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명의 두드림, 나눔의 어울림 '장기기증'
기획 생명의 두드림, 나눔의 어울림 '장기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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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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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잇기-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 공동기획 ④ 끝.

사단법인 생명잇기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는 생명나눔에 대한 긍정적 인식제고와 뇌사 추정자 발생 때 의료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뇌사장기기증 활성화 의료인 교육 홍보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의 인식 개선을 위해 한국장기기증원 등과 다양한 사업을 진행중이다.

<의협신문>은 4회에 걸쳐 장기이식을 통해 숭고한 나눔을 펼치고 세상과 이별한 이들과 어느 누군가의 '선물'을 통해 새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게재하면서 아름다운 생명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사단법인 생명잇기는 2009년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단체로 대한이식학회 회원을 중심으로 뇌사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명잇기는 민간단체 홍보요원과 의료인을 위한 교육자료 개발 및 교육,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편집자>.

"장기기증으로 6명을 살린 아들의 죽음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뇌사장기기증인 고 안융정 씨의 어머니 이택영 씨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듯, 사뭇 공기가 차가워진 지난 10월 17일 강남의 한 카페에 저마다 특별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슴에 먼저 떠난 가족과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은 뇌사 장기기증으로 여러 명의 생명을 살린 기증인들의 유가족들이었다.

처음으로 같은 지역에 사는 기증인들의 유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과 미안함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듯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아주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크를 든 사람은 이택영 씨. 금쪽같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며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어머니였다. 이 씨의 목소리에서는 슬픔과 아픔 대신 희망과 감사함이 묻어났다.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생명을 주고 떠난 아들(고 안융정)의 죽음은 축복된 마지막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함께 모인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는 가족들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리고 떠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그러니 우리도 슬퍼하지 말고, 이곳에서 기쁘게 지내요. 하늘에 먼저 가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게요."

이 씨의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고, 가족 간의 사이도 좋은 화목한 가정의 표본이었다. 주변에는 끊임없는 시련 가운데 힘겨워하는 가정이 있기도 하고, 큰 고통 속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있기도 했는데, 이 씨의 경우에는 너무 평안하게 지내고 있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사고를 당하고 난 후 '왜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시야를 넓혀서 나와 제 아들, 우리 가족을 벗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끊임없는 고통 속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나는 그렇지 않은데 왜 저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아들에게 사고가 있던 때에 저는 '내 몫의 고통이 찾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가족에게 오지 않았다면 다른 가족에게 올 수 있는 고통이 나에게 온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 씨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이 씨에 다가온 그 고통 뒤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씨는 '포콜라레'라는 가톨릭 영성훈련을 통해 이런 담대함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씨가 담대하게 이야기하는 아들의 사연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씨의 아들 안융정 씨는 지난 2009년 8월 14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 후 발생한 사고 때문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친구와 함께 걸어다가 호객꾼과 시비가 붙었고 서로 뒤엉켜 실랑이를 하던 중에 친구가 휘두른 주먹이 안 씨를 가격했다.

그대로 안 씨는 쓰러졌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식을 잃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안 씨는 뇌출혈로 인해 뇌사 상태가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아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그때 알아차렸어요."

이 씨는 뇌사가 추정된다는 의사의 말에 과연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성당을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고통 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자신의 몫의 고통이 찾아왔다고 담담히 받아들인 이 씨와는 달리 남편은 쉽사리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아들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남편은 장기기증에 대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침대 옆에 놓여있던 아들의 지갑을 열어보게 됐고, 지갑 제일 위에 꽂혀있는 장기기증 등록증을 발견하게 됐다.

"남편이 장기기증 등록증을 보고 아들이 평소에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을 하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죠."

이 씨의 아들이 어려운 사람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항상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어머니에게 100만원을 선뜻 건네며 좋은 일에 써달라고 했던 착한 아들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모금을 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ARS참여를 통해서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하며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먼저 살피는 아들이었기에 장기기증서약도 어머니와 같이 참여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발견한 대학 재학시절 수업에서 과제로 쓴 유서에서도 장기기증에 대한 아들의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뿐 아니었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아들은 생전에 친구에게도 트위터를 통해 "만약에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빨리 연락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아들 안 씨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고통 받는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의 죽음이 악상이라고 했어요. 젊은 나이에 싸움에 휘말려 세상을 떠났으니….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잖아요. 살만큼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은 호상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아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자기 몫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났다면 그것도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은 6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으니 호상 뿐 아니라 축복된 죽음인거죠. 세상을 살면서 어떤 좋은 일을 해서 6명의 사람을 살릴 수 있겠어요?"

이 씨는 아들의 죽음은 축복 중에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여섯 명을 살리고 떠나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딸이 어렵게 아이를 낳아 막 돌이 지났는데 출산 후에 이런 일이 생겨서 다행이고, 귀여운 손주의 모습이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고슴도치사랑 같지만 안 씨는 준수한 외모에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사고를 당했을 때는 다행인지 교제중인 사람이 없어서 슬퍼할 사람이 한사람 줄어서 감사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책임져야할 처자식이 없어서 오히려 감사했다. 그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에 이런 큰 고통도 포함돼 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지금도 감사하는 것은 제가 그때 제 감정에 치우쳐서 슬퍼하면서 우울한 감정에 빠져 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나니, 아들의 죽음도 감사하게 됐죠. 내가 감사로 받아들일 마음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이런 일이 있은 후 아들 친구들 몇몇은 성당에 다니게 됐고, 장기기증서약에 동참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을 축복된 죽음으로 감사하면서 받아들이게 된 이 씨도 가끔 아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차디찬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씨는 아들이 기증한 장기가 누군가의 몸 안에서 움직이며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마음이 이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들과 같은 상황에서 장기기증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요. 바꿔 생각해보면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축복의 통로라고 생각한다면 감사할 일이죠. 아들은 살아서 할 일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해요.

남겨진 우리가 아들 몫까지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아들의 일을 통해 느꼈던 감사함을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아들의 몫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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