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칼로리로 인한 비만만으로 당뇨병 증가 설명안돼
화학물질 생산량· 당뇨병 유병률 일치..."현 패러다임 변화 필요"
당뇨병은 흔히 과다한 당 혹은 칼로리의 섭취가 그 원인으로 알려져 왔지만 화석연료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당뇨병 발생의 복병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경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대사증후군포럼(회장 허갑범)은 9일서울 신촌 YBM어학원 CNN & Biz센터 지하 강당에서 상반기 세미나를 개최해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과 대사증후군과의 관계성을 규명하는 학술모임을 가졌다.
먼저 홍윤철 서울의대(예방의학교실)교수가 '화석연료시대와 당뇨병' 발표를 통해 환경오염물질인 다이옥신이나 다염화비페닐 등에 많이 노출되면 당뇨병의 발생 위험도가 상당히 높아진다는 최근 발표 논문들을 소개했다.
홍교수는 이런 몇 가지 특정한 화학물질 외에도 "먹는 물을 통한 다량의 비소섭취와, 미세분진이나 벤젠 같은 대기오염물질 혹은 플라스틱 가소제로 많이 쓰이는 프탈레이트 같은 물질도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미쳐서 당뇨병의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칼로리 섭취와 에너지 사용의 불균형이 당뇨병 발생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비만 유병률과 당뇨병 유병률은 서로 거의 일치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특히 홍교수는 "아시아인, 예를 들어 한국인의 비만 유병률은 미국인의 거의 10분의 1 수준인데 최근 한국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미국인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비만이 당뇨병의 중요한 원인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당뇨병을 설명할 수는 없고 당뇨병을 일으키는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홍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의 당뇨병 유병률 변화는 흥미롭게도 같은 기간 화학물질의 생산량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현재 아시아 지역의 당뇨병 발생의 증가 속도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빠른데 최근 25년간 화학물질의 생산과 사용 증가 역시 미국·유럽보다 아시아 지역에서 컸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환경오염물질이 왜 인슐린 저항성, 그리고 당뇨병을 초래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 화학물질의 공통적인 특성은 문명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혁명 이전에도 인류에게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새로운 화학물질은 우리 몸에 들어와 기본적인 산화-환원 반응들의 대사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반응성산소기들이 산화스트레스를 세포에 주게 된다. 즉 새로운 화학물질에 대한 방어체계라고 할 수 있는 반응성산소기의 발생이 췌장에서 인슐린 생산에 관여하는 베타세포에 영향을 주거나, 인슐린 수용체를 갖고 있는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에 영향을 주어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홍교수는 인류가 화석 연료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화학물질은 그 수가 일 년에 2000개에 이르며 새로운 화학물질이 계속해서 만들어져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가 이를 따라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고칼로리 섭취와 함께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당뇨병 발생의 증가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덕희 교수(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는 고엽제를 사용한 월남전 참전군인에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중 가장 독성이 강한 다이옥신 노출이 제 2형 당뇨병 발생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특히 2006년 미국 일반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결과에서 매우 낮은 농도의 POPs, 특히 유기염소계 농약과 PCBs종류가 제 2형 당뇨병과 강력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됐는데 일반인구집단에서 매우 흔하게 검출되는 POPs의 농도가 높을수록 당뇨병의 유병률이 무려 10배 이상 높았으며, 놀랍게도 POPs의 혈중 농도가 매우 낮은 경우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비만과 당뇨병간의 관련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 연구결과는 비만 그 자체보다는 비만조직에 축적된 POPs와 같은 화학물질이 당뇨병 발생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비만과 대사증후군'이라는 현재의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서는 이밖에 김영미 경희의대교수(생리학교실)가 우리 몸의 혈청중에 존재하는 AhR 리간드 활성을 가지는 환경유기화합물의 생물학적 총량이 증가하면 타겟조직의 미토콘드리아 활성이 손상됨으로써 당뇨병과 인슐린 저항증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본인의 연구를 소개했다.
따라서 세포-기반 방법으로 극미량의 혈청을 사용하여 측정할 수 있는 AhR ligand activity 와 ATP 함량, ROS 발생 지표는, 당뇨병의 발병여부를 예측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며, 앞으로 대사증후군을 제어하고 예후를 예측하는 중요한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환경유기화합물들이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는 기전을 이해하고, 혈중에 만성적으로 축적된 화합물질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고안한다면 당뇨병 및 대사증후군의 치료 및 예방에 획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