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 개념은 한의학에만 존재...그 자체로 비과학성 증명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는 수익 늘리기성 '블루오션'일 뿐
한의대에서 배우는 <침구학>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1.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나면 왼발의 은백혈을 짠다. 혈을 짜다 말면 더 고통스러우므로 선홍색 피가 나올 때까지 짠다. 2. 음식을 먹고 체하거나 탈이 나면 환자의 음식 양을 줄인다. 증상이 매우 심하면 토하거나 설사를 하게 한다. 3. 침을 놓을 때 환자가 통증을 느끼면 잘못된 것으로, 침을 맞을 때 환자의 기분이 좋아야 한다. 4.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변을 보고 싶은 환자에게는 변을 보게 하면 통증이 덜해진다. |
A씨는 한의대 재학 시절 공부했던 <침구학> 교과서를 보여주며 "애매모호해요. 현대의학 관점에선 말도 안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됐으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재학 중인 A씨. 현재 의전원 3학년인 A씨는 한의대에서 보낸 6년을 "기회비용으로 전부 날렸다"고 했다.
본지는 한의사를 그만 두고 의사의 길을 선택한 A씨를 25일 만나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 속내를 들어봤다.
A씨는 졸업 후 한의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회의감만 깊어졌다. 모든 걸 감수하고 의전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로 그는 "한의학은 의학의 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과학적인 학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한계가 분명합니다.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그냥 받아들이고 납득하라'며 한의대 재학 시절 고등학교 때보다 주입식 교육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의전원에서 현대의학을 배우며 느낀 한의학의 맹점으로 '만병통치' 개념을 들었다. "한의학에서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의학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과는 반대되죠. 치료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간의 구분이 없는 것 자체가 한의학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한의사마다 질병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 치료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한의사들조차 '한의학은 객관화하기 어렵다'고 말한다고 고백했다.
"예를 들어, A라는 증상을 치료하는 방식이 한의사마다 전부 달라요. 통일된 치료 방식도 없습니다. 사상체질을 주로 하는 사람은 사상체질로, 침을 주로 쓰는 사람은 침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죠."
때문에 그는 한의학을 "자기최면의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한의학이 존재한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지 않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의전원에 한의사 출신이 한 학년에만 3~4명, 많게는 6명까지 있습니다. 평생을 한의사로 일해야 하는 게 떳떳하지 못해 의학을 공부하러 온 거죠."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선 "요즘 한의사들에게 '양진한치'가 유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양방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현대의료기기의 힘을 빌리겠다는 것 자체가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의학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고 A씨는 설명했다.
현대의료기기 사용 주장은 한의계의 공격 대상이 의사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이전까지는 침과 부항, 뜸을 한의사들만 할 수 있게 침사들을 공격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이제는 현대의료기기를 자신들도 쓰겠다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거예요."
그는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골밀도진단기 공개시연과 오진 논란에 관련해서도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의대에서는 실제 진단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저는 한의대 재학 시절 Z-score를 배운 적이 없어요. 한의대 교수님이 모든 진단은 T-score로 한다고 가르쳤으니까요. 한의사들은 현대의료기기로 환자를 진단해본 적이 없으니 환자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어떤 게 위해를 가하는지 몰라요."
그는 10년, 20년씩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내과 전문의들도 정확한 판독을 위해 영상의학과로 환자를 전원시키는 사례를 들며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쓰겠다 주장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덧붙였다.
"오롯이 환자 진료에 쓰이는 게 아니라 수입을 늘리는 '블루오션'으로 간주돼 '환자 유인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죠. 국민 건강에 피해를 입히는 건 물론 의료비 지출도 늘어 결국은 심각한 사회적 손해를 초래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