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하나의 우주다. 우리 몸에서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장기인 눈은 약 1억 개 이상의 빛 감지 세포와 100만 개의 신경섬유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관이다.
신경섬유 한 가닥의 두께는 0.1~8마이크로미터. 조그만 압력이나 혈액순환의 변화에도 쉽게 손상되기에 이상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자칫하면 바로 암흑의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실명질환 발병률도 높아졌다. 국내 ‘3대 실명 질환’인 당뇨망막병증·황반변성·녹내장 발병률은 최근 4년 새 44% 증가했다.
이들 질환의 공통점은 뚜렷한 초기 증상이 없고, 진단과 치료 또한 쉽지 않다는 것.
'세극등현미경'은 검사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지 않아 의사들 내에서도 안과전문의가 아니면 정상상태와 병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안압측정기'는 자동안압 측정 검사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지만 측정할 때마다 오차가 많고, 변동성이 크다. 특히 '정상안압녹내장'은 안압이 정상임에도 녹내장인 경우가 상당수여서 안압측정 검사 결과 수치만으로 녹내장을 진단할 수 없다.
'자동시야측정장비'는 검사결과 자체보다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 요인들이 검사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동시야검사 결과만으로는 눈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는 안과 의료기기를 사용한 한의사 사건의 결정문을 통해 안압측정기·자동안굴절검사기·세극등현미경·자동시야측정장비 등 4종의 안과 검사기기에 대해 자동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한의사도 배웠으니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매일 시야가 좁아지고, 시력을 잃어가는 환자를 보는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 황영훈 교수.
"녹내장이란 얼마나 위험한 질환인지, 진단과 치료는 얼마나 까다로운지, 오진을 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쳤을 경우에 환자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안다면, 헌법재판소의 그런 해석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한의과에서 말하는 녹풍과 녹내장은 전혀 다른 개념이에요. 그곳에서 치료하면 안압이 내려가던지, 시야가 유지되던지 해야 하는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죠. 최근 녹내장 전문 한의원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참 씁쓸한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둠이 드리워진 세상을 봐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없이 막막하다.
실명 위기의 환자의 눈에서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수술대에 서는 건양의대 김안과 망막병원의 김철구 교수와 녹내장센터 황영훈 교수.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했다면 실명까지 가지 않을 환자들이 많습니다. 실명질환 환자들을 검사하고 진단하는 것은 숙련된 안과 전문의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일이죠.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안과 수술은 매우 고요하지만 의사의 미세한 떨림에도 수술결과가 달라지고 환자의 인생이 바뀌는 치열한 수술이에요. 그러나 안과의사들에게 수술의 고단함 보다 더 힘든 것은 안과의 전문성이 소홀히 다뤄지는 의료현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