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식 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검은 색 교복을 입고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한창 성장기라 그런지 2학년 여름이 지나자 키는 부쩍 커졌고, 교복의 팔다리는 짧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금은 꽤 유명한 배우가 된 동네 형님 옷을 물려받아 교복은 어느 정도 괜찮았는데, 문제는 머리였다.
소위 '스포츠형' 머리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머리를 자르고 일주일이 지나면 앞머리는 소가 핥은 것처럼 우측으로 쏠려 넘어가고, 뻣뻣하고 기름(?) 넘치던 머리카락은 정수리와 뒤통수의 경계 부분을 정확히 나누어, 남북분단의 아픔을 머리로 표현하는 학생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아무리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고 물 칠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대학생이 되면, 좀 나아지려니 했는데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은 계속됐다. 워낙 머리숱이 많고 뻣뻣해서인지 늘 한쪽이 튀어나오거나 푹 가라앉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렇게 예과와 본과 생활을 하던 중 차츰 이용할 만한 건전한(?) 이발소가 줄어들게 되었고, 남자들도 커트를 위해 미용실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헤어 디자이너를 만나게 되면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처참한 결과가 반복됐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머리를 마음에 들게 잘라주는 헤어 디자이너를 만나면 적어도 3~4년 이상 머리를 맡기며 살게 된다. 그가 자리를 옮기면 아무리 멀더라도 찾아갈 정도이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노하우 중 하나는 미용실에 들어가 실장이나 원장에게 머리를 맡기면 그나마 참혹한 실패는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경우 일반적인 남자 커트 비용보다 적어도 1.5배에서 2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한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떠한가. 우리도 어찌 보면 차별화된 노하우를 지닌 개개인의 의료 기술자인데, 정부는 선택진료비 이른바 특진비를 축소하고 결국 없애겠다고 말하고 있다. 의사는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평가를 받게 되고, 졸업 자격이 갖춰지면 국가고시를 통해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는다.
필요한 경우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지낸 후 전문의 시험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또 한 번 평가받게 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장시간의 교육과 수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간에도 의과학적 지식수준·경험·술기 능력 등이 근무 연한이나 수련 정도·강도 등에 따라 차이가 나곤 한다.
또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할 수는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개인 능력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환자-의사간에 특별한 교감과 공감도 그의 노하우이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분명 의사별 능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진료비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시장경제에 근거한 자본주의를 국가 경제 원리로 삼은 우리나라에 부합되는 일인가. 동일 서비스에 동일 수가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진료비가 의사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의료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태생적 한계도 아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선택진료비가 마치 의료기관이 국민의 주머니를 불법적으로 털어내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정말 선택진료비가 그토록 부당한 제도라면 없애면 그만인 것을, 이런 저런 보전방법을 제시하는 정부의 태도 또한 부조리한 것이 아닌가.
그나마 제시한 보전 방법이라는 것이 외과계와 내과계를 구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은 필자의 피해망상적인 생각인가.
앞서서도 말했지만, 필자는 본인의 기괴한 머리를 정성스럽게, 멋스럽게 커트해 주는 헤어 디자이너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그 배의 비용을 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서비스를 하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의료계에 적용되는 일방적인 선택진료비의 축소와 폐지는 부당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선택 진료비 폐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의-정 상호간에 부담을 키워가며 이를 강행할 필요가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논리대로라면 의사는 현실 여건 상 양질의 진료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그나마 존재하던 진료의뢰체계도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목적과 이를 통해서 이루려는 목표를 분명히 한 뒤에, 이를 시행해도 전혀 늦지 않다. 이 과정을 손가락질 할 국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부디 현명한 판단과 실행의 용기를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