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개설자격 없는 자의 의료기관 개설' 의료법에 근거 없어
서울행정법원, 보건소장 폐쇄명령 처분 무효 판결...의료법 개정 추진
의료기관 폐쇄명령이나 허가취소를 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민의 자유와 관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은 벌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A씨가 B보건소장을 상대로 제기한 의료기관 폐쇄명령 무효 확인 소송(2015구합63845)에서 행정명령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씨는 2012년 3월 11일 산부인과 전문의 C씨로부터 D병원을 인수, B보건소에 개설자 변경신고를 했다.
B보건소는 2015년 3월 11일 서울은평경찰서로부터 "A씨가 소위 사무장병원을 개설·운영할 목적으로 D병원 개설의사 명의를 대여하고 사무장 E·F·G 씨에게 고용돼 진료행위를 했다"는 수사결과를 통보받았다.
B보건소는 5월 14일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없는 자가 의료법 제33조 2항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사유를 들어 의료법 제64조(개설허가 취소)에 따라 폐쇄명령을 했다.
A씨는 의료법 64조 제1항 각호는 의료기관 폐쇄명령을 할 수 있는 사유로 의료법 제33조 2항 위반을 예로 들지 않았으므로 법률유보의 원칙에 반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D병원을 실제 운영하고 있고, 2014년 7월 1일 이후의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로 인한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을 받았으므로 종전 개설자와 단절되는 새로운 행위인만큼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직업의 자유 및 재산권을 침해하는 침익적·제재적 행정처분은 법률에 근거해야만 한다"며 "B보건소가 처분 사유로 제시한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없는 자의 의료기관 개설은 의료법 제64조 1항 각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고, 이 법률 조항은 처분의 적법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처분의 근거가 될만한 법령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건 처분은 법률상의 근거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므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라고 판결했다.
의료법 64조 1항이 규정하고 있는 개설허가 취소 사유는 ▲개설 신고나 개설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아니한 때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거나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 ▲제61조에 따른 관계 공무원의 직무 수행을 기피 또는 방해하거나 제59조 또는 제63조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때 ▲제33조제2항제3호부터 제5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의료법인·비영리법인, 준정부기관·지방의료원 또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설립허가가 취소되거나 해산된 때 ▲제33조제5항, 제40조 또는 제56조를 위반한 때 ▲제63조에 따른 시정명령(제27조의2제1항·제3항·제5항 위반에 따른 시정명령을 제외한다)을 이행하지 아니한 때 ▲약사법 제24조제2항을 위반하여 담합행위를 한 때 ▲의료기관 개설자가 거짓으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때 등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64조 1항 각호에 사무장병원을 추가한 의료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판결과 관련, 김준래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변호사(선임전문위원)는 "이번 판결은 의료법 제64조 제1항 각호의 폐쇄명령을 할 수 있는 사유를 한정적 열거조항으로 봄으로써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라도 각 호에 해당하지 않아 폐쇄명령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형사처벌을 받아도 의료기관 폐쇄를 하지 않은 채 청구한 요양급여비를 계속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법 제64조 1항에 1호부터 8호 외에 사무장병원의 경우에도 폐쇄나 허가취소를 할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고, 곧 개정안이 공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