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의학 릴레이 인터뷰 (1) - 용태순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장
최근들어 기초의학이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기초의학의 위기는 최근의 문제가 아니고 몇 십 년 전부터 나왔다. 최근에는 다른 기초과학·임상의학 분야의 발전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축되다보니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출신 수도 급격히 줄고 있다. 최근에는 이것이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의과대학에 들어오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따라서 기초의학을 일생동안 하겠다는 것은 교육과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옛날 선배들은 보수에 차이가 있더라도 묵묵히 한 우물을 팠다. 지금은 물질적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명예와 가치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기초의학 지원 기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도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기초의학도 충분히 재미있게 연구를 할 수 있다. 자신의 비전이 분명하면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초의학 위축은 교육 및 연구 의욕까지 감소시키고 있다. 기생충학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하다.
기초의학 교육 시간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실습 시간이 많이 감소했다. 그렇다고 교육 의욕까지 감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 시간의 감소는 기초의학자가 좀 더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출신 기초의학 전공 지원자가 적은 것이 사실이며, 기생충학 분야가 아마 의사출신이 가장 적을 것이다. 연세의대에는 올 해 한 명의 본교 출신 지원자가 남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기생충학회는 300여명의 회원이 있고, 의사출신이 40여명 있다. 이 40여명이 학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나머지는 생물학 등의 연구자가 모두 포함된 수치이다.
의사출신 기초의학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나?
구속력이 있는 수단은 없다. 학회의 개명과 같이 향후 기생충학 분야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기초의학 분야가 임상의학 분야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하기는 어렵겠지만 수련 기간 동안 지원자에 대해 지원책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이후에도 노력하면 좋은 연구와 생활여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의사출신 기초의학자가 많이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1959년 창립한 대한기생충학회는 2012년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전통적인 기생충(형태학이나 분류)도 지속적으로 필요하고(인체 기생충 외에는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많음), 면역학이나 분자생물학과 같은 관련 분야의 기술적인 발전을 도입해 큰 연구 성과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젊은 학자들이 있으면 고무적이다.
학회 명칭을 바꾼 것은 국내에서의 성공적인 기생충 관리 역량을 국외로도 확대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국제보건 문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은 감염병, 특히 기생충병과 소위 열대병으로 인식되고 있는 질병들에 대한 다양한 조사 연구 및 해외원조사업 참여 등으로 학회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공공의학적으로 위험성 있는 기생충들은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생충이 0%가 아니다. 대변검사결과를 통해 2.5%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말라리아도 있다. 옛날보다 큰 위협은 안되지만 아직 연구할 부분이 있다.
주로 열대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기생충병 등이 여전히 많다. 그래서 밖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열대의학회를 포함하면서 에볼라를 비롯해 해외에서 감염대 들어오는 감염병 등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공통 분모가 있는 관련학회와의 융합도 중요한 것 같다.
독자적인 발전도 필요하고 융합도 필요하다. 조사 연구 또는 연구비 수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기생충 감염, 특히 조직침투성 기생충이 알레르기 현상과 유사한 점에 주목해 관련 분야 연구자들과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연구개발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이것이 융합 아니겠는가.
2018년 제14차 세계기생충학회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노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기생충학회 개최를 통해 학회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약 1년 여 기간 동안 학회에서 모두 노력해 2014년 8월 14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총회에서 투표 끝에 한국 개최가 결정됐다. 당시 유치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데 아시아에서는 2번째 치러지는 행사다.
전 세계에서 약 2000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홍보와 함께 우리나라 기생충학 및 관련 학자들의 위상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 주제는 'Parasites:harms and benefit'로 정했고, 재미있는 토의와 학문의 발전을 기대한다. 특히 국내 젊은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결과를 주도적으로 발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상의학이 잘 되려면 기초의학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과대학에서의 기초의학 교육 현실은 어떤가?
이전보다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기초의학 지식이 임상과 연관되는 것들에 대해 잘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름대로 작지만 주어진 시간내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옛날에 열대의학 국제심포지엄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학생 때 국제심포지엄을 보니 재미있어서 지금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앞으로 의과대학 학생들이 교육시간을 통해 기초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사국가시험에 기초의학 부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초의학을 살리고 강화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궁금하다.
의사국시에 기초의학 부분을 일정 정도 포함시키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기초의학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는 것보다 평가에 반영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기초의학이 많은 비율은 아니지만 의사국시에 기본적으로 포함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조금 더 신경쓰고 관심을 가질 것이다. 미국은 기초가 많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초의학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교육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전반적으로 일정한 정도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향후 PhD 교수들이 기초의학 교육을 맡게 되는 일이 더 흔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들은 연구업적이 매우 좋아 교수요원으로 선발됐다. 그러나 일반적인 교육에 대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표준화가 되면 교수도 부담을 덜 느끼게 되고, 학생들도 표준화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생충학회의 가장 큰 고민과,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정적으로 취약하다는 것, 스폰서가 별로 없다는 것. 지원자가 적다는 점이 현재 가장 큰 고민이다.
기생충학 분야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미약하다. 다른 감염병 분야에 비해서도 현격히 떨어져 이 분야 연구비 총액 중 지원액수는 3% 미만으로 생각된다.
열대병, 수입감염병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돼 있고 세계적인 연구 수준에도 못미친다. 세계적으로는 소위 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에 대해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등을 비롯해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못하고 있다.
KOICA의 해외원조사업도 용역사업의 형태로 매우 유연성이 적다. 현장연구(operational research)가 활성화 돼야 국제적인 학술지에 발표가 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원조사업의 업적도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을텐데,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부의 지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금방 결과물이 나오는 분야에 대한 지원 비중이 높은데,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지원이 골고루 돼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도 필요하다.
앞으로 기초의학에 대한 비전도 분명히 제시해줘야 한다. 국가적으로 기초의학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연구자)에게 연구비 지원 등 배려가 많이 됐으면 좋겠다.
기생충학은 소수가 하는 특수한 분야인데, 앞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망이 없다고 없애버리는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