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공의는 값 싼 근로자가 아니다"

기획 "전공의는 값 싼 근로자가 아니다"

  • 송성철·이은빈 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4.08.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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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침' 있으나 마나...주당 80시간 근무 예사
'전공의=국민건강 책임질 주치의' 인식전환 시급

전공의들은 고달프다. 이 땅에 수련제도가 태동한 5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졸린 눈과 미처 감지 못한 머리로 병원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의료현장을 지키는 인턴과 전공의들은 온몸으로 피로를 호소한다. 주 5일제와 주당 40시간 근무가 보편화된 시대에 역행하는 그들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면서 수련병원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의협신문>은 최근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련환경 개선 추이와 전망을 살폈다. 

[기획 상]주당 100시간 근무하는 '철(鐵)의 전공의들' 28%

[중]"값 싼 근로자 아닌 국민건강 책임질 주치의" 인식 전환부터

[하]전공의 수련비용은 의료공공성 강화 비용…정부 지원 나서야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개혁 투쟁을 주도했던 전공의들. ⓒ의협신문
전공의 수련과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전공의 내부 조직에서부터 시작됐다.

2000년 의약분업과 의료대란 과정에서 '올바른 약사법 개정과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한  전공의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전공의들은 제2차 투쟁을 주도하며 의료개혁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01년 전공의들의 근무실태 및 처우에 대한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처우개선안을 마련했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 과정에서 전국 조직화와 결집을 이끌어낸 경험은 2003년 임동권 7기 집행부가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면서 조직화의 싹을 틔우기도 했으나 정식 노조 출범은 2006년 6월 9기 이학승 집행부에 와서야 이뤄졌다.

비록 노조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전공의 사회 내부에서 수련과 근무환경을 왜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과 인식은 날이 갈수록 그늘을 넓혀 나갔다.

대한의학회를 비롯해 의학교육학계는 2007년 졸업 후 의학교육 개선을 비롯해 전공의 근무시간을 비롯한 교육과정 개선에 대해 모색한 끝에 미국전공의교육신임평가위원회(A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ACGME) 권고안과 같이 주당 근무시간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며,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 요구에 힘을 실었다.

2008년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은 병원 경영진과 1년여 동안의 협의 끝에 '전공의 근무지침'을 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주당 최대근무시간을 88시간으로 정하고, 당직을 포함해 연속해서 48시간 초과근무를 하면 안된다는 세부 규정을 도출했다.

이듬해 대한병원협회도 전공의 적정수련지침을 통해 '주간 및 야간 당직이 과도하게 연장·지속돼서는 안된다. 야간 당직은 주 3회를 초과할 수 없다'는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의료계와 의학계는 전공의 수련환경을 법률을 통해 제도화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전공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는데 주력했다. '전공의의 수련과정에 관하여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조항에 '전공의 수련조건(근무시간 등)은 별도로 정한다'는 조항을 추가,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이와 함께 수련병원 지정 취소 요건에 '전공의 수련조건 준수 여부'를 추가함으로써 부실 수련기관을 탈락시킬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주당 80시간·연속 수련 36시간 금지 규정 이끌어내

▲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03년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 김일호 제11기 대전협 회장은 왕성하게 대전협을 이끌던 2012년 의료정책포럼 5월호에 '현행 전공의 수련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통해 "병협이 권장하는 표준수련지침이 주당 80시간 근무제한과 연속당직 금지를 권고하고 있음에도 전공의들은 주당 근무시간은 100시간 이상 일반 노동자가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과중하다"고 지적했다.

피교육자로서 전공의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는 실태도 꼬집었다.

김 회장은 "과거 내과의로서 위내시경·대장내시경·복부초음파 등을, 외과의로서 충수돌기염수술은 전문의를 취득하는데 꼭 습득해야 할 술기 중 하나였으나 기본적 술기 뿐만 아니라 간단한 술기조차 접하지 못한채 수련을 마쳐야 하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김 회장은 "전공의 시스템의 불합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제도는 바뀔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전공의 TO를 배정하는 신임평가기구가 병협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사용자단체인 병협 안에 신임평가기구가 있다보니 신임평가 항목도 느슨하고, 전공의 수련 중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이를 처벌할 조항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 김 회장은 의협·의학회·병협·대전협이 참여하는 협의체에 신임평가시스템을 위임할 것을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피교육자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공의 근무시간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타협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김일호 대전협 회장 "전공의 노조 활성화" 강조

대전협과 의료계의 노력으로 2014년 4월 1일부터 개정·시행되고 있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대통령령)은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초과 금지 ▲연속 수련 36시간 초과 금지(응급상황 시 40시간까지 가능) ▲응급실 수련시 최대 12시간 근무 후 12시간 휴식 ▲당직일수는 최대 주 3일 ▲수련 휴식시간은 최소 10시간 ▲휴일은 주당 최소 1일(24시간) ▲연간 14일 휴일 보장 ▲당직수당은 당직일수 고려 지급 등을 명시하고 있다.

연속근무 36시간 초과 금지·수련 휴식시간 최소 10시간·4주 평균 주당 1일(24시간) 휴일·응급실 수련 12시간 교대(예외시 24시간 교대) 등 4개 항목은 전공의 전체 연차에 적용하며, 주당 최대 근로시간 80시간 초과 금지·주 3회 당직 초과 금지·휴가 연 14일 등 3개 항목은 4년차부터 적용하고, 당직 수당 지급 등 1개 항목은 1년차부터 적용키로 했다. 아울러 논란이 됐던 전공의 유급 조항은 삭제했다.

개정된 규정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사항을 각 수련병원 수련규칙에 포함,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의협은 여기에 덧붙여 전공의 수련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2차 의정협의를 통해 △전공의 수련(근무)환경 개선-주당 88시간인 수련시간 단계적 하향 조정 △전공의 개선 기존합의사항(8개) 성실 이행 및 미이행시 실효적인 제재 적용 △수련환경평가 독립성 강화 - 전공의 수련환경 평가기구를 중립적·독립적으로 구성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병원 손실 보상방안 마련 △의사보조인력(PA)양성화 추진 중단 △전공의 유급 관련 조항 폐지 등을 개선키로 했다.

추무진 의협 회장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관련해 "수련병원 입장에서는 대체인력에 대한 경제적 보상방안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교육자 입장에서는 수련교육의 질적 담보 문제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의료 자원인 전공의 인권과 환자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라도 열악한 근무환경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회장은 "전공의 수련제도 역시 의료현실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편돼야 한다"며 "각 직역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면도 있으나 의협과 의학회가 합심해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제도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밝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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