행본과 15권의 공저를 출간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정년 이후에도 꾸준히 집필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현재 최종 교정에 들어간 '사회정신의학'이 출판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예술과 정신분석'을 다룬 저서도 조만간 집필을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한국정신신체의학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학회 활동을 펼친 바 있는 조 교수는 정년 이후에도 장기인 '정신분열증의 정신치료'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정신치료란 환자가 지닌 성격상의 문제와 감정적인 문제들을 심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것입니다. 약물이나 물리적인 치료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정신적 증상을 없애거나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환자의 인격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조 교수는 신경정신과학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으로 제정해 놓은 연구비 지원규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험동물에 들어가는 비용, 시약비, 기계 사용비 등이 전체 연구비의 60%가 돼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신경정신과학 분야는 연구비를 지원 받는데 제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이 분야의 연구활동이 위축돼 고사될 우려가 있습니다."
조 교수는 정년 이후 조두영 신경정신과(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반포플라자 4층)를 개원, 개원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는 갖가지 규정과 규제 때문에 환자 진료에 제약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개원을 하게되면 소신껏 환자를 진료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기초부터 하나씩 다시 시작해야 하는 험난한 개원의 생활의 출발점에 선 조 교수는 "이제는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며 "욕심 내지 않고, 책과 논문도 계속 쓰면서 재미있게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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