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 혈액형과 점

기고2 혈액형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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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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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홍(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가정의학과)

▲ 황인홍(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점을 치려고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면 '그렇다'는 대답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또 '점괘를 가지고 자신의 장래를 결정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대답대로라면 우리 나라 역술인들은 모두 배를 곯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미아리는 문전성시를 이루며, 어지간한 대중 매체에는 오늘의 운세, 이 달의 운세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물론 심심풀이로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믿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점괘에 미래를 거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고….

그리고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점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신봉하는 미신이라고 소신 있는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로 점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을 꼽는다. 이것은 정확한 지적이며 대단히 좋은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점만도 못한 것에 운명을 맡기는 경우가 있는 것은 또 왠 일인가? 우리는 주위에서 '나는 O형이라 세심한 일은 질색'이라거나, '누구는 A형이라 운동을 못할 수밖에 없다'거나 하는 말들을 흔히 듣는다. 바로 혈액형 이야기이다.

도대체 혈액형이 무엇이기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동능력을 결정할까? 아니 심지어 장래의 진로, 결혼 상대까지를 결정할 수 있을까?

혈액형이란 피의 응집 반응을 기준으로 혈액을 몇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이런 것이 혈액형이므로, 잘 알다시피 가령 A형의 피와 B형의 피를 섞으면 서로 엉겨서 굳어버리므로 서로 수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것이 혈액형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 사람의 성격을 결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을 정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는 대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오늘도 인사관계 서류에는 예외없이 혈액형이 기록되고, 학부모는 자녀들의 혈액형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혈액형을 알아두는 것은 의학적인 응급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혈액형이 같다고 해서 그냥 수혈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수혈을 할 때는 반드시 혈액으로 직접 검사를 하여 수혈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어떤 분류를 통해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혈액형을 가지고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기까지 한 일이다. 사람의 체형(비만한지 야윈 편인지)을 가지고 성격을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점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점만도 못한 것이 첨단 과학인양 치장하였다고 현혹 당하면 안 된다. 이것은 점괘를 컴퓨터 용지에 프린트하여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능지수(IQ)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IQ는 낮은데 워낙 열심히 하다보니…' 등과 같은 말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지능지수는 그 사람의 종합적인 지능 혹은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을 평가해주는 수치가 결코 아니다.

지능지수는 어떤 특정 분야에 있어 그 때까지 습득한 기능을 나타내 주는 수치에 불과한 것으로, 이것은 그것 이외에 어떤 능력도 평가해주지 못한다. 'IQ가 높아서 산수를 잘한다'거나 'IQ는 낮은데 성적이 좋다거나'하는 이야기는 '손톱은 긴데 성적이 좋다' 혹은 '10월에 출생해 국어를 잘한다'는 말과 비슷한 말인 것이다.

출신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편을 가르는 것을 지역감정-요즘은 정서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이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혈액형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혈액형정서라고 할만 하다. 여기에 체형감정도 있고 지능지수정서도 있다. 이제는 황당한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그래도 과학적이라 말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까봐 한 마디 덧붙이기로 한다. 소설책을 우주선에 싣고 우주 비행을 하여도 소설이 현실로 바뀌지는 않는다. 아무리 의학에서 사용되는 것이라도 본래의 용도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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