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중심의학연구원 "정부 안전성·유효성 검증시스템 허점"
한약서에 처방 적혀있다고 효과·안전성 자료 제출 면제해서야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은 17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유해성 심사·검증 시스템이 부실하다"며 "소비자들은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6일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3만 7000여종의 화학물질이 안전성을 검증받지 않은 채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부가 유해성 심사를 한 물질은 2%에 불과할 정도로 지극히 미비한 수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1991년 이후 새로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은 의무적으로 유해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유통되고 있는 물질에 대해 정부는 "오래 전부터 써와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며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유해성 검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의연은 '오래 전부터 써와서 안전하다'는 정부의 안전 인식과 부실한 검증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행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에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약서에 적힌 처방으로 만든 한약의 경우 효과와 안전성에 관한 자료 제출을 면제하고 있다"고 지적한 과의연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허점투성이 검증시스템은 한약을 안전성과 효과 검증 없이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의연은 "한의사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한약을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고, 효과는 커녕 안전성조차 검증되지 않은 성분들을 체내에 주사하거나 점막에 바르고, 증기로 흡입시키고 있다"며 "대부분의 환자들은 한약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1986년 우황청심원 등의 재료로 쓰이는 한약재인 수은화합물 '주사(朱砂)'와, 비소화합물 '웅황(雄黃)'을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하지만 한의사의 사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독성 한약재를 처방받아 복용한 두 명의 환자에서 신장질환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 1억 9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부전의 원인이 된 쥐방울덩굴류 한약재의 경우 미국·독일·영국 등은 2000년을 전후해 사용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5년이 지난 2005년에야 해당 한약재의 유통과 사용을 금지시켜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의연은 "몇 년 전 한의원장과 직원들을 마비시킨 한약재와 1명을 죽게하고, 6명에게 상해를 입힌 맹독성 한약재는 지금도 아무런 규제없이 한의사의 재량에 맡겨 사용하고 있다"며 "중국에서는 2010년 한 해에만 한약에 관련해 1만 3420건의 심각한 부작용을 비롯해 총 9만 5620건의 부작용이 집계될 정도로 한약 부작용이 흔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으니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은 멀리서 근거를 찾을 필요도 없이 똥물을 먹여 미친사람을 치료한다거나 수은이 독이 없다고 적힌 동의보감이 증명하고 있다"고 밝힌 과의연은 "전임상실험과 3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사용이 허가되는 현대의약품처럼 한약도 효과와 안전성 검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의연은 지난해 12월 20일 한약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현행 법규에 대한 위헌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위헌소송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 과의연은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고, 헌법에서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 알 권리, 보건에 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안전성·유효성 심사대상에서 한약제제를 제외하고 있는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제24조 제1항 제4호 및 제5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의연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기 전에 조속히 한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의무화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사태를 막는 일"이라고 밝혔다.